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셋째 밤 ㅣ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3
일월명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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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셋째 밤> 일월명 · 클레이븐 · 배예람 · 김아직 · 차삼동 · 영선 · 현이랑 · 이상준 · 창궁,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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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인 충격을 앞세운 공포 영화는 그리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활자로 잘 다듬어진 기이한 이야기를 읽고 그 오싹함을 느끼는 건 상당히 좋아하는 편이다. 눈앞에 노골적으로 들이미는 시각화된 영상은 다소 꺼려지지만, 행간 사이에서 조용히 조여오는 긴장감과 상상력이 빚어내는 짜릿한 전율은 거부하기 힘든 묘한 쾌감을 남기기 때문인 것 같다. 스크린의 점프 스케어나 시각적 과잉 대신 활자를 택할 때 얻는 가장 큰 즐거움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로 장면의 농도를 직접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책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셋째 밤』은 바로 공포 장르의 이야기 특유의 으스스하면서도 짜릿한 묘미를 다채로운 맛으로 골고루 채워주는 진수성찬 같은 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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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은 하나의 틀로 묶이지 않을 만큼 저마다의 개성과 색채가 뚜렷했다. 원한과 주술이 얽혀드는 전통적인 한국형 괴담, 화성과 아득한 우주 공간을 무대로 펼쳐지는 SF 호러, 방 탈출 카페, 숨 막히는 직장 회식, 먼지 날리는 건설 현장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의 으스스한 변주까지... 이 단편집을 읽다 보면 종종 작품간의 완성도의 편차를 느낄 때가 많은데,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은 작품을 넘어 갈 때마다 분위기가 통째로 뒤바뀌는 덕에 다음 장에서는 또 어떤 기괴한 세계가 펼쳐질까를 기대하게 만드는 장르적 쾌감이 훨씬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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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중 단연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작품은 가장 짧은 분량의 「야!」였다. 짧은 순간을 포착한 이야기임에도,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몸이 으슬으슬 썰렁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밖에 없게 된다. 흔하디흔한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경구를 감각적인 서스펜스로 벼려낸 솜씨가 놀라웠다. 타인의 마음을 내 뜻대로 쥐고 흔들려는 통제욕이 기괴하게 나타난 작품 「창포꽃을 세 번 접으면」이나, 널리 알려진 고전을 비틀어 원작의 익숙함마저 낯설게 돌아보게 만드는 「호러 심청」 역시 읽는 내내 팽팽한 몰입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반면 건설 현장의 산업재해를 다룬 「우리 안에서」가 남긴 여운은 또 다른 의미로 공포스러웠다. 정체불명의 괴물보다 더한 공포는, 사람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음에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현장이 태연하게 돌아가고 남겨진 이들이 침묵과 은폐를 강요당하는 현실의 냉혹함일지도 모르겠다. 자본과 제도가 인간의 생명을 부품처럼 소모하는 풍경이야말로 오늘날 가장 서글프고 명백한 현실의 도시 괴담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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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고 나면 한국형 공포라는 장르를 바라보던 시선이 한층 넓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제 문학에서 느낄 수 있는 공포는 어두운 폐가나 피 칠갑을 한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닌 듯 하다. 매일 부대끼는 인간관계, 출근하는 일터, 고도화되는 기술, 심지어 광막한 우주까지 일상의 모든 틈새는 언제든 공포의 무대로 뒤바뀔 수 있다. 잘 쓰인 공포소설은, 읽는 순간의 소름을 넘어 책장을 덮고 난 뒤 매일 마주하던 평범한 풍경을 이전과 결코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인 것 같다. 현관문 너머의 작은 소음 하나, 무심코 지나치던 공사장의 풍경까지 새삼 의심하게 만드는 낯선 긴장감과 전율을 이 책을 읽으며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 르온서평단(단단한맘&레이첼)을 통해 도서를 협찬 받았습니다.

@gbb_mom

@lovely_rachel_v


출판사 : 황금가지(@goldenbough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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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소녀
브렌다 데이비스 지음, 유영일 옮김 / 올리브나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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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갇힌 소녀> 브렌다 데이비스, 올리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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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일생을 파괴하는 데는 꼭 괴물 같은 악의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 시대를 지배했던 편협한 기준과, 그 불합리한 규범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채 성실하게 따르고 집행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묵인이면 충분할지도... 열일곱 살의 노라가 사랑하는 사람의 아이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장면은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쉽게 믿기지 않는 비극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법과 의학의 이름 아래 지극히 합법적이고 타당한 조치로 여겨진 듯 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등골이 서늘해졌던 순간은, 한 개인을 향한 배제와 처벌이 국가와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정상 절차로 둔갑해 실행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였다. 사회가 누군가를 문제적 존재로 낙인찍어 울타리 밖으로 격리하기로 합의하는 순간, 그 사람의 호소와 눈물, 인간적인 감정은 얼마나 손쉽게 무의미한 소음으로 지워져 버리는가를 뼈아프게 목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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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통제 속에서 노라가 체득한 생존 방식은 읽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부당함에 맞서 저항하지 않고, 의문을 품지 않으며, 시키는 규율대로만 움직이는 길들여진 토끼같은 존재가 되는 것. 그것만이 파멸을 피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 무력한 순응이 꼭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 역시 크고 작은 조직과 사회의 틀 안에서 모난 돌이 되어 정을 맞지 않기 위해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곤 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 스스로 목소리를 낮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본래 무엇을 원하고 바라는 사람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순간을 마주한다. 거대한 구조가 인간의 고유성을 소거해 점차 길들여가는 메커니즘은 시대를 막론하고 서글플 만큼 닮아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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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 자넷이 노라의 삶에 발을 들이며 건네는 연대는 그렇기에 더욱 각별하게 느껴졌다. 자넷은 노라를 위한 영웅적인 구원자가 결코 아니다. 그가 행하는 가장 결정적인 행동은 노라를 병력 기록부 속 번호나 환자가 아닌 완전한 한 인간으로 대하며 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이었다. 오랜 세월 선택할 권리를 통째로 박탈당한 채 살아온 이에게, 자유는 단순히 굳게 닫혀 있던 철창문을 활짝 열어준다고 해서 완성되지는 않는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에게 다시 묻고, 내 손으로 사소한 선택을 내리며, 잃어버렸던 내 목소리로 세상과 마주하는 감각을 회복하는 긴 호흡의 시간이 함께 따라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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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겨버린 청춘과 지워진 수십 년의 세월을 온전히 보상받을 길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은 삶까지 무의미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아무리 늦은 순간일지라도, 남겨진 시간을 다시 내 의지와 온기로 채워나갈 수 있다면 삶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누군가를 벼랑 끝에서 구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타인의 인생에 불쑥 뛰어들어 대신 싸워주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이 스스로 힘을 내어 닫혔던 입을 열고, 자기만의 목소리를 되찾을 때까지 그 곁을 묵묵히 지키며 귀를 기울여주는 일.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구원은 바로 그러한 경청에 있는 것은 아닐까?



* 이 책은 올리브나무(@olive.tree.books)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갇힌소녀 #브렌다데이비스 #도서출판올리브나무 #북스타그램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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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왕 ㅣ 폭스코너 청소년소설 8
너새니얼 레소어 지음, 신선해 옮김 / 폭스코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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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왕> 너새니얼 레소어, 폭스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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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었던 시절, 교실 안을 지배하던 기묘하고도 팽팽한 서열과 분위기. 누가 가장 싸움을 잘하는지, 누구와 어울려야 무시당하지 않는지, 어느 무리에 속해 있는지가 하루의 안온함을 결정짓던 시절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눈으로 보면 대체 그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지만, 사방이 막힌 교실이라는 좁은 세계 안에서 제일 처음 배우게 되는 것이 권력 구조와 위계질서, 생존 본능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학교라는 정글에서 ‘왕’의 자리를 필사적으로 움켜쥐려는, 이 소설 속 주인공 앤톤의 불안한 모습은 (내가 그래본 적이 없기에) 완벽히 공감하기는 어려워도 결코 낯설지만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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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톤은 겉으로 보기에 전형적인 문제아다. 어른들의 권위를 비웃고, 아이들 위에 군림하며, 무리를 이끌고 거친 힘을 과시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라는 그늘,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 언제든 먹잇감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방향 잃은 공포, 그리고 주변의 기대 섞인 시선이 어떻게 앤톤으로 하여금 단단하고 거친 껍질을 뒤집어쓰게 만들었는지를 차분하게 드러내며 서술하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었다. 이 소설이 재밌는 점은 그가 세워둔 완벽한 성벽이 또 다른 강자와의 충돌이 아닌, 학교의 공식적인 '아웃사이더' 매튜와 얽히면서 시작된다는 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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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년이 빚어내는 관계가 유독 마음에 남는 이유는 뻔한 교훈주의의 함정을 영리하게 비껴가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매튜가 도덕적인 태도로 앤톤을 착하게 교화시키는 것도 아니고, 완력을 지닌 앤톤이 매튜를 위기에서 건져 올려주는 백마 탄 왕자가 되지도 않는다. 서로 전혀 다른 궤적을 그리며 살아온 두 아이는 어설프게 부딪치고 삐걱거리며 어울리는 사이,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조차 잊고 지냈던 진짜 자신의 모습을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는 점이 아주 흥미롭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조차 위아래를 나누는 서열이 필요하다고 믿었던 앤톤은, 매튜와의 시간을 통해 누군가를 내 발밑에 두는 대신 서로의 눈높이를 맞추고 나란히 곁에 서는 법을 비로소 배우게 된다.


🥊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소년들을 가두는 보이지 않는 감옥, 이른바 ‘맨박스(Man Box)’의 숨 막히는 규칙들을 마주하게 된다.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되고, 어떤 순간에도 두려움을 들켜서는 안 되며, 언제나 남들보다 강해 보여야 한다는 강박말이다. 이러한 서열과 역할극의 피로는 비단 십 대 시절의 교실에만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어른이 된 후에도 우리는 종종 직장의 직급, 사회적 평판, 주변이 기대하는 번듯한 페르소나라는 또 다른 왕관을 쓴 채, 그것이 혹여 벗겨지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익숙한 관계와 조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내 존재 가치가 통째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공포는 나이를 먹어도 쉽게 옅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왕관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초라한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추락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무거운 가면을 벗어던진 바로 그 자리에서야말로, 타인의 인정에 기대지 않는 온전한 내 이름의 삶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 이 책은 폭스코너(@foxcorner15)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아무것도아닌왕 #너새니얼레소어 #폭스코너 #청소년소설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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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뼈와 플라스틱 - 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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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뼈와 플라스틱 - 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남종영,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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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를 다룬 책을 집어 들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묘한 피로감이 있었다. 이미 지구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경고는 잘 알고 있고, 그렇다고 당장 도시의 삶과 현대 문명의 편리를 온전히 내던질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결국 남는 것은 무력감과 어설픈 죄책감뿐이라, 씁쓸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은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덜 쓰고, 덜 버리자”는 식의 공허한 도덕적 당위를 앞세우는 대신, 우리가 매일 발 딛고 살아가는 이 세계가 애초에 어떤 구조와 착취의 방식으로 굴러가는 지를 집요하게 파헤치는 책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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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훗날, 수만 년 뒤의 지질학자들이 오늘날 우리가 남긴 지층을 파헤쳤을 때 출토될 문명의 대표 화석은 거대한 건축물이나 위대한 예술품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공장식 축산으로 매년 수백억 마리씩 소비되고 버려진 조류의 뼈,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썩지 않은 채 흙 속에 박혀 있는 일회용 플라스틱의 파편들이 아마 대부분이지 않을까? 우리는 매일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먹어 치우고, 단 몇 분의 편의를 위해 플라스틱 용기를 뜯으며, 사용이 끝난 잔해들을 쓰레기통 너머 보이지 않는 곳으로 서둘러 치워버린다. 하지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것이 세상에서 소멸한 것은 아니다. 그저 다른 누군가의 삶터로, 혹은 미래 세대가 딛고 설 지층 속으로 그 무거운 부채를 떠넘겨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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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지닌 가장 탁월한 미덕은 환경 문제를 착한 소비자와 나쁜 소비자라는 이분법으로 납작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사실 우리들은 심각한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가방 속에 텀블러를 챙겨 다니고 분리배출에 신경을 쓰면서도, 피곤한 저녁이면 스마트폰 터치 몇 번으로 배달 음식을 시키고 문 앞까지 날아오는 새벽 배송의 안락함을 누린다. 이런 복합적인 현실 앞에서 개인의 양심과 도덕심만 쥐어짜는 방식은 죄책감과 환멸만 낳을 뿐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말로 던져야 할 질문은 개인이 얼마나 완벽하게 금욕하고 있는가가 아니다. 이 거대한 소비 시스템 속에서 과연 누가 가장 막대한 이익을 거두어갔는가, 그리고 그 편리함의 뒤편에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오염과 기후 재난의 피해는 누구에게 가장 혹독하게 전가되고 있는가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뭉툭한 구호는 때로 진짜 책임져야 할 거대 자본과 구조의 민낯을 가려주는 방패막이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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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의 모순을 짚어낸다고 해서 이 책이 개인의 실천은 어차피 무의미하다는 식의 냉소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거대 담론에 가려져 있던 일상의 행동들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든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었다. 내가 무엇을 돈 주고 사는지, 무엇을 너무 쉽게 내다 버리는지, 그리고 내가 누린 사소한 편리함의 대가가 지구 반대편의 누구에게, 어떤 생태계로 밀려나고 있는지를 응시하게 만드는 그런 묘한 책이었다. 이 책은 지구를 구원하겠다는 거창한 선언 대신, 지금 내 안락한 일상이 무엇을 가리고 지워내고 있는지를 묻게 만든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세상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전처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막 살아갈 수는 없겠다느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 이 책은 북트리거(@booktrigger)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닭뼈와플라스틱 #남종영 #북트리거 #기후위기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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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이별이라는 건 - The Meaning of Farewell ㅣ 소중한 너에게 2
물기남은흙 지음 / 세용출판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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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이별이라는 건 - The Meaning of Farewell> 물기남은흙, 세용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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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림책들이 왜이리 슬픈 내용을 담는지... 읽는 시간은 짧았지만 마음에 남은 여운은 큰 작품이었다. 흔히 그림책이라고 하면 이별이나 상실처럼 무거운 주제일수록 상처의 모서리를 서둘러 둥글게 깎아내며 안도감을 주는 작품들이 많을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상실과 슬픔이란 감정을 담백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잘 전달하는 책이었다. 소중한 존재가 떠나간 뒤 방 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휑한 공기, 어제까지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던 하루가 별안간 어색하게 삐걱거리는 그 쓸쓸한 멈칫거림의 순간까지도 도망치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게 만드는, 그런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책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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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계절을 건너온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반려동물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마음이 참 아려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위해 쓰인 짤막한 그림책인 것 같기는 한데, 실은 크고 작은 이별의 골짜기를 수없이 지나오며 마음에 굳은살이 박인 어른들에게 훨씬 더 긴 마음 속의 파문을 남길 것 같기도 했다. 따뜻한 그림체와 색감 역시 슬픔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잘 담아내고 있어서 무척 따뜻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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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깊이 좋아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언젠가 찾아올 이별의 그림자까지 함께 끌어안겠다는 암묵적인 약속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상처받을까 두려워 마음의 온도를 미지근하게 낮출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끝이 정해져 있다는 서글픈 사실 덕분에, 지금 내 곁에 머무는 존재와의 사소한 순간들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상실의 늪에서 단숨에 빠져나오는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신 상실과 나란히 보폭을 맞추며 살아가는 법을 압축적인 그림과 짧은 글귀로 전하는 듯 했다. 슬픔은 부끄러워하며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찬란하게 사랑했던 시간의 반대편에 따라붙는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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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우리는 소중한 존재를 잃은 뒤에 너무 빨리 괜찮아질 필요도, 억지로 잊으려 애쓸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충분히 기억하고 마음껏 그리워하면서도, 언젠가 찾아올 또 다른 인연에게 다시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책을 덮고 나니 늘 막막하고 두렵기만 하던 이별이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헤어짐이 결코 우리가 함께 나눈 시간의 가치까지 지워버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작고 단단한 그림책이 조용하고도 다정한 방식으로 증명해 준 덕분인 것 같다.



* 이 책은 세용출판(@seyongbook)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있잖아이별이라는건 #물기남은흙 #세용출판 #반려동물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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