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지브리 -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
스즈키 도시오 지음, 민경욱 옮김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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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지브리 - 지브리를 통해 만나는 불교의 지혜> 스즈키 도시오, 대원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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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보았던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어른이 되어 다시 펼쳐보는 지브리의 작품은 (여전히 재밌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가올 때가 있다. 예전에는 하늘을 나는 성이나 신비로운 정령, 환상적인 세계관에 마음을 빼앗겼다면, 이제는 그 기묘한 세상 속에서 길을 잃고 상처받으면서도 어떻게든 하루를 견뎌내는 인물들의 표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책, 『선과 지브리』는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지브리의 세계가 왜 세월이 흐를수록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는지를 ‘선(禪)’이라는 뜻밖의 시선으로 풀어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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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대표 프로듀서 스즈키 도시오가 세 명의 선승과 나눈 대화를 모은 대담집이다. 제목만 보고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나 『모노노케 히메』의 상징들을 불교 교리로 하나하나 풀어내는 정교한 해설서일 것이라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대화는 그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성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지독한 작업 방식부터 영화 홍보의 뒷이야기, 나아가 삶과 죽음, 집착과 비움에 이르는 다채로운 주제가 지브리의 명장면을 매개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대화는 자주 삼천포로 빠지는 듯하지만, 결국 '지금 눈앞의 삶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하나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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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지브리의 인물들이 유독 '미래'를 쉽게 약속하지 않는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들은 세상을 구하겠다고 호기롭게 외치기보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몰라 머뭇거리면서도 당장 눈앞에 놓인 과제를 하나씩 해나간다.

- 『마녀 배달부 키키』 : 갑자기 비행 능력을 잃어버렸을 때 서둘러 조급하게 정답을 찾기보다, 일단 멈춰 서서 스스로를 가만히 들여다본다.

- 『모노노케 히메』 : 인간과 자연,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는다. 저마다의 사정과 모순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

- 『바람이 분다』 : 메인 카피인 "살아야 한다"는 삶을 낙관하자는 구호가 아니다. 세상이 잔인하고 사람이 어리석을지라도 살아내야 한다는 담담한 수용이다.

"세상은 버릴 만한 곳이 아니야. 그러나 노력은 좀 해야지."

지브리의 이야기는 무조건 잘될 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게 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을 조금 더 견뎌보자고 나지막이 등을 토닥여준다. 그 담담함이 더 깊은 신뢰를 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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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중 '전하는 것'과 '전해지는 것'의 차이에 대한 대목도 깊은 잔상을 남긴다.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입 밖에 내는 행위에만 머무르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상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비로소 완성된다. 우리는 흔히 작품을 보고 나면 감독의 의도나 숨겨진 상징 같은 정답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지브리 영화가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이유는 모든 것을 명확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설명되지 않은 여백 덕분에 독자와 관객이 각자의 기억과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는 손가락 끝만 보지 말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바라보라는 선의 가르침과도 완벽히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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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술적인 분석서가 아니기에 주제가 다소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고 불교적 개념 역시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바로 그 느슨함 덕분에 종교나 철학을 잘 모르는 이들도 부담 없이 대화의 결을 따라갈 수 있다.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강박 없이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에 와닿는 문장 하나를 건져 올리면 족할 것 같다. 책을 덮고 나면 서둘러 정답을 찾아내려 애쓰지 않고 인물들이 머뭇거리며 지나쳐가는 순간들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지브리 영화를 다시 감상하고 싶어진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정작 오늘을 놓쳐버리는 우리에게, 이 책이 말하는 선(禪)은 답을 모르더라도 지금 내 발밑의 할 일을 해나가는 정직한 태도라고 말하는 듯 했다. 길을 다 알지 못해도 일단 한 걸음 내딛는 것, 우리가 지브리의 캐릭터들을 사랑해 온 이유도 바로 그 서툴고도 묵묵한 생의 걸음마 때문이었을 것이다.



* 이 책은 니들북 출판사(@i_am_needlebook)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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