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그리고 레몬사탕
박소을 지음 / 샘터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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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그리고 레몬사탕> 박소을, 샘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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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고 습한 공기 속에서 가만히 숨만 쉬어도 쉬이 지쳐버리는 계절이기에, 여름이 오면 늘 달력의 숫자를 세며 이 계절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 해를 통틀어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기는 계절은 언제나 여름인 듯 하다. 눈이 시리도록 내리쬐던 한낮의 뙤약볕, 예고도 없이 쏟아져 발목을 묶어버리던 소나기, 잔 안에서 덜그럭거리며 녹아가던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 소리 같은 것들. 박소을의 『얼음 그리고 레몬사탕』을 읽으며 비로소 그 이유를 조금은 가늠하게 되었다. 여름은 감정의 온도 마저 너무 쉽게 달아오르고, 그만큼 손쉽게 상처로 변질되는 계절이기 때문인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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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입술에 묻어나는 아이스크림의 단맛, 밤새 끈적이는 땀에 지친 열대야와 멀리서 부서지는 파도처럼 누구나 한 번쯤 겪어냈을 일상의 조각들이 시집 속에 담담하게 담겨 있다. 이 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그 익숙한 사물들에 억지스러운 교훈이나 심오한 철학을 덧칠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창밖의 날씨를 무심히 응시하던 시선은 어느새 누군가를 남몰래 품었던 마음으로 번져가고 무심코 흘려보낸 사소한 풍경은 불현듯 이별의 쓸쓸한 기척으로 모습을 변모하기도 한다. 억지로 해석하려 애쓰지 않아도, 시인이 그려놓은 장면을 눈으로 좇다 보면 어느 순간 내 기억 속 묻어두었던 계절의 한 장면이 슬그머니 겹쳐지는 느낌마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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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생 시인의 첫 시집이라는 이력은 분명 눈길을 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작가의 출생년도 따위는 까맣게 잊히고 만다. 문장 속에는 투명한 맑음과 설익은 서투름이 공존한다. 이 또한 이 시집의 재미였다. 때로는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비유가 눈에 밟히기도 하고 감정을 여과 없이 직선으로 내던지는 대목에서는 슬며시 멋쩍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 풋풋함조차 기분 좋게 다가왔다. 세상의 요령을 배워 감정을 능숙하고 세련되게 숨기기 이전, 오직 그 시절의 사람만이 적어 내려갈 수 있는 담백한 문장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괜히 어려운 척 복잡한 미로를 헤매이게 만드는 글이 아닌,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똑바로 적어 내려간 글은 그 자체로 청량한 기분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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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는 별것 아니라고 치부했던 사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에서 덩치를 키워가는 경험, 다 끝난 관계인데도 특정한 계절의 냄새만 맡으면 어김없이 되살아나는 이름. 그 통증은 억지로 치료하거나 해결해야 할 대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저 세월의 결을 따라 다른 모양으로 익어가는 자연스러운 흔적일지도... 시인은 그 아린 자리를 억지스러운 위로로 덮지 않고 그저 가만히 곁에 머물며 지켜봐 주는 것만 같았다. 다 녹아버린 얼음처럼 붙잡아둘 수는 없겠지만, 혀끝에 남은 레몬사탕의 맛처럼 어딘가 새큼하면서도 분명 조금은 달콤했던 시간들. 유난히 뜨거웠던 한 계절을 무사히 건너온 이들에게, 이 시집은 잊고 지냈던 마음의 온도를 조용히 되찾아준다.



* 이 책은 샘터 출판사(@isamtoh)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at @yamongyamong_ss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hiwonna_bier @apureumdite @i_am_what_i_read


#얼음그리고레몬사탕 #박소을 #샘터 #서평단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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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 -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정신과 의사의 생존 가이드
조애나 치크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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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 -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정신과 의사의 생존 가이드> 조애나 치크, 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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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힘든 일을 겪은 것도, 누군가와 큰 갈등을 빚은 것도 아닌데 퇴근길 문득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듯한 무기력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예전에는 그럴 때마다 체력이 떨어졌나, 요즘 내 멘탈이 나약해진 건가하며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 『정신 나간 세상에서 아픈 사람들』을 읽는 동안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보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겪는 피로와 불안은 온전히 내 체력과 내 안의 결함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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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무너지면 우리는 습관처럼 자기관리의 영역부터 점검하게 된다. 잠을 더 자고, 운동을 더 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하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그 시선을 사회라는 거대한 배경으로 한 걸음 옮겨가게 해준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쏟아지는 자극적인 뉴스와 불안, 끊임없이 서로를 비교하게 만드는 환경,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무한 경쟁의 한복판에서 홀로 말끔하게 온전함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개인에게 쏟아지는 온갖 불안과 피로는 결코 나약한 개인의 의지박약이 아니라, 숨 쉴 틈 없이 과열된 세계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파편이라는 것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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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음의 고통을 다루는 데 유독 조급한 경향이 있다. 불안하면 서둘러 지워내려 애쓰고, 우울해지면 어떻게든 기분을 끌어올려 정상 궤도로 돌려놓으려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일종의 제거해야 할 오류나 결함처럼 취급해 온 셈이다. 몸에 열이 나고 통증이 생기면 어디가 다쳤는지 원인을 살피듯, 마음에 차오르는 불안과 무기력 역시 지금 내 삶과 환경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몸의 경고음이다. 불편한 감정을 무작정 진압하기보다는 그것이 어떤 불합리한 상황을 가리키고 있는지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책은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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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든 문제를 사회 탓으로 돌린다고 일상이 저절로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견디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며 몰아붙이는 것은 결코 공정하지 않아 보인다. 인간은 진공 속에서 홀로 살아가지 않는다.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불안의 습관, 조직의 숨 막히는 공기, 시대적 불확실성까지 수많은 조건이 한 사람의 마음에 켜켜이 쌓여 지금의 통증을 빚어내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유난히 지치는 날이면 이유를 캐묻기도 전에 스스로를 다그치던 버릇을 조금은 내려놓아야 겠다. 또한 타인이 힘겨움을 털어놓을 때 성급한 처방을 내미는 대신, 그를 짓누르고 있는 상황의 무게를 먼저 가늠해보는 연습을 시작해봐야 겠다.



* 이 책은 푸른숲(@prunsoop)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정신나간세상에서아픈사람들 #조애나치크 #심심 #푸른숲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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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페페페
짐리원 지음 / 아작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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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페페페> 짐리원, 아작



🪿

여름 내내 요란하게 울리던 폭염 경보 재난문자가 무색하게도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시원한 가을이 찾아왔다. 올해 여름에는 한낮의 외출을 피하고, 약속 장소로 향할 때면 건물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길부터 먼저 가늠하곤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무런 준비 없이 나서던 여름날의 산책조차 이제는 기온과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레 첫발을 떼는 일이 되었다. 짐리원의 소설집 『펫페페페』를 읽으며 묘한 당혹감이 들었던 이유는, 책 속에 그려진 먼 미래의 디스토피아보다 오히려 지금 내가 매일 겪어내고 있는 오늘날의 계절이 낯설고 위태롭게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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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기후위기를 다루고는 있지만, 엄청나게 요란한 폭발이나 비장미 넘치는 재난 영화의 문법으로 전시하지는 않는다. 기묘하게 변형된 생명체와 신체, 새로운 과학기술 같은 SF적 장치들이 흥미진진하게 배치되어 있긴 하지만, 책장을 덮은 뒤 마음에 자리잡은 인상은 다소 소박한 것이었다. 세상이 서서히 망가져 가는 중에도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누군가에게 서툰 호감을 품으며, 끼니를 챙겨 먹고, 산책을 나선다. 그리고 자기 삶의 반경 안에 들어온 작은 존재를 돌본다. 세계가 파국으로 치닫는 거대한 서사 속에서, 역설적으로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금 우리가 무심코 흘려보내고 있는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이었다.


🪿

수록작 중 특히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이 아주 흥미로웠다. 이 단편을 읽고 나니 날씨가 참 좋다는 일상적인 감탄에 전혀 다른 무게감이 느껴졌다.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목적지 없이 천천히 발을 옮기는 일. 너무나 소박해서 행복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민망했던 그 행위가,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지불해야만 겨우 누릴 수 있는 희귀한 사치가 된다는 설정이 마음에 묘하게 와닿았다. 아직 내 곁에 생생하게 존재하는 대상을, 마치 이미 영영 사라져 버린 것처럼 애틋하게 응시하게 만드는 기묘한 감각. 아직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음에도 벌써부터 아득한 그리움이 차오르는 마음. 『펫페페페』의 행간을 흐르는 가장 짙은 정서는 일종의 노스탤지어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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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니 비장미 넘치는 결의와 다짐보다는, 날씨가 좋은 날 문을 열고 조금 더 오래 걷고 싶다는 단순한 마음이 차올랐다. 아직 나설 수 있을 때 부지런히 산책을 하고, 아직 내 곁에 온기를 품고 머무는 존재들을 조금 더 다정하고 세밀하게 눈에 담아두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어쩌면 먼 훗날 우리가 가장 간절하게 그리워하게 될 풍경은, 대단한 성취나 기적이 아니라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오늘 하루의 맑은 바람과 평온한 햇살일지도 모르겠다.



* 이 책은 아작(@arzak.livre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펫페페페 #짐리원 #아작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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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다면, 이재명처럼 - 이재명에게 배우는 일 잘하는 법의 모든 것
이남훈 지음 / 스피어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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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한다면, 이재명처럼 - 이재명에게 배우는 일 잘하는 법의 모든 것> 이남훈, 스피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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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정치인을 앞세운 자기계발서나 찬양조의 책을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더군다나 현재 대통령으로서 이재명이 보여주는 정치적 행보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해서는 아쉬움과 비판적인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 책을 펼친 이유는 분명했다. 진영 논리와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 시절 그가 증명했던 행정가로서의 기민함과 엉킨 매듭을 단숨에 끊어내던 탁월한 일머리만큼은 직업인으로서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책이 이재명이란 인물을 통해 조명하고자 하는 건 철저한 실전의 방법론이었다. 일이 복잡해질수록 주변부의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마련이다. 책은 이때 모든 것을 쥐려 하지 말고 전체 판을 움직일 핵심 고리 하나를 집요하게 찾아내라고 조언한다. 바쁘게 움직였다는 안도감에 속아 사소한 일에 매달리기보다, 수많은 소음 속에서 진짜 판을 흔드는 변수가 무엇인가를 골라내는 서늘한 분별력이 일의 성패를 가른다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진 이른바 '콩알 줍기'는 완벽주의에 갇혀 착수를 미루는 이들에게 유효한 처방이다. 거대한 결과물을 상상하며 지레 짓눌리기보다, 지금 당장 끝낼 수 있는 크기로 일을 잘게 쪼개어 하나씩 지워나가는 완료주의의 리듬이야말로 일을 실제로 굴러가게 만든다는 설명이었는데, 상당히 공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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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설명하는 이재명이란 인물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 역시 주목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상대의 요구를 경청하되 휘둘리지 않고, 부드럽게 소통하면서도 지켜야 할 원칙의 선을 분명히 긋는 태도. 사회생활에서 친절함과 우유부단함은 엄연히 다르며,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면서도 명확하게 선을 그을 줄 아는 단호함이야말로 감정 소모 없이 일을 오래 지속하게 하는 현실적인 기술이다. 


🫘

물론 그의 방식을 맹목적인 모범답안으로 여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도한 추진력은 독선이 되기 쉽고, 디테일을 향한 집요함과 만기친람형의 운영 스타일은 마이크로매니징의 피로를 부르기 십상이다. 중요한 것은 인물에 대한 평가와 무관하게, 과거 행정가로서 그가 보여준 날카로운 도구 중 무엇을 내 일의 현장으로 가져올 것인가를 냉정하게 선별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책장을 덮고 나니 내일의 업무 목록을 더 채워 넣기보다, 지금 쥐고 있는 일들 중 무엇을 가장 먼저 덜어내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나름 유용한 교훈을 준 책이라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 이 책은 스피어인(@spherein_pub)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일한다면이재명처럼 #이남훈 #스피어인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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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지음, 김종현 옮김 / 부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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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 - 누가 왜 가짜 과학을 만들고 퍼뜨리고 악용하는가> 지바 사토시,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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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를 하다 보면 공들여 세운 가설과 정반대의 데이터가 화면 가득 떠오를 때가 있다. 어디선가 오류가 났기를 바라며 코드를 몇 번이고 뜯어보고 데이터 전처리 과정을 되짚지만, 끝내 아무런 버그도 발견하지 못할 때 찾아오는 그 묘한 난감함이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결국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정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실은 내가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인정하는 일종의 수련과정에 더 가깝다. 지바 사토시의 『과학적으로 옳다는 착각』은 바로 그 불편함에서 출발한다. 얼핏 과학의 객관성을 깎아내리는 회의론자의 도발처럼 보이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이 책이 닿고자 하는 지점은 정반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학을 맹목적인 신앙으로 전락시키지 않고, 진짜 신뢰할 만한 앎으로 지켜내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를 묻는 치열함 가득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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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한때 주류 학계에서 정설로 통했거나 격렬한 논쟁의 중심에 섰던 역사적 사례들을 촘촘하게 살핀다. 스탈린 체제의 리센코주의, 백신 음모론과 유전자 결정론, 왼손잡이의 수명 통계, 진화론과 지적설계론의 충돌까지 다루는 주제에 대한 보폭이 꽤 넓다. 그중에서도 가장 폐부를 찌르는 대목은 우생학의 역사가 아닐까 한다. 관찰된 유전적 영향과 인간의 우열을 가르는 가치 판단 사이에는 결코 손쉽게 메울 수 없는 깊은 윤리적 심연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는 그 간격을 너무나 가볍게 건너뛰었던 전례가 있다. 설익은 과학의 언어가 인간의 오만한 선민의식, 정치권력, 전체주의 이념과 결탁했을 때 차별은 합리적인 이성의 판단이라는 번듯한 가면을 썼고, 대량 학살과 강제 불임이라는 끔찍한 국가 폭력마저 합리화되었다. 과학적 검증보다 이데올로기가 원하는 결론을 앞세웠던 소련의 리센코주의 역시 권력에 굴종한 지식이 어떤 파멸을 부르는지 명백하게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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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논문과 보고서 속에서 숫자와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연구자로서 이 책의 경고는 남일 같지 않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혹은 통계 데이터가 입증하듯이라는 문장을 그 어떤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강력한 방패막이로 사용하곤 한다. 데이터 자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떤 데이터를 취사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복잡한 맥락 속에서 특정한 수치를 골라내 해석하는 것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편향된 인간의 몫이다. 특히 그 데이터가 내가 평소 믿고 싶었던 신념이나 가설과 완벽하게 일치할 때, 우리는 검증의 문턱을 한없이 낮춰버리는 치명적인 유혹에 빠진다. 객관성이라는 갑옷을 둘렀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자신이 지닌 가장 주관적인 편견을 과학적 진리로 오인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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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저자가 경계하는 것은 과학 그 자체가 아니라, 과학의 외피를 쓴 성급한 일반화와 확신이 아닐까 한다. 과학이 다른 모든 믿음 체계와 구별되는 가장 위대한 힘은 무결성에 있지 않다. 오히려 더 나은 증거와 정교한 반증이 나타났을 때, 어제까지 진리라 믿었던 가설을 기꺼이 폐기하고 스스로를 수정할 줄 아는 유연함에 있는 것이다. 책장을 덮고 나니 늘 관성적으로 사용해 온 과학적으로 옳다는 말이 전보다 훨씬 무겁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 문장은 모든 의문을 종결짓는 마침표여서는 안 될 것이다. 아직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변수와 미지의 영역이 남아 있음을 인정하는 열린 쉼표여야만 한다.



* 이 책은 부키(@bookie_pub)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과학적으로옳다는착각 #지바사토시 #부키 #서평단 #북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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