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선 버뮤다
범유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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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버뮤다> 범유진, 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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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노선도는 참 정교하게 잘 짜여져 있다. 그런데 노선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주 특이하고 기묘한 구간이 있다. 바로 반대 방향 열차가 없어서 내릴 역을 놓치면 강제로 한 바퀴를 크게 돌아야만 탈출할 수 있는 6호선 응암순환선이다. 평생 근에 그 동네 근처에는 발도 안 붙여본 사람이라도, 노선도의 이 기괴한 단방향 루프를 보면 묘한 이질감을 느낄 것이다. 직접 타 본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범유진 작가의 『6호선 버뮤다』는 이 독특한 현실의 선로 구조를 설계도로 삼아, 타임리프가 발생하는 ‘버뮤다 응암 지대’를 뚝딱 만들어냈다. 소재의 참심함과 그것을 그토록 만들어 내기 어려운 타임리프물로 연결짓는 작가의 솜씨는 정말 감탄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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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던 날, 우산을 챙기지 않은 자신을 마중 나왔다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은 동생 진월. 죄책감이라는 지옥에 갇혀 살던 언니 진양은 지하철 안에서 기이한 무당을 만난 뒤 동생이 죽기 전의 과거로 타임리프 한다. 동생을 살릴 기회를 잡았다고 안도하지만, 장소와 방법을 아무리 바꿔도 죽음은 매번 다른 얼굴로 진월을 찾아가고야 만다. 이 소설의 최대 장점은 독자에게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폭주기관차처럼 돌진한다는 점이다. 또한 진양이 과거로 회귀할 때마다 상황은 미세하게 비틀어지고, 숨겨져 있던 가족의 어두운 비밀과 인물들의 속내가 양파 껍질 벗겨지듯 드러난다. 정말 지루할 틈이 없는 엄청난 페이지터너였다. 문장도 매끄러워서 가독성이 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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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서 진짜 백미는 타임리프의 오컬트적 현상보다, 진양의 '자매애'가 변색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진양은 자신이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착한 언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역할은 자신의 불행을 견디게 하는 훈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진월이 점점 언니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립하려 할 때, 진양의 애정은 보호라는 가면을 벗고 통제와 소유욕이라는 민낯을 드러낸다.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과, 그 사람이 영원히 나를 필요로 하며 내 손아귀에 갇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전혀 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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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흥미로운 열차가 달리는 궤도 위에 너무 많은 장르적 보따리를 실었다는 인상은 지우기 어렵다. 버뮤다 삼각지대와 외계인 음모론으로 문을 열더니, 무속과 세습무 집안의 대물림, 시간 이동, 전래동화의 차용, 가족 심리극까지 쉴 새 없이 의제를 확장한다. 각각은 훌륭한 재료들이지만, 이 모든 요소가 하나의 거대한 원리 안에서 찰떡처럼 유기적으로 맞물렸다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웠다. SF 미스터리로 출발했다가 샤머니즘적 세계관으로 수습하고 이내 심리극으로 귀결되는 과정에서 장르적 접합부가 다소 느슨하게 덜컹거리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시간을 다루는 작품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규칙의 치밀함'도 다소 아쉽다. 과거의 변화가 현재에 미치는 나비효과나 죽음의 대가가 사실상 흐릿하다 보니, 서사의 긴장감이 룰이 아닌 작가의 편의에 의해 움직인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황세정과 정찬양 같은 인물들의 죽음은 진양의 잔혹성과 극단성을 증명하기 위한 일회성 소모품처럼 소비되어 버려, 작중이 긴장감을 다소 반감시키는 느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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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설정의 헐거움에도 불구하고 『6호선 버뮤다』가 멈추지 않고 끝까지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응암순환선이라는 도시괴담적 공간의 매력이 확실하고, 진양이라는 결함투성이의 서늘한 주인공을 끝까지 지켜보게 만드는 필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장르적 엄밀함을 따지는 하드코어 타임리프 마니아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기묘한 도시괴담과 뒤틀린 인간 심리가 빚어내는 속도감을 즐기고 싶은 독자라면 기꺼이 이 열차에 올라탈 만하다. 과연 진양이 그토록 구하고 싶었던 건 정말 동생이었을까, 아니면 동생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는 자기 자신이었을까? 쓸쓸한 질문을 남기며 책은 마무리된다.



* 이 책은 아카님(@aka_book_)의 SF탐사단 모집으로 나무옆의자(@namu_bench)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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