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김나연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전국 동네 서점에서 품절 대란을 일으킨 바로 그 책!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줄여서 모동섹이라 불리는 책이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책의 처음 부분에 수록된 이 책을 먼저 만난 사라들의 이야기를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그리고 찬찬히 읽어보았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나는 그 모든 말들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 글귀부터 쿵쿵하고 기분 좋은 두근거림을 선사해줬다. 시작이 좋은 책은 대체로 끝까지 좋다는 게 내 생각인데, 역시나 그 생각은 옳았다. 그리고 더 읽고 싶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표시해뒀던 문장들을 다시금 읽어봤다. 다시 한번 김나연 작가의 글이 기다려졌다. 이렇게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이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부러워졌다. 그리고 앞으로의 글과, 작가의 삶에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너를 내 세상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그저 낱개의 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봐달라고.
나에게 글은 너를 향해 나부끼는 찢어진 깃발 같은 것.

 

우리는 과거 위에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나에게는 네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가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지만큼 중요하다. / 21

 

자기 전 잠깐 보고 자야겠다. 했던 내 마음과 달리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게 만든 책이기도 했다. 강렬한 첫인상과는 달리 (물론 강렬함이 느껴지는 부분도 존재했다.) 책 속에는 그저 한 사람이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사실, 예상했던 내용과는 많이 다르기도 했다. 요즘 심리학 서적들을 많이 읽은 탓에 이 책도 그런 분야가 아닐까 예상했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일부의 이야기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건 큰 오류를 범하는 일이지만, 이 책을 통해 조금은 작가에 대해 알 것 같았다. 본래 자신의 이야기, 비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분모가 생기기도 하고, 그로 인해 친근함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분명 우울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너무도 담담하게 꺼내놓은 작가 덕분에 더 이상 우울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랬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위로보다는 끝까지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작가의 삶이 담긴 1장과 3장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고난의 순간마다 새롭게 드러나는 내 이기심과 위선에 매번 놀란다. 항상 내적 이데올로기 충돌로 괴롭다. 하지만 나는 이만큼 산 내가 무척 기특하고 자랑스럽고 그래.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내가 알아. 그래. 그거면 됐어. /81

사물이든 사람이든 저마다 익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키우는 데에도 시간이 든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136

 

삶에 염증이 날 때마다 글을 썼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공감이 되기도 하고, 울컥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친절하게, 말캉말캉한 말로 다독여주는 힐링 에세이는 아니다. 솔직함과 당당함으로 무장했으며, 묘하게 뭐라고 딱 꼬집어 정의 내릴 수 없지만, 매력적인 책인 건 확실하다.

 

나는 인생이란 각자의 백과사전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단어 간의 미묘한 차이를 체감하고 자신만의 정의를 정교화해 그게 가장 적합한 용례를 수집해두는 일. 그렇게 생각하면 왜 우리는 같은 일을 겪고도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갖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설명이 친절해 필연적으로 두툼하고 다정한 백과사전을 가진 사람이 좋다. 내 단어를 다 껴안고도 남을 만큼 많은 단어를 가진 사람. / 238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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