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 삶, 용기 그리고 밀림에서 내가 배운 것들
율리아네 쾨프케 지음, 김효정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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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비행기가 폭풍 전선을 만났다. "무사히 지나가야 할 텐데."
엄마의 목소리에서 불암감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 두렵지 않았다.
그 순간 오른쪽 날개에서 눈부시도록 흰 선광이 번쩍였다. (...)
"이제 다 끝이구나." 온갖 소음 사이로 엄마의 차분한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 순간,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잠잠해졌고, 윙윙대던 터빈 소리마저 지워진 듯 싹 사라졌다.
엄마는 옆에 있지 않았고, 나 또한 더 이상 비행기 안에 있지 않았다.
여전히 좌석에 묶여 있었지만, 3000미터 상공에서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하늘을 가르며 추락하고 있었다.
3000미터 높이의 하늘에서 지상으로...... .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의 예고편을 보는 듯한 글이었다. 다시 천천히 읽어봐도 여전히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에게 크리스마스이브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생각만으로도 기분 좋은 설렘과 행복감이 느껴지는 날이다. 모든 사람에게 특별한 날이든 그저 그런 하루 일 수도 있지만, 절대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낸 소녀가 여기 있다. 1971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열일곱 살 소녀 율리아네가 엄마와 함께 타고 있던 비행기가 폭풍을 만났고, 그대로 3000미터 상공에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나올 법한 상황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리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속 상황의 결말은 기적이었다. 92명의 승객 중 단 한 명만이 살아남았다. 보통 이런 비행기 추락 사고의 생존율은 0%이고 하던데, 율리아네는 한 쪽 쇄골이 골절되고, 팔이 찢어지는 상처를 입은 채 깨어난다. 상승기류를 만났고, 페루 다우림의 나무들과 추락 지점이 완벽하게 맞물려 좌석 채 튕겨져 나온 율리아네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엄마의 생사도 다른 승객의 생존 또한 알 수 없었다. 온전히 혼자 그 깊은 밀림 속에 남겨진 것이다.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안전한 곳에 있는 내가 감히 상상도 못할 공포였을 것이다.
어린 소녀가 홀로 남겨진 밀림에서 생존할 확률을 또 얼마나 될까? 시력이 좋지 않아 안경을 썼던 율리아네는 추락 당시 안경도 분실하게 된다. 안경을 쓰는 나로서는 그 부분부터 답답함이 밀려와 고개를 절로 저었다. 거기에 한 쪽 밖에 남지 않은 샌들, 밀림을 버텨내기엔 너무도 얇은 여름 원피스, 몇 개가 전부인 사탕. 그런 최악의 조건 속에서 열일곱 살 소녀는 밀림에서 길을 잃으면 물을 따라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아빠의 말을 기억해 낸다. 밤에는 모기와 밀림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 벌레들의 공격을 받아야 했고, 생명을 위협하는 맹수들은 기본이었다. 배고픔과 비 오는 날엔 극심한 추위를 견뎌내야 했다. 몸도 몸이지만, 엄마의 생사를 알 수 없다는 점, 극한의 상황에 홀로 남았다는 정신적인 고통도 컸을 것 같다. 다행히 율리아네는 특별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의 다우림 동식물 연구 때문에 어린 시절 실제로 밀림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고, 부모님이 알려준 야생에서의 생존 지식 덕분에 소녀는 11일이라는 시간을 버텨냈고, 극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다. 상상도 하기 싫은 상황 대입이긴 하지만, 나였다면 아마 채 하루도 버티지 못했을 시간들이었을거다.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난 소녀, 11일 동안을 밀림에서 생존한 소녀, 자극적인 제목과 소재이기에 언론사에서 가만히 둘 사건이 아니었다. 그 결과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학교생활 또한 힘들어졌다. 알 권리를 주장하며 언론이 취하는 과도한 취재 열기와 과도한 관심, 태도는 지금도 보기 불편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언론의 역기능은 있었나 보다. 자극적인 제목과 기사, 왜곡과 거짓으로 얼룩진 기사, 생존자에 대한 배려는 볼 수 없었다. 이곳에서도 언론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그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면 재난에서 보여준 열일곱 살 소녀의 처절한 생존기이며, 역경을 이겨낸 인간 승리로 끝났겠지만 이 책은 다르다. 공포의 시간을 경험하게 했던 밀림을 사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추락 사고에서 목숨을 구하게 된 것도, 의식을 되찾기까지 태양으로부터 지켜준 것도, 자신이 밀림에서 구 조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것도 모두 숲 덕분이라고 말한다. 자연은 인간의 존재 유무와 상관없이 한결같은 모습이지만, 인간은 자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고 말이다. 자연 덕분에 목숨을 구했기에 자신의 남은 삶을 환경보호를 위해 바치겠다는 그녀
다우림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며, 그곳을 보존하려는 노력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시 꺼내기 힘들었을 그날의 기억들을 떠올리고, 경험했던 그날의 진실을 밝히면서 말이다. 어린 소녀가 감당하기엔 힘들었을 경험과 고통스러운 시간들을 잘 견뎌내고 자신의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생존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영화화 확정됐다는 소식이 있던데, 책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어떤 감동을 선사해줄지 기대가 된다.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사고 후 내가 인간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도운 것은 바로 이 밀림, 이 숲의 은밀한 영혼이다. 그것은 1년 반에 걸친 연구 과제를 진행 중인 지금에야 내게 모습을 드러났다. 이제야 나는 추락 사고 후 비가 쏟아지는 밀림에서 절망에 빠진 채 한없이 외로운 밤을 보냈던 시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당시에 나는 살아남을 수 있다면 내 삶을 자연과 인간을 섬기는 의미 있는 대의에 바치겠다고 결심했다. 이제 성인이 되어 연구 기지에 돌아와 부모님 없이 내 스스로 부여한 연구 과제를 완수하자, 갑자기 모든 것이 뚜렷해졌다. 나의 임무에는 이름이 있다. 바로 팡구아나라는 이름이다. /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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