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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죽어서까지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존재가 된다면, 이것은 행운일까요 아니면 불행일까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잊혀짐’, ‘잊혀질 권리’에 유독 관심이 갔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여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구글 검색만 하면 10년 전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적었던 낯부끄럽고 오글거리는 글까지 모두 나오는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동시에 마음대로 잊혀질 수도 없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비바, 제인>은 유망한 정치인과의 성 스캔들로 유명해진 20살 여성이었던 아비바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소위 ‘아비바 게이트(성 스캔들)’로 곤혹을 치른 그녀는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채용해주는 회사가 없고 사람들은 그녀를 비난하고 비판하기만 합니다. 이를 견디다 못한 그녀는 우울증에 걸리게 되고 자신의 이런 모습으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들이 피해를 입는 것을 견디다 못해 집을 떠나 홀로서기를 하게 됩니다. 집을 떠나 새로운 도시에 정착한 그녀는 ‘제인 영’이라는 개명한 이름으로 남부럽지 않은 새 인생을 살아가는 와중에도 간간히 들려오는 소위 ‘아비바 게이트’로 평생 마음 속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갑니다. 소설은 과거에서 멀어진 그녀가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인터넷 속에 남아 절대 지워지지 않는 악평을 평생 새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그녀가 이를 어떻게 이겨내 가는지, 주변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쯤이었나요, 디즈니-픽사 작품인 영화 ‘코코’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코코’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 더 이상 망자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위 ‘저승’에 있는 영혼 상태의 망자들은 영원히 모래처럼 바스라져 사라진다는 내용을 멕시코의 ‘망자의 날’과 연관시켜 풀어나가는 영화입니다. ‘코코’에서는 ‘비바, 제인’과 반대로 죽은 망자를 여전히 기억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는 망자는 그렇지 않은 망자들에게 있어 엄청난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하지만 죽어서까지도 사람들에게 절대 잊히지 않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한 일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 적어도 <비바, 제인>은 ‘아니요’라고 말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이말인즉슨, 모든 사람들에게는 ‘기억될 권리’도 있지만 원하지 않는 경우에 ‘잊혀질 권리’도 있다는 것이죠. 특히나 아비바, 즉 책 속에서 현재 시점의 제인처럼 20살 철없이 방황하고 스스로에게 자신감도 없던 아가씨 시절에 했던 실수를 살면서 다시 반복하지 않으며 착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따금 인생에서 한 번씩 훅 들어오는 인터넷에 떠도는 과거 이야기는 아주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본인이 밝혀지길 원하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는, 특히 공공성이 매우 중대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개인의 ‘잊혀질 권리’가 매우 중요함을 <비바, 제인>은 제인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치있고도 통쾌한 문장, 개성 있는 문체를 두루 갖춘 개브리얼 제빈의 신작, <비바, 제인>. ‘잊혀질 권리’ 이외에도 현재 사회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두루 담고 있으면서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