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페어 컬처 - 쓰고 버리는 시대,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하는 삶
볼프강 M. 헤클 지음, 조연주 옮김 / 양철북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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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북이 펴낸 ‘리페어 컬쳐’를 서평단 활동으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제로웨이스트, 필에코 등의 환경 보호 문제가 화두되고 있고, ‘다시 씀’에 대한 독일의 물리학자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필 에코, 제로 웨이스트 시대에서 잊으면 한 가지는 바로 ‘다시 쓰기’다. 60년 전에나 쓰던, 지금은 쓰지도 않는 형식의 주소가 기입될 만큼 세월이 묻어난 제품의 부속품을 살 수 있다는 걸 감히 상상이나 해보았던가. 과연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런 기업이 얼마나 될까? 고장 난 무언가를 고쳐 쓴다는 것, 초등학생 때만 해도 골목마다 있던 철물점에 엄마와 줄곧 가고는 했었는데 최근에는 철물점을 찾기도 어려워졌다. 집에 반짇고리를 갖고 있는 사람을 얼마나 될까 하고 문득 궁금해지다가, 초등학생 때와 중학생 때 즐겁게 했던 실과 시간이 생각나기도 했다. 두 뼘짜리 책꽂이부터, 조임끈이 있는 파우치, 실제로 입을 수 있는 바지까지 직접 만드는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도 똑같은 수업과정이 있나 찾아봤는데 나오지 않았다. 이런 바느질, 못질과 같이 작은 수공업이더라도 소명을 다한 물건에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기란 쉬운 일이다. 일단 찾아보면 별게 아니고, 심지어 사부작사부작 다시 고쳐 쓰는 매력도 있지 않은가. 한때 DIY가 유행했던 것처럼 ‘리페어’는 딱딱한 쇠붙이로부터 손과 눈을 잠시 떨어뜨려놓을 수 있는 색다른 취미가 될 수도 있다. 의외로 ‘리페어’ 커뮤니티가 존재하고 이 커뮤니티에서 상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물건을 사서 사용하고, 고장이 나면 버리지 않고 다시 고쳐 쓰면 내 물건으로 다시 탄생시킬 수 있다. 내 손을 탄 하나의 생명력을 부여받은 물건. 이런 행동이 수리점이나 기업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기보다는 소비자 개인의 자율적인 능력을 높여주고, 이를 바탕으로 기업은 소비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서 물건을 보완하고, 그로 인해 더욱 지속가능성이 높아지는 물건이 탄생하고 그로 인해 수리점도 더욱 가치가 있는 선순환이 될 것이다. 되려 지금은 스스로 수리를 하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새로운 물건을 사기 때문에 수리점과 철물점들도 사라지고 있어 안타깝다. 이런 의미에서 ‘리페어’는 단순이 고쳐 쓰고 오래 쓰는 것을 넘어 ‘상생’으로 비추어볼 수 있다. 물리학자가 파헤친 ‘리페어’와 ‘상생’의 관계는 위에서 소개한 이야기들보다 보다 더 자세히, 그리고 어렵지 않게 여태까지 삶에 빗대어 이야기해주고 있다. 작가가 살면서 경험한 커뮤니티들과 일련의 사회/경제 과정들을 ‘리페어’의 초점으로 바라보는 게 참 신기했다.

어렸을때 부터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책을 읽으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직접 손으로 만들어낸 물건은 유난히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그중 하나가 아직도 책상에 올려져 있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견학에 가서 만든 도자기다. 지역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엉성하게 동그랗게 밑판을 만들고 직사각형의 띠를 둘러 모양을 만들었던 일이 어렴풋하다. 5번 넘게 이사를 해오면서도 깨지지 않고 잘 버텨주기도 했고 자잘한 물건들을 담아두기에 제격이라 거의 20년을 버리지 않고 잘 쓰고 있다. 이런 작은 기억에서부터 ‘리페어’는 이어지고, 직접 고쳐 썼던 물건들은 양말이나 옷가지, 가방, 쿠션, 서랍과 같은 자잘한 것들이 있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는 종종 다른 친구의 찢어진 교복을 꿰매어줬던 기억도 있고, 집에서도 고장 난 건조대나 자전거를 고쳐서 다시 쓰는 것과 같은 ‘리페어’를 꽤나 많이 경험했다. 아직도 집에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쓰던 공구들이 잔뜩 있다.

물론 이 행동들은 돈을 아끼기 위함도 있었다. 그리고 돈은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도 맞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수요와 공급들이 100% 유의미하지는 않다. 모든 시장 환경들이 동일하지 않기도 때문에 지구 차원의 복지 문제 고민도 필요하다. 자원이 부족한 곳은 적은 연료로 높은 가동성을 갖게 하는 질적 성장이 필요한 것처럼.

책을 읽으며 오랜만에 메모를 참 많이 했다. 다 쏟아내고 싶은데 직접 책을 펼쳐봤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만 줄이는 편으로 하겠다. 정말 마지막으로,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역시 함께 자란다”는 말처럼 지구를 갉아먹으며 스스로를 궁지에 내몰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극복해나갈 수 있는 기회들이, 그런 행동들이 보다 더 늘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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