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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위스키
에릭 오 지음 / 민음사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덧 내 나이 40대 중반!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여러가지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나이! 문득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커다란 곰이 업혀 있는 것처럼 축 쳐져 있는 것이 세월의 무게가 확 느껴진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흔들리고 고뇌하는 요즘 읽게 된 <천사의 위스키>! 단편소설 여러편이 묶인 소설집으로 세계적인 애니메이터이자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던 에릭오 작가의 첫 데뷔소설이다.

작가 에릭 오는 서울대학교 서양학과를 졸업하고 UCLA 영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몬스터 대학교>,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등의 작품에 애니메이터로 참여해 큰 역할을 하였다. 움직이는 영상과 빛, 그리고 연출로 세상에 매혹적인 작품을 선물하던 그가 이번에는 '글'이라는 도구로 빚어낸 세계 <천사의 위스키>

'등껍질', '바늘의 끝', '천사의 위스키', '무주, 숲속의 생활', '운이 사라진 밤', '두 번째 그림자', '웨스털리', '타고난 이야기꾼', '연어과 케일샐러드' 9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첫 번째 작품 '등껍질'이 나는 제일 인상깊었다. 사실 처음 소설에서 등껍질 이야기가 나올때 등뼈를 비유한 것으로 이해했는데 읽다보니 진짜 거북이의 등껍질을 말한거여서 당황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등껍질인데 어느날부터인가 주인공에게 등껍질은 알아내야만 하는 강박의 대상이 되었다. 왜 등껍질이 있어야하는지 등껍질은 어떻게 변해가는지.. 강박처럼 등껍질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느껴지는 것이 많았다. 등껍질은 지금 내가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가 아닐까? 거북이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등껍질을 지니고 살아가지만, 인간인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감정을 억누르고, 사회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가져야 하는 책임이라는 이름의 '고민과 고뇌의 감정적인 등껍질'을 스스로 만들어 짊어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주인공 지완의 등껍질을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나오는 장면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어쩌면 소설은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버텨온 우리의 시간을 비난하지 않고, 가만히 그 무거움을 알고 있다고 도닥여주는 것 같았다.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고 50대에 접어들어 세상으로부터 잊혀지고 외면당하는 주인공 정식이 밤길 드라이브 중 개량한복을 입은 꾀죄죄한 천사를 만나 종이컵에 위스키를 나누어 마시는 이야기이다. 젊은 날의 건강과 열정이 사라지고, 체력은 점점 빠지고, 무엇하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세월 속에서 무언가를 자꾸 잃어버리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는 나에게 이 글은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했다. 사라진 것들이 꼭 상실만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내면을 조금 더 단단하고 진하게 연단시키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을 읽으며 위스키 한 잔이 내 마음에 있는 어떤 묵직함도 씻어내려주는 느낌이었다.

요즘은 장편 소설을 읽을 마음에 여유가 많지 않았는데 단편 소설을 엮어놓은 소설집이어서 틈나는대로 읽기가 편했다. 9편의 단편들이 하나같이 잔잔한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머릿속에 그려져서 좋았다.
짧은 단편들을 하루에 한 편씩 잠들기 전 꺼내 읽다 보면, 지친 하루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것 같았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와 조금은 지치고 피곤한 나에게 어쩌면 괜찮다 다독여주는 위로같은 독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