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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듀나 지음 / 래빗홀 / 2026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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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록> 듀나, 래빗홀
- 우주 밖의 도시, 그리고 그 안의 우리 -
듀나 작가의 SF 명작〈몰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사회와 개인, 마음과 시스템 사이의 끝없는 반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02년 웹 연재로 처음 등장했던 이 소설이 24년 만에 정식 책으로 등장한 것이 정말 반가운 일이면서도,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디스토피아적 환상과 현실의 간극이 지금만큼 선명하게 읽히는 시대이기에 현 시점에서 이 책의 등장은 너무나도 반가운 일이다.
소설이 펼쳐내는 세계는 지금의 우리와 닮았다. 환태평양 대지진으로 일본·필리핀·미국 서부가 사라진 평행우주의 지구,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다문화 디스토피아 도시 의천. 이곳은 한국·중국·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적 소용돌이, 관료주의와 테러가 뒤섞인 혼돈, 그리고 그 사이를 살아가는 인간들이 공존하는 장소다.
듀나 작가는 이 세계를 현주, 무영, 미향, 이렇게 세 인물의 시선으로 촘촘하게 비추는 것만 같다. 이들은 겉보기에는 서로 다른 목적과 태도를 가진 듯하지만, 결국 모두 '보이지 않는 힘'이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갉아먹는지를 드러내는 거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듀나 작가의 또다른 장점은 문체와 서사가 주는 힘이다. 겉으로는 하드보일드하고 건조해 보이지만, 그 건조함 속에는 인물의 내면과 사회의 모순이 무심한 칼날처럼 스며 있다. SF적 장치인 환영, 사이버펑크 요소, 대체역사적 설정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각 인물의 존재 조건과 선택의 이유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건, 우리가 ‘몰록’이라 부르는 존재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는 점이다. ‘몰록’은 고대 신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과거의 제물과 희생의 상징이기도 하는데, 듀나 작가는 단순히 몰록을 은유에서 그치지 않는다. 몰록이 상징하는 바에는 사회의 집단지성, 시스템이 불러온 광기, 개인의 고독과 고뇌가 서로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신화적 힘도 함께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으며 현실의 정치가 가져오는 불안과, 기술적 불확실성이 어떻게 이 사회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듀나 작가의 묘사는 종종 냉소적이면서도 때로는 아주 섬세하다. 그래서 이 책은 단지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SF 문학이면서, 동시에 지금 이곳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어떤 거대한 틀을 들여다보는 렌즈처럼 작용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내 생각이 한 층 더 발전하게 되는 계기를 얻은 것 같았다.
좋은 SF는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숨겨진 비밀과 진실의 축을 드러내는 체계처럼 작용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작품은 그 축을 향헤 끊임없이 질문하는 소설이자,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끊임없는 질문을 하고 있다.
*래빗홀(@rabbithole_book)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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