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의 얼굴을 가졌고 - 그림으로 사랑을 말하고, 사랑의 그림을 읽다,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 선정도서
김수정 지음 / 포르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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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 착각, 열정, 고통, 기쁨, 환희, 슬픔, 인내, 일탈, 절망, 용서 등등을 모두 품고 있는 단어는 무엇일까. '사랑'이 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김수정 작가의 첫 책부터 읽어온 터라 그녀가 사랑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어놓았을 때 드는 생각은 걱정이었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책을 쓰는 일은 대부분 필패로 끝난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사랑에 관한 책들은 '어떤' 사랑, 즉 사랑의 개별성에 관한 책이다. 사랑 일반에 대한 책은 그 통속성과 진부함으로 실패하기 쉽다. 예외는 있다. 사랑의 구조를 말하는 철학자 김영민(동무론을 쓴 김영민이다)의 책과 사랑의 실체에 대해 집요하게 해부한 이승우의 책은 제외다. 하지만 오지랖 넓은 걱정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렸다. 저자에게는 그림이라는 강력한 무기가 있다. 탁월한 안목으로 고른 멋진 그림에 기대어 풀어낸 사랑의 모습은 우아하고 고혹적이다. 사연을 품은 그림마다 사랑의 색채가 진하게 스며있다. 저자는 이 사랑의 빛깔을 조심스레 길어올려 또박또박 활자로 표현한다. 이 순간 저자의 개인적 취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사랑의 색채들이 수렴하는 지점은 오직 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이 가벼워진 사랑(혹은 연애)이 만연한 시대에 아마도 저자가 원하고 바라는 사랑의 모습은 '내 모든 것의 무게'와 등가이거나 그 이상인 사랑이 아닐까 싶다. 모든 것을 다한 온전한 사랑. 아마도 모든 인간은 사랑을 바라고 소망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주는 생명력에 도취되고 중독되므로.

챕터마다 수록된 그림에는 연인 혹은 사랑에 빠진 여인의 초상이 주로 등장한다. 환희에 찬 사랑, 안타까운 사랑, 비밀 같은 사랑들이 화폭 위에서 말을 건넨다. 단호함, 설레임, 그리움, 다정함, 충만함, 격정 등 사랑의 다양한 얼굴이 그림 속에서 드러나며 사랑에 빠진 주인공들의 표정과 몸짓은 살아있다. 이렇듯 감정을 그려낸 화가도 대단하고 그림의 표정을 읽어내 우리에게 들려주는 저자의 감성과 내공도 대단하다. 개인적으로는 고흐의 <슬픔>이라는 소묘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처음 접하는 작품이기도 했고 '사랑'과는 거리가 먼 그림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 그림을 그리는 고흐의 마음과 시선은 모델의 슬픔에 기꺼이 공감하고 이입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그림이다. 그에게 창녀와의 사랑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터, 이 사랑으로 주위와 불화를 겪었던 고흐의 오갈 데 없는 순수함이 속절없이 드러난 것 같다. 저자 김수정은 이 그림을 풀어내는 도입부에 "세상에는 서로의 비참을 통해 사랑하게 되는 사람들도 있다"라고 말한다. 사랑은 이렇듯 아픈 지점에서도 발화된다. 사랑은 결국 상대에게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기에.

사랑이 어렵고 힘든 이유는 그것이 내 의지를 벗어난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능동태가 아니다. 그냥 속절없이 당하는 일. 무력하게 무너지는 것. 다른 방도가 없는 수동태의 일이기에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고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모든 문학과 예술들이 한결같이 겨누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승우는 사랑의 전능함과 그 전능함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인간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에게 그저 당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랑이란 사람과 사람이 만난 일이기에 어렵다. 상대의 심중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연인들은 각자의 사랑을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자 김영민의 표현대로 사랑은 물매라는 기울기를 가졌기에 연인들은 그 기울기 안에서 시소를 타듯 흔들린다. 그 물매의 속성이 사랑을 다양하게 변주한다. 이런 사랑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우리는 사랑의 얼굴을 가졌고>에서 만날 수 있다. 그림에서 만나는 사랑은 각별하다. 한 자 한 자 단정하게 꾹꾹 눌러 쓴 저자의 글솜씨 덕에 우리는 직관적으로 밀고 들어오는 감정들의 정체를 좀 더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사랑스런 책 <우리는 사랑의 얼굴을 가졌고>를 통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모름지기 이 정도는 되어야 사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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