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 - 마흔 넘어 떠나는 혼자만의 여행
박대영 지음 / 더난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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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길 위로 나서 걷기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어가는 것 같다.

걷기를 무엇보다도 싫어했고, 힘겹게 올라봐야 도로 내려올 산을 왜 오르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했던 내가 달라지게 된 건 나이 탓(?)&덕분(?) 일 수도 있겠지만, 건강상의 문제가 가장 컸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듯, 아쉬운 자가 길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집 앞 산책로를 걷고 집 뒷산을 오르며 시작한 걷기는 좀 더 나아가 동네 큰산을 오르고 지역 명산을 찾아 오르고 유명한 둘레길을 하나씩 걸어보기 시작했다.

단지 걷었을 뿐인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건강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삶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앞만 바라보고 달리지 말고 잠시 멈춰 서보라는 말들이 이젠 무슨 뜻인지 조금씩은 알 것 같았고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두어 번 정도 먼 곳에 있는 산이나 둘레길을 가보고 싶어 산악회를 따라 나선적이 있는데, 따라가기가 힘도 들었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없어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정상에 오르는 게 목적인 듯했고 시간에 쫓기듯 걸어야 했기에 여유로운 산행을 즐길 수 없었다.

빠르게 가느라 앞사람 꽁무니만 쫓다 보니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어 아쉬움만 남았다.

걷는다는 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과정을 걷는 것이라 생각한다.

- 가끔 길을 걸을 때, 길이 건네는 다양한 이야기와 느낌, 그리고 길 위에서 살아가는 뭇 생명들의 아우성이며, 그들이 건네는 이런저런 소리조차 듣지 못하고, 그저 걷는 행위만이 전부인 양 허위허위 걷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왜 굳이 힘들게 멀고 먼 이곳까지 걸으러 왔는지 회의감마저 든다. 걷는다는 것은 세상과의 반가운 조우이면서, 매 순간이 새로운 만남인데도 가끔은 숙제하듯 걷고 있었던 것이다. (90p) -

조금 늦더라도 느려진 걸음 속에서 느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길가에 핀 이름 모를 들꽃들도 그냥 바라봐지지 않는다.

이런 즐거움들이 나를 다시 길 위로 산으로 나서게 하는 원동력인 듯하다.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도 있겠지만 돌아서 갈 수 있는 길도 있으며, 돌아간다고 틀린 것도 아니다.

어떠한 길을 가든 나에게는 새로운 발견이자 선물이라는 것을 길을 나설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지극히 평범했던 일상의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하루빨리 진정되어 예전처럼 다시 길을 걷고 싶다.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었다>의 저자 박대영은 sbs에서 27년 차 방송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길, 매력에 빠지다>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면서 전국의 다양한 길에 눈을 뜨게 되었고 그렇게 걷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다.


구불구불한 길이 품고 있는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가, 늦어도 늦은 것이 아니라며 어깨를 토닥이던 세상살이의 가르침이, 찬찬히 바라볼 때 제대로 볼 수 있다는 평범한 사실이 느리게 걸어도, 지름길을 두고 돌아서 걸어도 괜찮다고 속삭이듯 알려주었던 것이다. 또 어쩌면 인생이 고달프면 걸으라던 누군가의 조언처럼 삶의 여정에서 경험했던 한두 가지의 쓰디쓴 경험도 강둑을 지나고 산자락을 헤치며 나아가는 그 길 위로 나를 데려다주었을 것이다. 삶은 느리게 걷는 그 걸음걸음 안에 있었다. 무엇이 되어야 하는 삶이 아니라, 즐길 수 있고 즐겨야 하는 삶이 바로 그곳, 길 위에 있었다. (4~5p)


걷는다는 것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일이자 자신을 '내려놓는' 연습이었다. 자연을 만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야 할 이유들은 널려있었고 걸었던 어느 곳, 매 순간마다 그곳에는 또 다른 내가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방황하고, 또 한 번쯤은 길 위에서 쓰러지고, 헤매기도 하는 법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다만 돌아가야 할 그 길을 잃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다시 걸을 수 있는 용기가 남아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지름길을 놓쳐 먼 길을 돌아가는 여정마저도 누군가의 오늘이며, 오늘들이 쌓이고 쌓여 특별하고, 또 소중한 우리 자신만의 인생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산다는 것은 셰릴 스트레이트의 책 <와일드>가 말하듯'누구나 한 번쯤은 길을 잃고, 또 한 번쯤은 길을 발견'하며 나아가는 여정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네 삶이자 인생이다.(40~41p)


서두를 이유도 필요도 없이 발을 떼어놓은 때마다 조금씩 변하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그저 나아갈 뿐이다. 굳이 멀리 바라볼 필요도 없이 내딛는 발이 닿는 만큼의 앞만 바라보며 걸으면 충분하다. 많은 선지자들이 전하는 진리 중 으뜸 역시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사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설상 산에서 걷는다는 것은 굳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바로 여기 이 순간'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도량이기도 하다. 멀리 바라보기 위해서는 당장 내 발밑, 다음 걸음을 내디딜 그곳을 살펴야 한다. 결국 정상에 이른 유일한 방법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것이다. (44p)


정상은 머무름을 위한 장소가 아니다.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몇 굽이의 길을 지나자 오늘 여정의 끝이 보인다. 그렇게 길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살아내야 할 삶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잠시 내려놓고 왔던 그 삶을 ... 세상의 밖으로 뚫고 나가 다른 세상으로 이어져 있을 것만 같은 그 길도 결국은 출발선의 그 세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짧지만 풍족했던 휴식의 시간은 결국 산 아래에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애썼던 모든 노력들은 결국 돌아오기 위한 연습이었음을... (51p)


길의 끝에서 다음 길을 생각한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어디론가 가야 하는 이유는 중연의 어느 즈음을 지나고 있는 내 삶과 자신에게 건네야 할 선물들이 그곳, 그 길 위에 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커다란 꿈일랑은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고, 스스로 누리는 작은 것에 만족하며 행복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소유보다는 마음의 크기를 키움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던 누군가의 충고를 실행해야 할 나이인 것이다. (3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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