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라이트 ㅣ 토치 3부작 1
모이라 버피니 지음, 강동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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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라이트> 모이라 버피니,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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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조금 걱정이 앞서긴 했다. 500쪽이 훌쩍 넘는 분량도 그렇고 디스토피아에 판타지 설정까지 더해진 작품이라 초반에 세계관을 따라가느라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읽기 시작하니 생각보다 이 책에 홀딱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이름과 설정들이 하나 둘씩 등장하는데도 이야기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서 좀 신기하기까지 했다.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묘사가 많고 필력이 좋아서 그런지 매우 술술 잘 읽히고 심지어 재미까지 있었다. 저자 소개 페이지에 영국을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라고 쓰여있는데, 그런 설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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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배경은 핵전쟁 이후 수천 년이 지난 미래의 브라이틀랜드다. 이곳에서는 여성의 삶이 철저하게 정해져 있다. 소녀들은 일찌감치 결혼을 준비하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남성 중심의 형제단이 만든 질서 안에서 여성들의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고 오히려 제도에 편입되어 있는 물건처럼 취급받는다. 이런 설정은 아주 극단적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이상하게 완전히 남의 세계처럼 느껴지지는 않는 점도 있었다. 인간을 분류하고 쓸모를 정하고 다름을 위험으로 규정하는 방식이 지금의 현실과도 어딘가 닮아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이 세계에서 가장 금지된 능력은 바로 ‘송라이트(Songlight)’다. 송라이트를 가진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다. 즉각적이고 감각적인 의사소통, 노래처럼 흘러드는 의식의 연결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운 능력처럼 보이지만 브라이틀랜드에서는 이 능력이 곧 죄가 된다. 타인의 마음에 직접 닿을 수 있다는 것은 권력의 입장에서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라이트를 가진 사람들은 ‘비인간’으로 낙인찍히고 발각되면 끔찍한 방식으로 처벌받거나 체제의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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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흥미로웠던 건 송라이트를 단순한 초능력처럼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텔레파시 능력이라는 소재를 다루지만 더 중요하게 다루는 건 그 능력을 통해 드러나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엘사와 카이라는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지만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다. 둘은 서로에게 라크와 나이팅게일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계에서 서로의 고통과 두려움을 알아본다. 세상이 사람들을 고립시키고 침묵시키려 할수록, 누군가가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감각과 사실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 소설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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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사의 이야기는 더욱 답답하고 아슬아슬하다. 사랑하는 라이와의 관계, 오빠 파이퍼의 선택, 강제로 정해지는 결혼, 그리고 자신이 숨겨야만 하는 능력까지. 엘사는 계속해서 자기 삶의 주도권을 빼앗긴다. 하지만 그녀는 결코 무력한 인물은 아니었다. 흔들리고 잔뜩 겁을 먹었지만, 또 끝내 자기 안의 목소리를 지켜나가기 떄문이다. 카이라 역시 마찬가지다. 심문관의 딸이라는 위치 때문에 더 복잡한 내면을 가지고 있고, 자신이 속한 세계의 폭력성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마주한다. 두 소녀가 서로를 통해 조금씩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이 책의 매력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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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디스토피아 소설이긴 하지만, 동시에 연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람을 통제하려는 세계에서는 마음과 마음이 닿는 일마저 위험한 일이 된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 연결은 더 소중해진다. 누군가의 고통을 듣고, 두려움을 알아보고, 멀리서라도 손을 뻗는 일. 어쩌면 송라이트는 특별한 능력이라기보다 인간이 평생토록 간직하고 갈고 닦아야 할 소중한 능력이라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진다. 토치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인지라 이제 막 더 큰 이야기가 시작되려는 느낌이다. 엘사와 카이라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그리고 이 잔혹한 세계에 어떤 균열을 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 이 책은 자음과모음(@jamobook)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보내주신 책을 탐독 후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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