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순간들
이아 옌베리 지음, 우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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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순간들>>이라는 제목이 참 맘에 드는 소설! 좋은 기회가 닿아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소설은 2022년 스웨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우구스트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나'라는 존재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어떻게 정의되는지를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저자 이아 옌베리(Ia Genberg) 스웨덴의 저널리스트 출신 소설가로, 절제된 문체와 인간 심리의 심연을 파고드는 통찰력이 특징이다. 작가는 "우리는 우리가 만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고열에 시달리며 침대에 누워 있던 화자가 과거에 소중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과의 관계가 현재의 자신을 어떻게 빚어냈는지 복기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이 소설은 시작다.

이 책은 주인공의 삶에 흔적을 남긴 네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요한나 - 과거의 연인으로 열정적이었던 젊은 날의 사랑과 이별을 뜻한다. 함께 읽었던 책과 공유했던 지적 허영심을 통해 자아를 형성하던 시기를 다룬다.

  2. 니키 - 폭풍 같은 친구로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했던 친구와의 관계를 의미한다. 타인의 고통과 광기가 나의 삶에 어떤 파동을 일으키는지 보여준다.

  3. 알레한드로 - 짧은 만남의 연인으로 강렬했지만 순식간에 사라진 관계이다. 육체적 이끌림과 그 뒤에 남겨진 허망함, 그리고 찰나의 순간이 남기는 영원한 기억을 서술한다.

  4. 비르기테 - 화자의 어머니로 화자에게 가장 근원적이고도 복잡한 존재이다. 어머니의 삶과 죽음 통해 화자가 지닌 불안의 뿌리를 탐색하며 이해와 화해의 과정을 그린다.

이 소설은 독특하게도 주인공 '나'의 직접적인 신상정보나 외모를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만난 사람들, 내가 읽은 책들, 내가 머물렀던 공간의 디테일한 표현을 통해 역설적으로 '나'를 증명한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을 남기는 과정임을 깨닫게 한다. 그들이 떠난 후에도 그들이 쓰던 단어, 그들이 좋아했던 음악이 내 안에 남아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소설 속 화자가 고열속에서 떠올리는 사소한 습관이나 문장들은, 사실 우리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했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별과 죽음으로 점철된 과거를 슬퍼하기보다 그들이 내 삶에 머물다 감으로써 내가 '완성'되었다는 긍정적인 허무주의를 느끼게 한다. <<기억의 순간들>>은 화려한 사건은 없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내 인생이라는 퍼즐의 조각들은 사실 타인들의 얼굴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회고록 같은 소설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세부 사항을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들이 모여 나의 역사가 된다." 나 역시도 과거를 돌아보면 굉장히 와닿는 문장이다. 과거의 스쳐가는 인연들과 기억의 순간들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었고 나의 시간들을 채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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