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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 갈색 눈 - 세상을 놀라게 한 차별 수업 이야기
윌리엄 피터스 지음, 김희경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마틴 루터 킹이 잔혹하게 암살당한 밤(1968년 4월),
아이오와 주의 작은 마을 라이스빌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제인 엘리어트는 결심한다.
'인종차별의 무분별함, 비합리성, 잔혹함'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고,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의 삶의 일부분이 될 수업에서 되돌릴 수 없는 기억으로 각인되도록 하기를. (14p)
다음날 그녀는 아이들에게
흑인에 대해 어떤 말을 들었는지, 무엇을 아는지 묻는다.
흑인을 만난 적도(이 도시에는 흑인이 하나도 없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적도 없는 아이들은
흑인은 백인보다 깨끗하지 않다, 똑똑하지 않다, 고
그들의 부모님, 어른들 혹은 TV나 라디오가 말한 대로 말한다.
인종차별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수동적이었던 그녀는
능동적인 무언가를 하기로 결심한다.
바로 아이들을 눈 색깔'만'으로 차별하는 실험을 하기로 한 것.
(그녀를 위해 덧붙이자면 아이들에게 이 실험은 처음엔 게임처럼 여겨진다.)
실험은 "오늘은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이 낮은 사람이고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이 높은 사람이야."로 시작된다.
푸른 눈의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얼굴을 찡그렸고 불편한 듯 몸을 뒤틀었다. 한 푸른 눈의 소년이 의자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네 눈이 무슨 색이지?"엘리어트가 소년에게 물었다.
"푸른 색요." 소년이 다시 반듯하게 앉으며 대답했다.
"너는 교실에서 그렇게 앉으라고 배웠니?"
"아니요." 소년이 대답했다.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은 교실에서 뭘 배웠는지 기억이나 하고 있니?" 엘리어트가 학급 아이들에게 물었다.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아차린 갈색 눈의 아이들 쪽에서 합창이라도 하듯 "아니요!" 하는 대답이 나왔다. 그 푸른 눈의 소년은 이제 꼿꼿하게 앉은 채로 손을 책상 위 정중앙에 단정히 포개어 놓았다. 반에서 그와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갈색 눈의 소년이 그의 근처에 앉아 있었는데, 멸시하고 업신여기는 듯한 눈초리로 그 소년을 바라 보았다. 일은 그렇게 빨리 시작되었다. - 24p
단지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다는 이유로,
아이들은 푸른눈이 정말로 열등하고, 갈색눈은 우월하다고 믿는다.
푸른눈의 아이들은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꼈고, 갈색눈의 아이들은 자신이 우월하다고 느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엘리어트는 한눈에 아이들의 눈 색깔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그건 푸른 눈의 아이들은 패배자의 모습이었고, 갈색눈의 아이들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월요일,
그녀가 "푸른눈이 우월하고, 갈색눈이 열등하다"라고 말했을 때,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차별을 경험한 푸른눈의 아이들은 갈색눈의 아이들을 차별한다.
갈색눈의 아이들은 금요일의 푸른눈의 아이들보다 훨씬 더 불행해 보인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월요일의 이 역할 바꾸기가 끝나고 엘리어트가 그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다고 말해주면서
실험은 끝난다.
실험을 마친 아이들의 글짓기는 흥미롭다.
"차별이란 행복한 것과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금요일에 우리는 차별을 실험했다.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이 모든 일을 먼저 했다. 내 눈은 푸른색이다. 나는 갈색 눈의 아이들을 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리고 갈색 눈을 가진 사람을 발로 차고 싶었다. 학교도 그만두고 싶었다. 갈색 눈을 가진 사람들은 쉬는 시간도 5분 더 받았다. 월요일에 나는 행복했다. 나 자신이 크고 똑똑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리는 쉬는 시간을 5분 더 받았다. 우리는 모든 일을 먼저 했다. 운동장 놀이 기구도 갖고 나갈 수 있었다. 나는 차별을 좋아하지 않는다. 차별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평생 화난 채로 살고 싶지 않다." -38p
이 책은 술술 읽히지만, 어떤 한편으로는 읽기 힘들다.
명백히 잘못된 권위에 대해 모두가 순응하는-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상황이 무서웠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실험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걸로 '차별의 참의미를 체득하게 되더라도' 그런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밀그램 실험에 대해 처음 읽었을 때의 불편함과 비슷했다. 사실 이 실험 자체도 '권위'가 사람에게 어떤 일을 가능하게 하는가, 라는 점에서 밀그램 실험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밀그램 실험쪽이 훨씬 원초적이기는 하지만.). 제인 엘리어트의 고민도 비슷했다.
엘리어트는 자신이 평소에 돕던 아이들을 괴롭히고, 자신이 조롱으로부터 보호하던 아이를 조롱하기 위해 지목할 때 스스로 괴물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할 때마다 내면에서 그녀는 계속 움찔했다. 아이들이 제공한 단서를 얼른 집어내 아이들을 공격하라고 자신을 윽박질러야 했다. 매일 수백 번씩 실험을 취소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너희는 왜 이 상황을 참기를 거부하고 맞서지 않는 거니? 너희는 왜 서로를 나로부터 보호하지 않지?' - 54p
그녀는 더 나은 방법이 (현재로선) 없다는 생각에 다음해, 다른 아이들과도 이 실험을 한다. 그리고 고무적이게도(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 소년은 실험 내내 눈 색깔이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엘리어트가 차별적인 말을 할 때마다 "사실이 아니에요."라고 말했고, 소년이 속한 우월한 그룹이 쉬는 시간을 추가로 받을 때에도 그게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엘리어트는 "넌 좋아해야 하는 거야, 폴."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아마도 그때 그녀의 마음은 정말로 기뻐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쓰여있지는 않지만.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었다.
떠올려보면, 나는 그다지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 (차별을 받아도 모를 정도로 둔감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차별받는 상황에서 '이건 옳지 않아요!'라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혹은 타인이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을 때 '이건 옳지 않아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미국 노예들을 그저 바라보았던 대다수의 미국인들, 유대인들을 그저 바라보았던 대다수의 독일인들처럼 되지는 않을까. 그래서, 아마도 "사실이 아니에요!"라고 당당하게, 내내 말한 저 소년의 이야기가 그렇게나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있어, 라는 안도감. 1969년의 실험(세번째 실험이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에서 브라이언 셀타우가 그랬던 것처럼.
이 실험이 아이들에게 지속적인 가르침을 주었을까? 14년후 미니 동창회에서 다시 만난 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하지만 어떤 선생님들은 엘리어트에게 배운 아이들에 대해서 불평했다. 차별적 태도에 대해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거침없이 말한다는 이유에서다. 하!)
저런 식의 과격한 방법이 어느 정도나 효과적인가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분명하게 (다시) 생각한 것이 있다. "차별은 (잘못된) 권위에서 시작되고, 묵인으로 유지된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차별 받는 쪽이든, 우월한 대접을 받는 쪽이든)나는 얼마나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