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째 레인
카롤리네 발 지음, 전은경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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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모도(@knitting79books)서평단 자격으로 다산북스(@dasanbooks)로 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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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두 번째 레인』은 소란스럽지 않지만, 끝까지 집중하게 되는 힘을 지닌 소설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틸다’라는 인물이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눈에 띄게 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그녀가 하루하루를 견디는 모습은 조용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틸다는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책임을 짊어진 인물입니다. 알코올 중독인 엄마와 어린 동생을 돌보며 살아가는 그녀는, 어른보다 어른스러운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틸다의 삶을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대신 틸다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독자 스스로 그 감정에 다가가게 만듭니다.

책 제목이기도 한 ‘스물두 번째 레인’은 단순히 수영장 레인이 아닙니다. 그것은 틸다가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자, 외부의 시선과 역할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수영장에 있는 순간만큼은 그녀도 그저 또래의 소녀가 될 수 있습니다. 물속의 고요함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더욱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과장되지 않은 말투와 행동으로 독자의 몰입을 이끕니다. “네 성은 너와 잘 어울려.” 같은 짧은 대사에서조차 인물들 사이의 정서가 깊이 느껴집니다. 많은 설명 없이도 관계의 온도차가 자연스럽게 전해졌고, 그 덕분에 이야기의 흐름은 더욱 섬세하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감내해왔던 무게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가족이기에,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일들. 하지만 정말 그게 맞는 걸까? 틸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도 자신만의 ‘스물두 번째 레인’을 떠올리게 됩니다. 삶이 벅찰 때 잠시 숨 쉴 수 있는 공간, 그 공간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습니다. 틸다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그녀가 진정한 자신의 삶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스물두 번째 레인』은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어떤 순간에도 나를 지켜주는 문장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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