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우주가 소립자를 부품으로 하는 양자컴퓨터라고 말한다.
사람은 아직 우주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 했다. 그럼에도 컴퓨터라는
작은 우주를 만들어내면서 '우주가 혹시 컴퓨터는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군 제대 후, 왜 안 읽었나 싶어서 뒤늦게 구했다.
당시 인터넷 서점에서는 모두 품절이었다. 다행히 지역서점인
영풍문고에 전화했을 때 마지막 1권이 남아있어 구할 수 있었다.
독후감을 쓰면서 다시 검색해보니 알라딘 중고가 12만원에 올라와있다..
책은 오래된 종이가 아닌 텍스트 정보로써 의미가 있기에 이제부터 전자책
위주로 구매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처음에 SF소설책들을 리뷰하려 했는데, 책들이 모두 아빠 집에 있어서
배송이 필요했다. 이점도 종이책의 한계라 아쉬웠다.)
분량은 295쪽으로 길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고전컴퓨터와,
양자요동이 주가 되는 양자컴퓨터의 비교를 중점으로 다룬다.
성능 비교를 넘어서서, 우주를 시뮬레이션하고 계산할 수 있는
기계는 바로 우주 그 자체이며, 이는 소립자를 계산도구로 하는
양자컴퓨터가 유력한 '우주 컴퓨터' 후보임에 힘을 싣는다.
저자 '
세스 로이드(Seth Lloyd)'의 생각이 개인적으로 동감하는 방향이라
내용을 기분좋게 따라갔었음을 기억한다.
무엇보다 고전 컴퓨터에 양자역학의 중첩, 얽힘의 특성을 더해가며
점점 업그레이드하는 기분은 재밌게 읽힌다. 하지만 2006년에 출판된
책에서도 설명하는 양자컴퓨터 구현의 치명적인 문제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있다. 이야기를 풀어가며 아래에 정리할 것이다.
우주가 컴퓨터가 아닐까하는 생각은 컴퓨터의 태동기부터 있었다.
1940년 대 초반, 세계 최초의 상업용 컴퓨터를 만든 독일인
콘라트 추제(Konrad Zuse)는
우주가 근본적으로 만능 디지털 컴퓨터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우주가 디지털 컴퓨터, 즉 오늘날 우리가 쓰고있는 고전 컴퓨터라는
가정에는 계산 성능적인 면에서 문제점이 있다.
계산(calculus)은 그리스어로 조약돌을 의미한다. 저자는 최초의 계산이
조약돌을 배열하고 재배열하는 것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부족에 남자가 몇인지,
토기가 몇개인지. 아마 그런것을 땅바닥에 기억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돌 대신 구슬을 나무 막대에 박아 넣으면 움직이기 쉽고 돌을
잃어버릴 걱정도 없음을 알게 된다. 나무 컴퓨터, 주판은 '0'이라는 추상적인
개념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조약돌 컴퓨터가 나무 주판의 계산력을
따라갈려면 얼마나 많은 돌이 필요할까? 오늘날의 인텔 CPU와 비교한다면?
우리는 계산에 쓰이는 기술이 계산능력의 한계를 결정함을 알 수 있다.
- '윌킨슨 마이크로파 비등방성 탐색기'가
(Wilkinson Microwave Anisotropy Probe, WMAP)
보여주는 우주 배경 복사의 비등방성
문제는 고전컴퓨터가 우주 전체 정도의 시공간, 에너지를 사용하더라도
우주를 시뮬레이션하는데는 어려운 문제점이 있다. 우리 우주가 결정론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은 너무나 거시적이어서 상대성 이론의 영역인 우주는
빅뱅 초기에는 양자역학의 양자요동이 관여할 수 있는 미시세계였다.
양자요동으로 인해 초기 우주의 에너지 밀도는 완전히 균일할 수 없었다.
어떤 지역은 다른 곳보다 약간 더 밀도가 높았다. 중력은 이 작은 차이를 증폭시켰다.
이는 곳 은하단의 씨앗이 되었고, 은하와 태양 등 우주의 밀도를 결정했다.
중력이 태양의 열핵반응까지 이끌어낸 순간에, 방사하는 에너지를 통해
생명체가 태어날 수 있게 되었다. 우주는 마치 양자역학을 커널로 부팅한
운영체제와 같다고 생각한다. 항성계는 빛과 중력의 네트워크로 이어져있다.
우주가 생명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생각은 물리학자들이 '
인간원리'라 부르고 있다.
(인간원리는 생명탄생을 위해 우주가 적절한 팽창, 적합한 자연법칙으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는 이론이다. 인간을 위한 우주라는 논리는 초월적인 지적설계자를 가정해 과학계
내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우주는 인간에게 관측되기 위해 존재하는가?
생명이 존재하는 우리 우주를 바라보는 기준이 인간원리가 내세우는 것처럼 의도된
우연인지, 신을 가정함으로써 과학의 객관적인 탐구정신을 포기하는 것인지는 아직까지
불분명하다. 이를 잘 설명해주는 책으로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의
'
우주의 풍경(The Cosmic Landscape)'이 있다.)
양자 단위의 미시세계에서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의
불확정성 원리에 따라 관찰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2가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나가 분명해지면 하나는 불확실해진다. 타겟 양자의 위치를 알려면, 양자인 광자를
쏘아서 우리가 '감지'할 수 있어야 하는데, 광자를 맞은 양자는 운동량이 달라져버린다.
양자역학 세계에서 관찰은 여러번의 관측을 통한 기댓값과 통계적인 예측만 가능하다.
위치와 운동량이 결정되지 않은, 모든 결과가 중첩된 상태를 양자 '결맞음(Coherence)'
상태라고 한다.
바둑판 361개의 착점 가운데 하나에 놓여질 바둑알은, 마치 361개의 중첩된 상태를
가지는 양자와 유사하다. 바둑 두는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는 이세돌의 마음을
알 수 없다. 이세돌이 바둑알을 놓는 그 순간, 즉 중첩된 상태가 어떤 하나로
결정(붕괴)되어서야 그 경우가 아닌 나머지 경우의 가지들은 잘라버리고 거기서
또다시 자신이 유리한 경우의 가짓수를 펼칠 것이다. 그것을 수 천, 수 만번
반복하고서야, 어디에 자신의 바둑알을 두는게 유리한지 결정할 수 있다.
고전 컴퓨터는 우주, 아니 커피 한잔을 구성하는 양자 하나하나와 바둑을 둘 수 있는가?
그러려면 알파고가 얼마나 필요한가. 여기서 양자가 중첩 상태에서 어떤 한 가지
경우로 결정되는 것을 양자 '결잃음(Decoherence)'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양자컴퓨터는 중첩상태의 양자가 가지는 동시성을 이미 가지고 있다.
저자가 '양자컴퓨터로 우주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은 우주 그 자체와 구별 불가능하다'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양자컴퓨터의 동시성은 고전 컴퓨터의 병렬성과는 다르다.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비트가 중첩상태로 동시에 있는 것이다.
고전컴퓨터는 1,024개의 처리량을 실제하는 256개 비트 4개나
128개 비트 8개로 분담하는 '동시에'지만, 양자컴퓨터는 10 큐비트가 1,024(2^10)개의
상태를 중첩해서 동시에 가지고 있다. 거기에 양자가 큐비트를 뒤집는 속도는
고전컴퓨터가 축전기를 충전하고 방전하는 것보다 1만배 정도 빠르고, 1조배 정도
적은 에너지를 소모한다고 책은 말한다.
(큐비트[qubit]는 양자컴퓨터가 사용하는 정보 단위이다. 고전컴퓨터가 트랜지스터로
축전기에 전자를 넣고 빼서 0과 1을 만들듯이, 양자컴퓨터는 레이저 펄스로 양자의
스핀 방향을 반시계 또는 시계 방향으로 결정해 0과 1을 만든다. 정보의 단위이기에
꼭 양자의 스핀 방향을 기준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레이저 펄스로 실제 큐비트를
프로그래밍하는 예제는 후에 책 '
양자컴퓨터'에서 묶어서 소개하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소개하면서 양자컴퓨터에 너무 많은 금가루를 뿌렸다. 그렇다면 왜 양자컴퓨터는
아직도 상용화하기 어려운 걸까? 문제는 의도하지 않은 결잃음이다.
고전컴퓨터는 우리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발을 놀리다 실수로 컴퓨터를 걷어차더라도
스피커에는 여전히 노래가 흘러 나오고 모니터에는 작업중인 문서가 띄워져있다.
CPU와 메모리, 즉 트랜지스터와 축전기가 그정도의 외부자극은 견뎌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자컴퓨터는 아직 결과를 얻기도 전인데, 발을 구르며 일으킨 바닥의
진동으로 양자의 중첩상태가 붕괴되버린다. 이미 음악소리가 진동시킨 공기가
결잃게했을 것이다. 양자컴퓨터에 계산을 맡기려면, 우리는 절대 중간에 그
계산을 살펴보지 말아야한다. 책에서는 이를 교향악적 효과라고 한다.
최후에 필요한 양자만 의도적으로 결잃게해서 원하는 값만 챙겨야한다.
이때문에 양자컴퓨터를 외부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대단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 구미호(nine tailed fox)
링크(혹시 그림 저작권이 문제된다면 바로 내리겠습니다.)
책을 번역한 오상철님은 이를 구미호 전설에 비유한 김재완 고등과학원 교수님의
표현을 소개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한 구미호가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를 하는데, 남편에게
100일 동안 밤에 자기 방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100일이 지나가기
전에 남편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방안을 엿보고 말았다. 그래서 구미호는 결국
사람이 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