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좋은 날
모리시타 노리코 지음, 이유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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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균형을 찾아주는 따뜻한 울림
따뜻한 차 한 잔이 주는 여유가 삶에서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 되는지, 일상에서 얼마나 필요한 순간들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순간들과 시간들이 모여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단순히 향과 맛을 음미하는 차를 마시는 행위를 뛰어넘어 차의 시작과 끝을 오롯이 나만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는 일이 '다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시절 다도부라는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루하고, 정적으로 보이는 그 행동들이 단순히 재미가 없어 보여 내 관심을 얻지 못했다. 그리고 도대체 왜 저렇게 재미없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건지 이해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진정으로 자신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는 행위가 아니었나 싶었다. 만약에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다도부에 신청서를 제출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질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은 나에게 작은 두근거림을 선사해준 책이기도 하다. 전문적인 다도 서적도 차의 향과 맛에 대해 적혀 있는 책도 아니었지만, 충분히 다도의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흐릿하게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아, 소나기가 오려나 봐.' 하고 생각했다. 정원수를 두드리는 빗방울이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리로 들려왔다. 그리고 바로 흙냄새가 자욱이 피어올랐다. 그때까지 비라는 건 그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일뿐, 냄새 같은 것은 없었다. 흙냄새도 나지 않았다. 나는 유리병 속에서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리 장막이 사라지자 계절이 '냄새'나 '소리' 같은 오감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 008

계절은 차례차례 포개어지듯 다가와서 공백이라는 것이 없다. / 008

"차라는 건 말이지. '형태'가 그 첫걸음이란다. 먼저 '형태'를 만들어 두고 그 안에 '마음'을 담는 거야." / 049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상대방 앞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제로' 상태의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 054

작은 동작 하나하나를 정확히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수많은 '점'을 찍는다. 그 점과 점이 가득 모여서 '선'을 이룬다. 우리의 데마에는 곳곳에서 선으로 이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 063

결코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자, 새로운 기분으로 시작하는 거야. 지금 눈앞에 닥친 일을 하도록 해. 지금 이 순간에 마음을 집중하는 거야." / 076
일본의 다도와 한국의 다도는 차이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25년간 다도를 배우며 그로 인해 경험했던 일부를 옮겨놓은 일부분의 내용들이지만, 거기엔 저자의 삶이 고스란히 있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이 담겨 있었고, 다도로 인해 조금씩 변해갔던 삶을 이야기하며 15장이나 되는 각각의 챕터들은 다독다독 마음을 위로한 문장들로 가득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자극적인 제목과 더 자극적인 소재들로 넘쳐나는 요즘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요란하지 않아서 더  마음에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보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영상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일일시호일이라는 영화가 궁금해졌다. 분명 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았다.
원작이 있다면 책과 영화를 자연스럽게 비교해 보고 실망했던 일들이 종종 있었던지라 이제는 책과 영화를 별개로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먼 옛날 맡았던 바람과 물, 비의 냄새가 그때의 감정과 하나가 되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연기처럼 사라져간다. 과거의 수많은 내가 지금의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156

열매나 꽃눈뿐인 가지도 꽃병에 장식했다. 그것들도 전부 다화였다. 나는 '꽃'을 얼마나 작은 테두리 안에서 보고 있었던 걸까. 다화가 없는 계절 같은 건 없었다. 따분한 계절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 158

나 혼자 인생의 본경기가 시작되지 않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스타트 라인에조차 서지 못한다. 발밑이 흔들린다.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초조함에 시달린 나머지, 전철을 타고 있다가도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달려야만 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하지만 대체 어디를 향해 달려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163

분명 옛사람들도 이렇게 계절과 마음을 동일시하면서 살아남으려고 했을 것이다. 절분, 입춘, 우수. 이렇게 손꼽아 세어 가며 자기 자신을 격려하고, 몇 번이나 겨울로 되돌아갈 때마다 시험에 들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인생의 어느 계절을 넘어서려고 한 것이겠지. / 184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짐을 내려놓았다. 어깨의 힘이 빠지고 홀가분해졌다. 나는 맨몸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래, 이대로도 괜찮은 거였어.' / 220
저자의 고민들이 남일 같지 않아서 더 와닿고 위로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이십 대의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 삼심 대의 직업에 대한 고민들, 사십 대의 삶에 대한 고민들 한 고개 넘었다. 생각하고 한숨 돌리려고 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다음 단계 퀘스트 같은 삶의 연속적 고뇌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특별히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참견하지도 답을 던져주지도 않는다. 다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묵묵히 이야기할 뿐이다. 그 이야기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연스러운 위로가 스민다. 인생을 음미하는 방법을 직접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한다. '다케다' 선생님이 노리코에게 진정 가르쳐주고 싶었던 인생에 관한 일들처럼 말이다. 일본 다도 용어의 등장이 조금은 낯설고, 생소하지만 284 쪽의 다도구 수업에 실린 다도 관련 용어와 사진을 먼저 보고, 읽어나간다면 조금은 편히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읽는 동안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소설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의 소리도, 부딪치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빗방울 소리에도 무심코 지나쳤던 계절의 미묘한 변화에도 한 템포 쉬어가며 주변의 작은 변화에 오롯이 집중해 보는 시간이 생겼다.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일기일회란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의미다. / 225

인간은 어느 날을 경계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는 것이다. / 230

행복할 땐 그 행복을 끌어안고 있는 힘껏 음미하자. 아마 그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그러니 소중한 사람을 만나면 함께 먹고 함께 살아가며 단란함을 만끽하자. 일기일회란 그런 것이다. / 232

세상은 밝고 긍정적인 것만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애초에 반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밝음도 존재하지 않는다. 빛과 어둠이 모두 존재할 때 비로소 '깊이'가 태어난다. 어느 쪽이 좋고 어느 쪽이 나쁜 것이 아니라 어느 쪽이든 저마다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는 그 양쪽이 모두 필요한 법이다. / 237

나는 그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을 온전히 충족시키고 있었다. / 254

"비가 오는 날엔 비를 들으렴. 몸도 마음도 제대로 여기에 있는 거야. 오감을 사용해서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맛보렴. 그러면 알게 될 거야. 자유로워지는 길은 언제나 지금 여기에 있단다." / 255

과거나 미래를 생각하는 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없다. 길은 하나밖에 없다. 지금을 즐기는 것이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할 때, 인간은 자신이 가로막는 것 없는 자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256

어떤 날이든 그날을 마음껏 즐긴다. 다도란 그런 '삶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인간은 고난과 역경을 마주한다 해도 그 상황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비가 내리면 "오늘은 날씨가 안 좋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안 좋은 날씨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을 이런 식으로 맛볼 수 있다면 어던 날도 '좋은 날'이 되는 것이다. 날마다 좋은 날이. / 256

자신의 방법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성장해 가는 길을 만드는 것이다. 깨닫는 것. 일생을 다해 자신의 성장을 깨달아 가는 것. '배움'이란 그렇게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이었다. /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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