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경 - 기억과 상실, '치매'와 문학
이인현 지음 / 히스테리안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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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경 - 기억과 상실, '치매'와 문학> 이인현, 히스테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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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휴대전화 사진첩을 뒤적이다 볼 때가 있다.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사진들도 분명 있기는 하지만, 반면 사진 속 찍힌 인물들의 표정은 또렷한데 정작 그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도무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기록되지 않은 데이터처럼 인간의 기억이란 생각보다 훨씬 허술하고 빈틈투성이라는 걸 실감하곤 한다. 이인현 작가의 『호경』은 바로 허술하고 빈틈투성이인 기억에 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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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호경'은 일본에서 20년 넘게 살다 뇌출혈을 겪고 한국으로 돌아온 인물이다. 그렇다 보니 모국어보다 일본어를 편하게 느끼고 기억은 하루가 다르게 흐려지고 있는 중이다. 작가는 치매 인식 개선 활동에서 그를 만나 나눈 대화, 낡은 사진과 편지, 손글씨 메모들을 차분히 책 속에 담아냈다. 얼핏보면 잃어버린 과거를 집요하게 추적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막상 읽다 보면 더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건 ‘지금을 살아가는 호경’에 관한 이야기다. 달달한 믹스커피를 좋아하고, 삐뚤빼뚤 시를 쓰며, 타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사람. 사라져 가는 과거의 기억보다 지금 내 곁에서 숨 쉬는 호경의 일상적 모습이 훨씬 중요하고 꼼꼼히 다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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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소설이라기엔 실제 대화와 기록이 가득하고, 그렇다고 기자나 다큐멘터리 PD가 작성한 르포라기엔 작가의 상상과 재구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특이한 책이다. 처음에는 이 불규칙한 경계가 낯설기도 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을 인과관계가 딱딱 들어맞는 매끄러운 서사로 정리하려는 욕심 자체가 어쩌면 무리한 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비어 있는 부분을 억지로 매워 넣지 않는다. 모르면 모르는 채로 그 공백을 열어둔다. ‘치매 환자’라는 납작한 꼬리표 대신 그가 불리고 싶어 했던 이름 ‘호경’을 지켜내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정직하고 성실한 기록 방식 덕분에 작가가 쓴 글에 깊은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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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인공 '호경'이 적어내린 짤막한 글들, 그리고 작가와 호경이 마주 앉아 나누는 이야기들이 무엇보다도 인상깊었다. 상대가 지난 대화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오늘 함께 나눈 온기까지 헛수고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가끔은 누구의 기억이 더 정확한지 사실관계를 따지는 일에 크게 집착할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마주 보고 함께 웃는 순간 그 자체가 훨씬 중요하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 책은 일깨워 준다. 『호경』은 누군가의 머릿 속에 기억을 저장하는 장치가 조금 헐거워졌을지라도, 지금 서로에게 건넬 수 있는 다정한 인사의 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 따뜻한 책이었다.



* 이 책은 히스테리안(@hysterian.public)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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