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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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흔이 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마흔 중반을 넘어섰다. 이제는 20대의 열정과 패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개성보다는 예측 가능한 궤도 안에서 생각을 하게 되고 흘러가기를 바라게 된다. 매일 아침 눈을 떠서 마주하는 하루, 직장인으로써, 엄마로써, 아내로써 짊어진 책임감,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도 이렇게 무던하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어떤 익숙함.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더이상 예기치 못한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지평선이 그만큼 가까워졌음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지금 평범한 궤도를 벗어나기엔 두렵고,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엔 조금은 지친 나이! 이러한 일상의 무던함이 조금은 지루하고 공허해질 때 만나게 된 <수평선 너머>

저자 벤자민 마이어스는 자연의 풍광과 인간의 내면을 시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로 그려내는 영국의 실력파 현대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그는 주로 영국의 거친 자연과 지방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사회적 소외 계층이나 자연과 교감하는 인물등릐 이야기를 밀도있게 다룬다. 그의 글은 서정적이면서도 묵직한 힘이 있어,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삶의 본질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돌아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저널리스트 출신답게 시대를 읽는 날카로운 시선과 인간을 향한 다정한 시선을 동시에 지닌 작가이다.

이 소설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직후의 영국이다. 열여섯 살 소년 로버트는 대를 이어 광부가 될 운명을 타고났다. 숨이 막히는 땅속으로 들어가기 전, 그는 세상의 끝을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길을 떠난다. 푸른 들판과 언덕을 지나 다다른 해안가 마을에서 세상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야생적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노부인 '덜시'를 만난다. 주인공을 얽매는 대를 이은 가업이라는 것은, 어쩌면 40대인 내가 겪고 있는 '틀에 박힌 일상'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틀에 박혔다는 것이 재미가 없을 수는 있지만 다른 의미로는 안정적인 일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안정적 일상을 과감히 이탈한 '로버트'! 그리고 그런 소년에게 "시간을 잔뜩 비웃자"며 매일 밤 시와 문학,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노부인 '덜시'의 우정은 어떠한 자극적인 서사없이도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대신 오늘이 무한하다고 여기자.(...) 시간이란 결국 포획하고 통제하기 위해 우리가 자진해서 세운 임의적인 경계의 다발일 뿐이니까. 오늘이 영원히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자, 로버트. "

'덜시'가 '로버트'에게 한 이 말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40대의 나는 시간의 귀함을 안다. 그래서 철저히 포획하고 통제하려 애쓴다. 몇살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노후 자금을 얼마를 모으고, 은퇴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끊임없이 계획하고 계산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소설은 묻는다. 내가 세운 그 계획과 통제가 진정한 너의 '오늘'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은 아니냐고.

가업을 뒤로 하고 막연한 도전을 택한 '로버트'는 탄광의 매연 대신 바다의 짠내를 맡을 수 있었고, 곡괭이 대신 시집을 손에 들게 되었다. 그는 점차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문학은 로버트의 미래를 깜깜한 탄광 속 어둠에서 수평선 너머의 푸른빛으로 바꾸어 놓는다. <수평선 너머>는 어쩌면 로버트라는 한 소년의 성장 드라마이다. 이 성장 드라마를 읽으며 40대 중반인 내가 위로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이 소설이 단순히 '철없는 10대의 방황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바라지 않는 친절과 따뜻함, 그리고 문학이 한 사람의 일생 전체를 어떻게 지탱하고 구원해 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면 혐오와 냉소가 가득한 지금의 세상에서, 작가는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의 묘사와 다정한 문장들로 인간성에 대한 신뢰를 북돋워 준다. 내 나이쯤 되면 세상의 여러가지 맛을 알기에 타인의 무조건적인 호의를 의심하고, 한발 물러서 취하는 냉소적인 태도가 어른의 본질인양 행동할 때가 많다. 이런 나에게 작가는 이토록 다정하고 급진적인 따뜻함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타인에 대한 가장 친절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다."라는 말은 나이가 들수록 어쩐지 서글프고 공허하게 들린다. 앞으로 더 늙어갈 일만 남았다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드리고 싶지 않아서 세우는 방패같아서이다. 하지만 이 책 <수평선 너머>를 덮으면 나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바다와 하늘이 만나는 경계인 수평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내가 앞으로 걸어가는 만큼 수평선도 뒤로 물러나며 새로운 공간을 보여준다. 마흔여섯의 나이 역시 인생의 후반기라고 생각하지 말고, 또 다른 수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부드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한걸음씩 내딛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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