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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목적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 - 여행서 출판사 사람들의 유럽 소도시 여행기
이정기 지음 / 타블라라사 / 2026년 7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쉴 틈없이 달려온 나의 삶에서 '쉬어가기'란 조금은 낯선 단어였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앞만 보고 달려와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르렀지만, 나에게 여행은 사치라고 해야할까? 하지만 요즘 들어 내 마음에도 쉼이 필요하단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때 읽게 된 이정기 작가의 <우리는 목적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 표지의 문장 '이 에세이는 여행서 출판사의 소도시 유럽 여행기이자, 10년간 끝내 살아남은 작은 회사의 지독한 기록이다.'는 내 마음의 어느 한 부분은 두드렸다. 왠지 모르게 앞만 보고 달려온 내게 위로가 되 줄 것 만 같달까?

이정기 작가는 여행 전문 출판사 타블라라사의 대표이다. 화려한 가이드북 뒤에서 수많은 위기를 겪어오면 10년간 작은 출판사를 지켜낸 인물이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유럽의 소도시들의 풍경을 담고 있지만, 그 밑바탕에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과 작가가 내린 나름의 답이 깔려 있다. 남들처럼 마냥 편하게 낭만을 즐길 수 없었던 작가의 발걸음이 묘하게 휴식조차 제대로 누려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직진만 해온 나 자신과 닮은 느낌이어서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책의 앞 부분에 적혀 있는 저 글귀들을 읽는 순간 무언가 가슴을 탁 치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앞만 보고 달려올 때, 또래 친구들은 하하호호 웃으며 떠나는 그 모습들을 우두커니 바라만 보던 내 뒷모습이 떠올랐달까?



1부 생존(아헨, 몽샤우, 브뤼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
'직장인'에서 스스로 일터를 만드는 '집장인'이 된 이야기로 시작한다. 10테라바이트의 영상 데이터가 날아가면서 영혼까지 같이 날아간 그 뜻밖의 거대산 재앙 앞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방향을 틀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일어서야 했던 그리고 해내야만 했던 작가의 지독한 생존기를 아헨, 몽샤우, 브뤼셀, 암스테르담, 로테르담의 여정과 함께 풀어낸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2부 약속(릴, 생브낭, 레르, 아미앵, 상리스, 파리, 스트라스부르)
주인이 일곱 번이나 바뀐 도시 릴에 머무는 이야기를 읽으며 '이 도시는 이 과정에서 어떤 진통을 겪었을까? 또 그러면서 얼마나 단단해졌을까? 그리고 얼마나 고달팠을까?'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프랑스 시골 생브낭 에피소드를 보면 진정한 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 외 레르, 아미앵, 상리스, 파리, 스트라스부르를 지나며 변화에 대해서, 한걸음을 내딛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3부 검은 숲과 검은 독수리(독일 아우토반과 신성 로마 제국 도시들)
속도 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을 달리며 과거 참혹했던 전쟁의 흔적과 역사를 돌아볼 수 있었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됬다. 또한, 거대한 권력이 아닌 제각각의 특색을 지닌 도시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왔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4부 버티는 자들의 도시(프라이부르크, 메어스부르크, 울름, 뇌르틀링겐, 딩켈스뷜, 로텔부르크)
버텨낸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술 한 잔으로 도시를 지켜낸 로텐부르크의 '마이스터트룽크' 전설처럼, 각자의 방식으로 모진 세월을 견뎌낸 도시들을 통해 '버텨내는 자'들이 지닌 숭고함과 거친 아름다움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5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뷔르츠부르크, 밤베르크, 뉘른베르크)
뷔르츠부르크는 많은 역사적인 건물과 아름다움을 안고 있는 멋진 도시다. 이 멋진 도시도 2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 없었고 많은 것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수십년에 걸쳐 성당과 궁전의 원형을 그대로 복원했다. 이 과정을 통해 무너진 잔해 속에서 본질적인 것들을 다시 주워 담아 복원하고 현대에 맞게 바꾸어 나가는 것도 혁신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6부 우리는 그 목적지를 알려 하지 않을 것이다(프라하)
연금술과 신비의 도시 프라하에서 이 책의 여정은 끝이 난다. 남들이 보기엔 쓸모없는 연금술에 평생을 바친 뉴턴의 집요함이 근대 물리학의 기틀을 만든것처럼 꼭 목적지가 명확하지 않더라도, 지나온 그 모든 과정 자체가 이미 새로운 시작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유럽의 낯선 거리 풍경도 떠올랐지만, 그 거리를 걸으며 끊임없이 '생존'을 고민하는 작가의 내면들이 와 닿았다. 40대 중반의 지금 나 역시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허무함과 권태에 빠지곤 한다. 남들처럼 멋진 여행 한 번 제대로 못한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억울한 마음디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우리는 목적지를 묻지 않기로 했다>를 읽으며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비록 멋진 여행은 없었지만 그저 매일의 삶을 버티며 지내온 내 삶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지를 이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10년을 끝내 살아남은 작가의 지독한 기록처럼, 내 삶 또한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단단한 여정이었다. 삶의 권태기로 지쳐 있거나, 앞만 보고 달려오다 지쳐 공허함에 빠져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