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어둠
황시운 지음 / 마이디어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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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한 어둠> 황시운, 마이디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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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어떤 불행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소나기인줄 알았는데 삶 전체에 무겁게 똬리를 틀고 눌러앉아 버리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아물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세간의 위로가 무색할 만큼, 어떤 비극은 한 사람의 성격을 송두리째 바꾸고, 가장 단단했던 관계를 산산조각 내며, 이전의 나로는 영영 돌아갈 수 없도록 삶의 궤도를 꺾어놓고야 만다. 황시운 작가의 『환한 어둠』을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저릿저릿 해진 까닭은, 바로 그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을 오롯이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

단 한 번의 사고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삶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고 흩어진다. 이 소설에서는 한 순간의 사고가 파국의 시작을 알리긴 하지만, 비극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남겨진 그 이후의 잔인한 일상을 더 조명한다. 가혹한 현실을 감당하지 못해 도망치는 사람, 엄청난 죄책감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어버린 사람, 그리고 상대를 원망할 힘조차 없어 속을 썩이고 태우며 살아가는 사람. 처음에는 인물들의 비겁하고 무책임한 선택에 답답함과 야속함이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비극에 대응해가며 살아가는 궤적을 묵묵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누구의 잘못이 더 큰가를 따져 묻는 건 의미가 없어진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불행 앞에서는 그 누구도 쉽게 비겁해질 수 있으며, 가장 사랑하는 존재에게 가장 날카로운 비수를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이 뼈아플 정도로 현실적이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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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문학에서 고난을 통한 극적인 내적 성장이나, 감동과 눈물로 가득한 화해를 기대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삶의 상처는 결코 그렇게 말끔하게 정리되는 법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상처를 겪었다고 해서 한 사람이 반드시 더 성숙해지는 것도 아니며,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오래된 응어리가 쉬이 용서로 바뀌지도 않는다. 상처를 극복한다는 것은 과거의 흉터를 깨끗이 지워 없애는 일이 아니다. 그 흉터가 여전히 욱신거리고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덜컹거리는 마음을 품고서라도 다시 한번 상대를 마주 보는 일이다. 완벽한 봉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누는 시선이야말로 상처 앞에서 인간이 건넬 수 있는 가장 진실한 태도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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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야 ‘환한 어둠’이라는 모순된 제목의 의미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 소설의 결말에 도달해도 인물들을 짓누르던 칠흑 같은 어둠이 기적처럼 걷히지는 않지만 그 여전한 어둠의 한복판에서 누군가는 따뜻한 밥을 지어 마주 앉고, 묵묵히 상대의 곁을 지키며, 조심스럽게 멈춰 있던 대화를 다시 시작한다.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낙관 대신, 오늘 하루만큼은 서로를 조금 덜 망가뜨린 채 살아보겠다는 작고 단단한 의지가 표현되어 있어 묘한 감동을 자아냈다. 이 책은 상처를 말끔하게 털어내고 완벽하게 회복된 사람들을 다루는 그런 납작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영 지워지지 않을 만큼 큰 불행 앞에서도, 그 모든 것을 짊어진 채 다시 살아가기로 결심한 보통 사람들의 눈물겨운 기록이라고 해야 더 어울릴 것 같다. 그렇기에 무척 아픈 이야기였지만, 책을 덮은 뒤에도 그 쓸쓸하고 다정한 잔상이 꽤 오래도록 촛불처럼 마음을 밝혀 주었다.



* 이 책은 마이디어북스(@mydear___b)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at @yamongyamong_ss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hiwonna_bier @apureumdite @i_am_what_i_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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