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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피케이션 -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의 해부학
코리 닥터로 지음, 박희원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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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피케이션 - 똥이 되어버린 플랫폼의 해부학> 코리 닥터로, 흐름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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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SNS나 쇼핑 앱을 열 때마다 묘한 피로감을 느낀다. 친구의 안부가 궁금해 켰는데 화면을 가득 채우는 건 생판 처음 보는 이들이 정체 모를 춤을 추고 있는 숏폼과 온갖 걸 팔아대는 광고뿐이다. 기사 하나를 검색하려고 해도 광고 배너와 스폰서 상품을 한참 지나쳐야 겨우 진짜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쓰다 보니 너무 불편해서 앱을 그만 쓰려고 해도 그동안 쌓인 내 인간관계와 사진첩, 결제 정보가 묶여 있어 쉽게 삭제하기도 어렵다. 코리 닥터로의 『엔시티피케이션』은 우리가 매일 겪는 이 끈적하고 막연한 불쾌감에 아주 직관적이고 노골적인 학명을 선사한다. 바로 플랫폼이 기어이 ‘똥(Shit)’이 되어가는 과정,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이다. 원어 발음대로라면 엔'쉿'티피케이션이어야 하려나? 아무튼 처음엔 단어가 과격하다 싶지만, 책을 읽다 보니 이보다 정확하고 세련된 표현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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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사악하게 태어나는 플랫폼은 아마도 없지 않을까 싶다. 초기에는 친절한 플랫폼들이 많다. 쇼핑 플랫폼이라면 배송비를 대신 내주기도 하고, 수수료를 깎아주며, 창작자에게 수익을 넉넉히 나눠준다. 진짜 비극은 모두가 그 플랫폼 생태계 아네 완전히 갇혀 도망칠 수 없게 된 다음부터 시작된다. 플랫폼은 어느 순간 연결의 허브에서 길목을 막고 통행료를 뜯어내는 검문소로 슬그머니 지위를 바꾼다. 책에 등장하는 아마존의 검색 조작, 애플의 자가 수리 제한, 어도비의 강제 구독 정책 등은 먼 나라 거대 테크 기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장 우리가 매일 쓰는 국내 배달 앱, 포털, 택시 호출 서비스의 변천사만 봐도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엔 없던 광고 팝업이 야금야금 화면을 가리고, 잘 쓰던 기본 기능들이 유료 멤버십 안으로 숨어버리는 과정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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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빠르고 똑똑한가에만 감탄하며 열광하기 바쁘다. 하지만 기술의 독창성과 그 기술이 운영되는 방식의 정당성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지금은 눈부시게 편리하고 심지어 무료인 최첨단 AI 서비스들도, 독점 체제를 완성하고 대안을 지워버린 뒤에는 언제든 '엔시티피케이션'의 지옥으로 돌변할 수 있을 것이다. 혁신이라는 달콤한 단어가 늘 소비자의 편은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은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특이한 건 저자는 이 문제를 몇몇 사악한 CEO의 도덕적 결함으로 치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이 마음 놓고 사악해질 수 있는 판이 깔렸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설명한다. 경쟁사가 나타나면 인수합병으로 싹을 자르고 규제 당국은 무기력하게 방관했으며, 서로 다른 서비스를 연결하던 상호운용성은 기술적 빗장 뒤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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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제시하는 해법은 반독점 규제, 데이터 이동권, 상호운용성 같은 제도적인 칼날들이다. 솔직히 거대 플랫폼이 국가보다 강력해진 시대에 과연 이것이 얼마나 빠르게 실현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개개인이 앱 하나 지운다고 해결될 사이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핵심은 적어도 우리에게 도망칠 자유는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비스를 떠나는 순간 내 인맥과 데이터, 구매한 콘텐츠를 전부 포기해야만 한다면 그건 비즈니스가 아니라 인질극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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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플랫폼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그들 역시 우리가 만들어내는 데이터와 지갑 속 돈을 절박하게 원하고 있다는 팩트를 너무 오래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 책은 왜 짜증이 나는지조차 설명하기 어려웠던 우리의 일상적 불쾌감에 정확한 언어를 쥐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상을 호명할 이름이 이제 규정되었으니, 앞으로는 적어도 이 구질구질한 불편들을 기술 발전의 어쩔 수 없는 대가라며 순순히 수긍하진 않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 이 책은 흐름출판(@nextwave_pub)으로부터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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