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김치 만화 클럽
허안나 지음 / 샘터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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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김치 만화 클럽> 허안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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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나서야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어릴 때는 새 만화책이 나오길 손꼽아 기다리고, 좋아하는 음악을 온종일 찾아 듣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하루치 일과를 겨우 견뎌내고 나면 무엇 하나에 마음을 쏟을 기력조차 남지 않는 날이 점점 늘어가는 것 같다. 퇴근 후 지칠대로 지쳐 소파 위에 축 늘어져 있는 내 모습을 '파김치'말고 어떤 단어로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허안나 작가의 『파김치 만화 클럽』은 바로 그 방전된 상태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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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스스로를 '파김치'라 부르게 된 배경이 마음이 아팠다. 전세 사기 피해, 코로나19로 인한 일감 감소, 오래도록 함께 했던 반려묘들과의 이별과 남은 고양이들의 병원비 부담까지. 일상을 무너뜨리기에 차고 넘치는 고단한 일들이 연달아 닥쳐왔던 것이다. 침대 밖으로 발을 딛는 것조차 버거웠던 저자를 다시 움직이게 한 것은 그저 방구석에서 펼쳐 든 만화 한 권이었다. 현실에서는 뜻대로 풀리는 일이 하나도 없을 때, 만화 속 세상으로 잠시 도망치는 짧은 피난을 반복하며 저자는 오히려 조금씩 삶 쪽으로 몸을 돌린다. 『룩 백』, 『루브르의 고양이』, 『호박과 마요네즈』, 『주말엔 숲으로』, 그리고 학창 시절의 추억이 깃든 『호텔 아프리카』까지. 책에 등장하는 만화들은 단순한 추천 목록이라기 보단, 그 시절을 버텨내던 한 사람의 일상과 겹쳐 있었다. 누군가가 자신이 진심으로 아끼는 것에 대해 신나게 떠드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묘한 활기가 전해져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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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지점은 방구석에서 혼자 읽던 취미활동에서 '파김치 만화 클럽(파만클)'이라는 작은 모임으로 확장되는 과정이었다. 같은 작품을 읽고 저마다의 감상을 나누며 자신의 경험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시간이라니! 나도 요즘 독서모임을 열심히 하면서 혼자 읽었다면 스쳐 지나갔을 장면도 타인의 시선을 통해 새로롭게 의미가 재해석되는 경험을 많이 하고 있다. 역시 지친 사람을 다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게 만든 것은 느슨하게 마주 앉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느끼는 온기가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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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특히 깊은 인상을 남긴 단어는 '뻥타임'이었다. 비행기가 다음 비행을 위해 잠시 멈추어 정비하는 시간을 삶에 빗댄 표현이다. 살다 보면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고 방향조차 흐릿해 제자리에 멈춰 있는 듯한 시기를 맞닥뜨리곤 한다. 남들은 착실하게 다음 단계를 밟아가는 것처럼 보여 조급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삶의 모든 순간이 쉼 없는 전진이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잠시 멈추어 서서 좋아하는 것을 뒤적여 보고 겉보기엔 쓸모없어 보이는 일에 시간을 쏟는 동안 우리는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숨을 고를 수 있다. "실패해도 안 죽어!"라는 저자의 투박한 외침이 그 어떤 긍정의 말보다 훨씬 더 든든하게 와닿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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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취미가 비록 인생을 구원해 주지는 못하더라도, 완전히 녹초가 된 날에도 자그마한 몸짓을 할 수 있게 해준 다는 점에서 취미는 삶을 생각보다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일상을 구겨져 괴롭고 지쳤다할 지라도 그저 축 늘어진 채로도 만화 한 권을 펼칠 힘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다음 날을 맞이할 수 있다고 조용히 말을 건네오는 것만 같았다. 지칠 때마다 책 속으로 도망치는 이유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가 당장 해결되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다른 사람의 이야기 속에 머무는 동안, 내 문제와 적당한 거리를 둘 수 있는 숨구멍이 생기기 때문이 아닐까?



* 이 책은 샘터(@isamtoh)에서 제공받아 독서모임 진행을 했습니다.

at @yamongyamong_ss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chiwonna_bier @apureumdite @i_am_what_i_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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