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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였다 ㅣ 내가 죽였다
정해연 지음 / 반타 / 2026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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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였다> 정해연, 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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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이 너무 빨리 나타나면 도리어 의심스러운 법이다. 대개의 미스터리가 "내가 죽였다"라는 결정적 고백을 향해 필사적으로 달린다면, 이 작품은 아예 그 자백을 출발선에 툭 던져두고 시작한다. 7년 전 사고사로 묻혔던 죽음, 뒤늦게 날아든 범인의 고백, 그리고 자수 직전 자백자의 갑작스러운 사망. 범인이 사라졌으니 게임 끝일까? 천만에. 진짜 이야기는 바로 그 시점부터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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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현란한 트릭으로 독자를 기만하지 않는다는 점인 것 같다. 문장은 군더더기 없고 전개도 아주 빠르며 장면장면 영화를 스크린을 보는 듯 선명하게 다가와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술술 읽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내용이나 문체가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건 행간에 숨은 맥락이 주는 무게감 때문인 것 같다. 하나의 죽음이 '사고'로 둔갑하는 과정, 그리고 진실이 7년 동안 침묵해야 했던 이유를 추적하다 보면 결국 독자는 한 개인의 악행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끈질긴 것들—이를테면 권력의 카르텔, 비겁한 침묵, 기득권의 체면과 이해관계 같은 괴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거대한 벽 앞에서 한 개인의 목소리가 얼마나 무력하게 부서지는지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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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김무일은 정의의 사도같은 캐릭터가 전혀 아니다. 손익계산에 밝은 세속 때가 잔뜩 묻은 변호사다. 이 인물이 입체적이라 더 호감이 갔다. 뜬구름 잡는 정의감으로 무장한 납작한 인물이 아니라 적당히 비겁하고 현실적인 인간이 어떤 변곡점을 지나며 서서히 균열을 일으키고 변화하는 서사가 원래 더 짜릿한 법인 것 같다. 그 반대편에 선 형사 신여주는 무일과 완벽한 극점을 이룬다. 물과 기름 같은 두 사람이 투닥거리며 나누는 '티키타카'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찬 극 안에서 독자에게 숨 쉴 틈을 주는 것 같았다. 여기에 '변 사무장'이라는 치트키가 더해지며 소설의 온도는 절묘하게 조율된다. 자칫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릴 수 있는 사회파 미스터리에 특유의 생활감과 능청스러운 유머를 불어넣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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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진실이 밝혀지면 모든 게 후련해질 거라 믿지만, 어떤 진실은 사람을 구원하기는커녕 평온했던 일상을 완전히 파괴하며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그 잔인한 무게를 외면하지 않는다. 덕분에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도 첫 장의 그 자백을 자꾸만 곱씹게 만드는 묵직한 힘을 갖춘 작품이 탄생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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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독성이 워낙 좋아 정신없이 읽어 내려갔다. 정해연 작가의 펜 끝에는 기묘한 흡인력이 있다. 멱살을 잡고 끌려다니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사건의 어두운 복도 한가운데 쓱 서 있는 느낌이었달까? 정신을 차려보면 이미 홀린 듯 다음 방의 문고리를 돌리고 있게 만드는 장악력, 그게 이 작가의 진짜 저력인 것 같다. 이토록 영리하게 판을 깔아두었으니 다음 이야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아무래도 후속작인 『내가 죽이지 않았다』까지 얼른 읽어봐야 마음속에 열려버린 이 찜찜하면서도 매혹적인 문이 완전히 닫힐 것 같다!
* 이 책은 오팬하우스(@ofanhouse.official)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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