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은하수 - 우리은하의 비공식 자서전
모이야 맥티어 지음, 김소정 옮김 / 까치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주에 대한 읽을거리를 물색하던 중 만난 책이 <아주 사적인 은하수>다. 대부분의 우주에 관한 교양 과학서들의 중심 내용은 비슷비슷하지만 저자의 역량에 따라 깊이와 넓이의 차이를 보인다. 천문학과 신화학을 전공했다는 저자의 이력에 끌려 이 책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출판사에 대한 신뢰도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다. 한 가지 더 보태자면 이제껏 읽은 과학 교양서들이 생각보다 연식이 된 저작들이라 최근 발행된 따끈따끈한 책을 읽고 싶다는 개인적 바람도 한몫했다. 그것도 취미 활동 카페에서 난생처음 해보는 리뷰 이벤트로!

하지만 내용을 떠나 읽어내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당신들 지구인 과학자들'이라든가 '사람 천문학자' 혹은 '당신들 사람이 만든'같은 표현이 계속 등장해서 초반에 가독성이 현저히 떨어졌다. 우리 은하 '밀키웨이'가 1인칭 주인공이 되는 설정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장이 길어지는 점이 거슬렸다. 아마도 리뷰 이벤트로 리뷰 쓸 일이 없었더라면 끝까지 읽었을지 자신할 수 없다. 하지만 꾸역꾸역 참고 읽어가니 중반부터는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던 특징이 확연히 보인다. 다른 책에서 냉랭한 설명문으로 읽을 때는 이해가 잘 안 가던 내용들이 스토리의 힘을 통해 수월하게 이해가 된다. 은하가 항성들을 만들어내고 왜소 은하를 병합하며 또 다른 은하와 충돌하는 내용들을 읽노라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림이 그려지는 것처럼 이해가 되는데 상상이나 허구가 아니라 과학적 데이터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기에 내 머릿속의 상상을 불신하지 않아도 된다. <아주 사적인 은하수>는 한 마디로 수준 높은 과학적 지식을 디테일하게 표현하면서도 알기 쉽게 전하는 탁월한 장점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낸 이유는 사실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용어는 방에 있는 모든 에너지와 생명을 빨아들이는 무엇인가를 나타내는 사람의 언어에서 유래한 듯한데, 물론 맞는 말이지만, 왠지 모르게 사람들이 블랙홀을 주변에 있는 모든 물질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는 그릇된 오해를 심어주고 있다. 블랙홀은 절대로 그런 존재가 아니다! 블랙홀은 절대로 그런 노력을 들이지 않는다. 정말이다. 블랙홀은 그저 그 주위를 천천히 지나가던 물질이 굴러떨어지는 구덩이일 뿐이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블랙홀은 '진공청소기'가 아니라 '구덩이'일뿐이다. 문과 출신 과알못으로 왜 블랙홀 주변엔 여전히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지 궁금했는데 각자 자기의 궤도를 돌다가 시간이 되면 그저 천천히 구덩이로 떨어지는 것뿐이라는 저자의 설명으로 평소에 품었던 의문 하나가 풀렸다. 게다가 저자의 문학적 표현도 꽤 괜찮은 편이어서 은하 간의 관계나 은하와 항성과의 관계 등을 설명하는 등 곳곳에서 적절한 비유를 사용해 읽는 이의 이해도를 높여준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아래에는, 나의 존재 깊숙한 중심부에서부터 넓게 퍼져 있는 나의 몸은 내가 살기 위해 결국 나의 항성을 죽게 내버려 둔다는 죄의식에서 기인한 자기혐오로 가득하다. 나의 몸은 모두 바닥이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다. 내 몸은 문자 그대로의 블랙홀과 비유적인 블랙홀이 한데 겹쳐져 있어, 절망이 빠져나갈 탈출구가 전혀 없다.

이 책은 단지 은하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으로 시선과 관점만 바뀐 책이 아니다. 은하와 항성 혹은 은하와 은하와의 관계나 은하와 블랙홀과의 관계를 의인화함으로써 얻어지는 이익은 생각보다 많았다. 읽다 보면 여러 가지 과학적 지식이 첨가되는데 이 분야를 관심 있게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면 조금 버거울 정도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어렵게 쓰지 않았다고 가볍고 만만한 책이 아니라는 뜻이다. 일단 책의 초반을 무사히 통과하면 우리 은하 밀키웨이에 공감되고 이입되어 안드로메다은하와의 로맨스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50억 년 이후에 우리 은하와 충돌할 안드로메다와의 가상 시뮬레이션이 아주 친절하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또한 천문학과 신화학이 만나는 지점이 과학은 아니지만 간간이 양념처럼 버무려진 신화와의 콜라보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끔은 저자의 위트 넘치는 표현이 대상의 특징을 너무나도 잘 설명해서 머리에 쏙 들어올 때도 많다.

안드로메다와 나 같은 나선은하는 대부분이 원 궤도로 공전하는 항성과 가스 때문에 질서정연하게 움직이지만, 타원은하는 무작위 운동의 지원을 받는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살림을 합치면 그전처럼 철저하게 질서정연한 삶을 살기는 어려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우주의 시작과 끝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인간의 호기심과 탐구 여정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왔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하늘이 신화의 영역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왔지만 아직도 '왜'는커녕 '어떻게'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곳이 우주다. '우리 은하의 비공식 자서전'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아주 사적인 은하수>는 적어도 우리 은하 밀키웨이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히 알 수 있는 세심한 안내서다. 결론적으로 저자 모이야 맥티어의 참신한 시도는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