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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흐르는 언덕
모리스 바레스 지음, 박용주.홍순도 옮김 / 등(도서출판) / 202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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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이 흐르는 언덕> 모리스 바레스, 도서출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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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감이 흐르는 언덕>이라는 제목을 접했을 때, 최근에 읽은 위화 작가의 <산곡미풍>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산문 같은 소설을 떠올렸던 것 같다. '언덕', '영감', '흐르다'라는 말들이 주는 인상이 워낙 부드러웠기 때문이었던 것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책을 읽다 보니 이 작품,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내용의 작품이었다. 장소와 공간이이 사람의 믿음과 욕망, 공동체의 기억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집요하게 따라가는 작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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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중심에는 프랑스 로렌 지방의 시옹 언덕과 바이야르 형제들이 있다. 폐허가 된 순례지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그곳에 꺼져가던 신앙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이들의 열정은 처음에는 숭고하게 보이기도 한다. 무너진 예배당을 복원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언덕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모습은 어딘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바로 그 열정이 점점 위험한 방향으로 기울어지는 순간이었다. 신앙은 과연 언제까지고 순수한 열망일 수 있을까? 영감은 어디까지 축복이고, 어디서부터 광기일까? 책은 이러한 질문들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꽤 끈질기게 던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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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술술 읽히는 소설은 아니었다. 사건이 빠르게 전개되는 것도 아니고, 인물의 감정이 현대소설처럼 선명하게 설명되는 것도 아니었다.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 문장들은 언덕과 바람, 그리고 빛바랜 폐허 너머의 종교적 사유 속을 깊이있게 탐험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어떤 대목에서는 꽤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이 느린 리듬이 익숙해지면서 책의 리듬을 어느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독자를 치고 나가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 아니라, 책이 독자를 언덕 위에 세워두고 계속 같은 풍경을 다른 빛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정말 특이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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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언덕’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곳은 인물들이 머무는 장소이면서 동시에 그들의 내면을 흔드는 공간이기도 했다. 들판은 자유와 영감을 속삭이고, 예배당은 질서와 규율을 말한다. 바이야르 형제들의 비극은 어느 한쪽만의 실패라기보다, 인간이 언제나 그 두 힘 사이에서 흔들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무 질서 없는 열정은 쉽게 광신이 되어 버리고, 아무 열정 없는 질서는 차갑게 굳어버린 채 힘을 잃어버린다. 이 소설이 오래된 종교 이야기처럼 보이면서도 이상하게 지금의 독자에게까지 와닿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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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모리스 바레스라는 작가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의 정치적 이력과 사상은 오늘날의 감각으로 읽을 때 분명 불편한 그림자를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그저 완전히 마음을 놓고 아름답다고만 느끼며 읽을 수만은 없었다. 다만 그 불편함까지 포함해서라도 이 책은 한 시대의 정신과 장소에 대한 집착, 신앙의 열기와 위험을 함께 품고 있는 작품이라 평가할 수 잇을 것 같다. 낡은 책장을 넘기는데 이상하게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소설. 아름답지만 마냥 편하지 않고, 신비롭지만 어딘가 서늘한 그런 작품이었다.
* 이 책은 도서출판 등(@dngbooks)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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