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지음, 이혜진 옮김, 배세진 해제 / 우중몽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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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포인트 - 그저 행동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 슬라보예 지젝, 우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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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럽게도 우주서평단에 합류하게 되어 슬라보예 지젝의 <진보에 반대한다>에 이어 <제로 포인트>까지 읽을 수 있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진보에 반대한다> 먼저 읽은 뒤에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제로 포인트>는 전작과 이어지는 글처럼 느껴졌다. ㅇ연결 독서 하는 느낌! <진보에 반대한다>가 ‘진보’라는 말 자체에 대해 한 번 더 의심하고 숙고하게 만드는 책이었다면, 이 책 <제로 포인트>는 그 의심을 지금의 세계 정세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오는 좀 더 실천적인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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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진보에 반대한다>에서 지젝은 우리가 진보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를 묻고 있었다. 선한 구호, 올바른 입장, 세련된 말들이 실제 현실의 고통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지 과감한 문체와 내용으로 압도적인 필력을 보여준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이 책 <제로 포인트>에서는 더 날카롭게 확대 재생산된다. 트럼프의 귀환, 가자 지구의 참상, 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위기, 플랫폼 자본주의, AI와 알고리즘이 바꾸는 일상까지. 이 책은 지금 세계가 어딘가 혹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불편한 감각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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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지젝 특유의 복잡하고 어려운 문장 구성이 조금은 정신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헤겔, 라캉, 마르크스가 펼친 철학적 내용들이 계속 나오고, 정치 뉴스와 철학 개념이 문장들 여기저기에서 부딪혀 머리 속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유를 갖고 천천히 (그리고 AI의 도움을 받아) 읽다 보면 과거 한가닥 하셨던 철학자, 사상가들의 이름이 괜히 등장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젝은 헤겔의 철학을 빌려 모순을 피하지 말고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끝까지 들여다보라고 말한다. 지금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은 우리가 아직 답을 못 찾아서가 아니라, 현실 자체가 이미 모순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젝은 라캉을 통해 우리가 왜 알면서도 계속 같은 방식으로 욕망하고 있는 지를 설명해준다. 사람은 진실을 마주한다고 해서 바로 바뀌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믿고 싶은 구조 안에서 묘한 만족감을 느낀다. 지젝은 마르크스를 통해 이 모든 문제가 단순히 개인의 선함 혹은 악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병폐적 자본주의의 구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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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어느 한쪽 편에 서서 속 시원한 답을 주지 않는다. 하마스의 폭력을 비판하면서도 팔레스타인의 역사적 맥락을 말해야 한다고 하고, 서구의 위선을 비판하면서도 쉬운 반서구주의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다소 지젝이 회색 분자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황희 정승인가?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고... 하지만 지젝은 문제에서 빠져나와 한 걸음 멀리서 생각해내는 메타 인지를 우리에게 요구하는 듯 했다. 우리는 대개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편 가르기로 정리하고 싶어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데 지젝은 그 편안함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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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작금의 한국 사회의 현실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선거가 끝나자 진영 싸움과 권력 투쟁만 남았고 어떤 사건이 생기면 사실을 따지기도 전에 내 편과 네 편부터 갈라진다. 질문은 곧 공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의심은 곧 음모론으로 몰리거나 반대로 무책임한 선동으로 번지기도 한다. 지젝이 말하는 “제대로 된 말을 하라”는 문장은 그래서 더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고 하며 행동이 중요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말을 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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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다 잘될 거라고 위로해주는 책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미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 지점에 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젝의 이야기가 완전히 절망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바닥을 인정하는 일은, 포기가 아닌 다시 시작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올바른 말은 무엇인가?


* 이 책은 @woojoos_story 진행으로 #우주서평단_철학방 에서 함께 읽었습니다.

출판사 : @woojoongmong.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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