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행복 : 공리주의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4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정미화 옮김 / 이소노미아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요즘 출판되는 책들의 트렌드를 보면 타인보다는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우선시 생각하며, 나를 먼저 돌봐야 한다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런데 그런 책들 사이에서 제목부터 눈에 띄었던 타인의 행복은 나에게 생각의 확장과 더불어 폭넓은 지식의 시작점이 되어준 책이 아니었나 싶다. 습자지처럼 얇디얇은 지식의 소유자인 내가 존 스튜어트 밀을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그가 주장하는 공리주의를 100% 이해하기란 역시나 어려웠다. 다만, 어렴풋이 허공을 떠다니던 공리주의에 대해 공부해 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거기에 더 흥미로웠던 것은 자신의 주장을 쭉 나열한 것이 아니라, 칸트의 주장에 대한 비판과 반박을 바탕으로 나를 설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목조목 하나하나 따져 묻는 것이 흡사 창과 방패의 논쟁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1장부터 등장한 칸트의 이름을 보자마자 어려운 책이겠구나 싶은 생각에 노트를 펼쳤다. 그리고, 이소노미아 출판사의 굿윌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류 천재들의 지혜 시리즈 2 인 굿윌은 칸트의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를 번역한 책이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밀의 주장을 읽어봤으니 칸트의 주장이 궁금해진 이유 때문이었다. 칸트의 도덕철학의 비판을 시작으로 길고 긴 터널을 통과할 때쯤 이 책의 핵심 내용들을 볼 수 있는 2장을 만날 수 있었고, 나는 어느새 밀의 주장에 설득 당하고 있었다.


'형식'이야말로 진정한 도덕이고, 진정한 도덕의 형식에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규범이라고 주장하며 도덕의 기준을 '형식'에 두었던 칸트와는 정반대의 의견을 주장한 밀은 바람직하고 선한 행동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하는 도덕은 단순히 형식의 중요함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지에 중심을 두고 그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도덕의 제1원리가 바로 밀이 주장하는 공리주의라는 것이다.

공인된 제1원리가 없기 때문에 윤리학은 인간의 실제 감정을 정화하는 역할을 잘 못하고 있습니다. / 35

궁극적으로 어떤 학문의 제1원리로 받아들여지는 진리들은 그 학문에서 익숙한 기본 개념들을 이용해서 형이상학적으로 분석한 최종 결론입니다. / 37
 

진보적인 밀의 성향이 짙게 나타나는 이 책의 제목은 공리주의가 아닌 타인의 행복인데 책을 읽다 보니 그렇게 정한 이유가 조금 더 넓은 의미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로, '행복'을 이야기하는 철학 도서인 동시에 공리주의의 핵심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나만의 이기적인 행복을 말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행복에 대한 이론서이며,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란 의미를 지닌 공리주의는 타인의 행복을 중요시 생각하는 사상인 동시에 도덕의 원리가 된다는 것이 밀의 주장이다. 

공리 또는 최대 행복의 원리를 도덕의 기초로 받아들이는 이 이론은 행복을 증진시킬수록 옳은 행동이고, 행복과 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할수록 잘못된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행복이란 고통의 부재와 쾌락을 의미하고, 불행은 쾌락의 결핍과 고통을 의미합니다. / 49

배부른 돼지보다는 궁핍한 인간이 낫고, 만족해하는 멍청이보다는 못마땅해하는 소크라테스가 되는 게 낫습니다. 만약 그 바보가, 혹은 그 돼지가 다른 의견을 갖는다면 그건 문제를 자기 쪽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 55
 

나의 행복을 챙기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타인의 행복까지 알뜰살뜰 챙기라는 밀의 주장은 현실적으로 봤을 때 조금은 이상적인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희생해야 하는 것일까? 인류애를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말할 수 있지만, 그것 또한 나의 행복이 보장됐을 때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하지만 묘하게 설득당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게 한 편으론 흥미롭기도 했다. 아마도 그건 출판사의 세심한 배려와 노력들이 엿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독자의 손이 닿는 왼쪽 면에 더 많은 여백을 둔 배려는 책을 읽다 생기는 반문들이나 생각들을 적어두기에 좋았고, 혹여나 텍스트 사이에서 길을 잃을까 행의 왼쪽을 맞추어 오른쪽으로 흘려주는 세심한 배려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거기에 밀이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들게 구어체를 사용한 점까지, 어느 하나 독자를 먼저 생각하지 않은 게 없었다. 여전히 어려운 철학 책을 만나 어리바리한 책 읽기였을지 몰라도, 밀이 던진 질문들은 예상외로 많은 생각과 또 다른 질문들을 생성해나갔다. 그리고 이런 게 바로 철학의 매력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렵고, 명확한 정답이란 게 없는 물음과 끝나지 않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대한 답은 예상하기라도 했듯이 밀이 명쾌하게 설명해주지만, 나머지의 답은 내가 세워가는 도덕적 가치 기준에 의해 내가 판단하고 나만의 답을 찾는 것이라 생각한다.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인간이 지적 취향을 잃으면 고귀한 열망도 잃어버리는 이유는 고귀한 열망에 빠져들 시간이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 56

공리주의의 기준은 행위자 자신의 최대 행복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행복을 합친 총량이기 때문이다. / 58

능동적인 즐거움이 수동적인 쾌락을 단연 압도하도록 기틀을 잡고 인생이 줄 수 있는 이상을 기대하지 않으면서 고통은 적고 일시적이지만 다양하고 많은 쾌락으로 이루어지는 인생의 순간순간을 행복이라 했습니다. /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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