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는 과학자 - 우리 곁의 자연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과학의 순간들
이동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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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과학자 - 우리 곁의 자연을 정확하고 아름답게 기록한 과학의 순간들> 이동주,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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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으로서 일하다 보면 과학자에게 진짜 강력한 무기는 어려운 개념이나 복잡한 구조를 도식화한 그림이라는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다. 복잡한 수식과 깔끔하게 정리된 그래프도 중요하지만 직관적으로 와닿게 잘 그려진 그림은 정말 중요하다. 미지의 현상을 처음 마주했을 때, 머릿속에 엉킨 가설을 붙잡아두는 가장 오래되고 확실한 도구는 언제나 선과 화살표였다. 과학자에게 그림이란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사유를 시각화하는 연구 활동 그 자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동주 작가의 『그림 그리는 과학자』는 자연의 비밀을 풀기 위해 기꺼이 펜과 붓을 들었던 관찰자들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카메라가 없던 시대, 그들이 남긴 드로잉은 단순히 대상을 그럴싸하게 베껴 그린 세밀화가 아니었다. 애벌레가 어떤 잎을 갉아먹는지, 해골의 뼈마디가 어느 방향으로 맞물리는지, 새가 바람을 탈 때 날개의 균형이 어떻게 무너지는지까지 포착해 낸 연구 데이터의 집약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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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은 잔상을 남긴 인물은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다. 당시의 전형적인 꽃 그림에서 곤충은 도리어 아름다움을 해치는 불청객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메리안은 생물과 환경을 분리하지 않았다. 애벌레가 허물을 벗고, 번데기를 거쳐, 기어이 나비로 날아오르는 연속적인 시간을 끈질기게 목격했고 화폭 안에 나비의 화려한 박제 대신 살아 숨 쉬는 생태의 서사를 통째로 담아냈다. 그림 한 장이 어떻게 훌륭한 논문이 될 수 있는지를 정말 잘 보여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메리 애닝이 땅속에서 건져 올린 어룡의 화석을 복원하고, 훔볼트가 산의 고도에 따른 식생 변화를 한눈에 들어오는 인포그래픽으로 구현해 낸 장면도 놀라웠다. 존 제임스 오듀본은 새를 관찰하며 먹이를 노리며 뒤엉키는 찰나의 역동성을 캔버스에 그려 넣었다. 이들이 그리고 싶었던 것은 생물의 박제된 외형이 아니라 어떻게 움직이고, 무엇을 탐하며, 어떤 환경과 투쟁하는가와 같은 역동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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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담긴 물고기 기록과 신사임당의 초충도, 남계우의 나비 그림을 서양 자연과학의 계보와 나란히 대치시킨 작가의 시선도 반가웠다. 우리는 흔히 사임당의 그림을 가부장제 안에서 소비된 얌전한 교양 예술로 기억하지만, 풀잎 아래 기어 다니는 벌레의 다리 마디를 들여다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실제 자연을 집요하게 관찰한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엄청난 사실주의의 산물이었다. 예술과 과학을 오늘날의 잣대로 칼같이 나누기 전부터, 인간은 보고 이해한 것을 그림으로 기록하며 자연을 해독해 왔다. 카메라는 이제 사람이 인지하지 못하는 초고속의 순간까지 담아내고 인공지능은 명령어 몇 줄로 몇 초 만에 그럴듯한 회화를 연성해 낸다. 그럼에도 왜 인간 과학자가 연필을 쥐고 직접 선을 긋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지,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납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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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프레임 안의 모든 것을 무차별적으로 수집하지만 그림은 무엇이 본질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해야 한다. 그림을 그리는 물리적인 시간은 곧 대상을 본질적으로 이해해 가는 사유의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연구 데이터를 접하며 살아가지만, 나 역시 정작 눈앞의 사물을 이토록 깊은 밀도로 바라본 적이 있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자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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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을 바꾼 위대한 발견의 출발선에는 대단한 고성능 장비가 아니라, 한 생명을 치열하게 관찰했던 인간의 눈동자가 있었다. 책장을 덮고 나니 아파트 화단의 풀 한 포기, 길가의 흔한 벌레 한 마리에게 관심을 가져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언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함부로 생략하거나 배제하지 않겠다는 다정한 결심일지 모른다.



* 이 책은 위즈덤하우스(@wisdomhouse_official)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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