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의 아이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지음, 임현정 옮김 / 에이유앤씨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신세계의 아이들> 알렉산더 와인스타인, 에이유앤씨



🦋

영화 <애프터 양>의 고요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와 스토리에 반해, 꼭 읽어보고 싶었던 원작이었다. 그런데 정작 원작 단편인 「양과의 작별」을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영화가 품고 있던 시적이고 명상적인 호흡과 달리, 활자로 쓰인 원작은 놀라울 만큼 짧고 담백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입양한 어린 딸 미카에게 뿌리를 잃지 않게 해주려 문화적 안내자이자 오빠로 들인 휴머노이드 양. 그가 어느 날 돌연 작동을 멈추고, 가족들이 고장 난 기계를 고치기 위해 수리 센터를 전전하는 사이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은, 양이라는 존재가 그저 편리한 보조 기계가 아니라, 한 가정의 시간과 온기를 조용히 함께 빚어온 엄연한 식구였다는 뒤늦은 자각이었다. 이토록 건조하고 간결한 단편의 골조를 가져와 기억의 층위와 인종적 정체성, 다정한 애도의 미학으로 확장해 낸 코고나다 감독의 통찰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책을 덮고 난 뒤 오히려 영화를 다시 틀어보고 싶어지는 것은 이 독서가 건넨 또 하나의 선물이기도 했다.


🤖

그렇다고 이 책이 「양과의 작별」이라는 대표작만 보고 덮어버릴 그런 소설집은 결코 아니었다. 수록된 열세 편의 단편은 고도화된 기술이 인간의 생활감과 맞물릴 때 발생하는 기묘한 파열음을 제대로 포착해낸다. 「지도 제작자」는 타인의 기억을 데이터처럼 사고파는 세계 속에서, 내가 온 삶을 바쳐 겪었다고 믿어온 과거의 실체마저 모래성처럼 흔들리는 서늘한 불안을 잘 담아냈다. 「하트랜드」는 황폐해진 토양과 극심한 빈곤의 막다른 골목에서, 생존이라는 명목 아래 인간이 존엄의 밑바닥을 어디까지로 봐야할 것인지에 대한 가혹한 현실을 다룬다. 「로켓의 밤」은 터무니없을 만큼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배제의 폭력을 공동체 전체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규범으로 순응해 버리는 섬뜩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이주」는 완벽하게 프로그래밍된 가상현실 속으로 각자 도피하느라, 한 지붕 아래 살면서도 서로에게서 끝없이 멀어져 가는 가족의 고독한 얼굴을 잘 그려냈다. 작품 속 미래는 꽤나 구체적인 생활의 냄새를 풍긴다. 그렇기에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균열은 더욱 피하기 어려운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

표제작인 「신세계의 아이들」은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물음을 가장 날카롭게 던진다. 가상현실 안에서 부부가 온 마음을 다해 낳고 길러온 아이들이 악성 바이러스 감염 때문에 영구 삭제되어야 하는 파국의 순간. 현실의 물리적인 육체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모가 쏟아부었던 헌신과 그 상실로 인한 찢어지는 고통까지 모조리 '가짜 데이터의 착각'이라 치부할 수 있을까? 와인스타인은 아마 기억도, 관계도, 심지어 현실의 풍경조차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새로 조작해낼 수 있게 된 신세계에서, 인간의 마음은 과연 그 편리함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 기술은 결핍을 지워내는 손쉬운 해법을 제공하지만, 상실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인간 본연의 연약함까지 덮어주지는 못하는 것은 아닐까?


👨‍👩‍👧

매일 코드를 짜고 연구실에서 새로운 AI 기술을 다루는 입장에서, 이 책이 던지는 질문들이 결코 먼 미래의 이야기로 느껴지지만은 않았다. 기술은 매일 숨 가쁜 속도로 업데이트되며 신세계가 도래할 것을 약속하지만, 정작 그 기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은 수천 년 전과 다름없이 낡은 감정의 굴레 속에 갇혀있다. 여전히 서투르고, 사소한 것에 욕심을 내며, 외로움에 떨고, 잃어버린 존재를 그리워한다. 열세 편의 이야기를 모두 통과하고 난 뒤 마음에 남는 것은 결코 쉽게 새로워지지 않는 인간의 불완전성인 것 같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 내 곁의 불완전한 사람들과 나누는 온기를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조금은 섬뜩하지만 그래도 다정한(?) 소설집이었다.



* 이 책은 영화사 찬란(@challanfilm)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신세계의아이들 #애프터양원작단편소설수록 #알렉산더와인스타일 #에이유앤씨 #찬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