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 기쁨의 하얀 길 편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원작,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 / 대원앤북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

주근깨 빼빼 마른 빨강머리 앤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워

상냥하고 귀여운 빨강 머리 앤

외롭고 슬프지만 굳세게 자라

가슴엔 솟아나는 아름다운 꿈

하늘엔 뭉게구름 퍼져나가네

빨강머리 앤 귀여운 소녀

빨강머리 앤 우리의 친구

♬♪♩


국민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아침 꿀잠의 유혹을 떨치게 만들었던 노랫소리.

엄마가 일어나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TV 볼륨 소리에 벌떡 일어나 눈을 비비며 시청했던 빨강머리 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시간대를 달리하며 방영할 때마다 꼬박꼬박 챙겨 보았던 것 같다.

친구들 중에는 수다스럽기만 하고 예쁘지도 않은 캐릭터에 매번 구박받고, 의심받는데도 또 고집은 얼마나 센지 거의 생떼 수준에 가까운 앤을 좋게 보지 않기도 했다.

솔직히 틀린 말도 아니고 나도 그런 장면들에서는 화도 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앤의 무한한 상상력과 풍부한 감수성과 꾸밈없는 솔직함과 순수함이 무작정 좋았던 것 같다.


<빨강머리 앤>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고전 <그린 게이블의 앤>을 원작으로 1979년 일본 후지TV가 [명작극장]으로 제작한 지브리 스튜디오의 명작 애니메이션이다.

우린 나라에서는 1989~1990년대에 방영되었는데 그 당시 유년기를 보낸 독자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작품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한적한 시골 마을 에이번리에는 아담한 초록색 지붕집이 있다.

그 집에 사는 남매, 매튜와 마릴라는 농사를 도와줄 남자아이를 보육원에서 데려오기로 한다.

그런데 중간에 착오가 생겨서 남자아이가 아닌, 공상을 좋아하는 빨강머리 소녀 앤이 찾아온다.

마릴라는 앤을 보육원에 돌려보내려 했지만 마음이 약해져서 결국 다시 데리고 온다.

초록색 지붕집에 살게 된 앤은 영혼의 단짝 다이애나를 만나 우정을 쌓고 학교도 다니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낸다.

엄격하지만 공정한 마릴라와 다정한 매튜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앤은 수다스러운 사고뭉치 소녀에서 어느새 어엿한 숙녀가 된다.

그리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하고 퀸 학원에 진학해서 매튜와 마릴라의 자랑거리가 된다.


어릴 때는 늘 엄격하고 무서운 마릴라 아주머니의 싸늘한 표정이 미워 보이고 싫었었는데 좀 자라고 생각해보니 원래 조용하고 엄격한고 공정한 성격의 마닐라 아주머니에게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사고를 일으키는 앤이 되려 감당하기 힘든 존재였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티 나게 표현은 하지 않아도 늘 곁에서 힘이 되어주고,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매튜 아저씨만큼이나 앤을 아끼고 사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린 게이블의 앤> 원작은 앤의 전 일생을 다루고 있지만 만화영화로 방영된 <빨강머리 앤>은 앤이 퀸 학원에 진학하는 데까지만 제작되었다.

고교시절 원작을 밤새워가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하고많은 시간들 중 시험기간에 책으로 손이 뻗었을 뿐이었고 읽다 보니 밤을 새우게 된 것뿐이었다.

퀸 학원을 졸업할 때 앤은 선생님이 되고 길버트는 의사가 된다.

길버트의 청혼을 받지만 거절한 앤은 길버트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다시 초록색 지붕 집으로 돌아와 건강을 되찾은 길버트와 재회, 다시 청혼하자 앤은 수락한다.

결혼하고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겪게 되는데 군의관으로 참전한 길버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하게 되고 앤은 초록색 지붕집으로 돌아와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빨강머리 앤>을 통해 어린 시절 성장기의 앤을 보았다면 원작을 통해서는 어른이 된 후의 앤을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사랑스럽고 감수성이 뛰어나면 현명함까지 갖춘 멋진 여성으로 자란 모습에 책을 읽으며 뿌듯했던 느낌도 있었던 것 같다.


단출하고 화려하지 않은 영상이었는데도 어린 나이의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앤이 느끼고 상상하는 모든 순간들을 잘 표현해준 다양한 표정들과 아름다운 풍경들은 지금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땐 하얀 꽃잎이 흩날리는 벚꽃길의 아름다움도 몰랐고 대리석 기둥이 녹색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은 자작나무 숲속의 아름다움도 몰랐다.

어른이 되어 벚꽃길을 걸을 때 자작나무 숲속을 거닐 때 두 눈을 반짝이며 숲속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던 앤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두 손을 꼭 쥐고 두 눈을 반짝이며 '너무 근사해', '너무 아름다워', '무척 낭만적이야.'라고 말하는 앤의 환한 미소.

정말 예쁘지는 않지만 사랑스러운 소녀, 앤이다.

오랜만에 <빨강머리 앤>을 읽으며 과거로 추억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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