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서는 법 - 사실과 믿음 사이, 삶은 어디에 있는가
차병직 지음 / 김영사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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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 서는 법> 차병직,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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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법을 딱딱한 규정이 적힌 문구의 집합이 아니라, 삶의 여러 경계에서 작동하는 판단의 언어로 풀어내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이 책은 ‘선택·사회·믿음·삶’이라는 네 축을 따라 법이 현실과 부딪히는 장면들을 살피고 있는데, 이를 통해 법이 우리 일상과 정치, 언론, 공동체의 문제 속에서 어떻게 흔들리고 적용되는지를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이 책은 법률신문 연재 칼럼을 묶어낸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 편 한 편이 비교적 짧고, 주제 전환이 빠르며, 법률가의 언어를 교양서로 번역해 접근성을 높인 점이 충분히 칭찬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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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읽다 보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장점은 생각보다 쉽다는 점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법률 전문가의 자리를 강요하기보다, 잠시 입법부나 사법부에서 실제로 일하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권한다. 그래서 이 책은 법이 무엇을 판단하고 무엇을 놓치는지, 제도는 왜 늘 경계선 위에서 흔들리는지를 질문하게 한다. 법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도 비교적 편하게 따라갈 수 있고, 주제의 폭도 넓다. 재판과 판결, 권력과 언론, 자유와 질서 같은 문제들이 너무 전문용어에 갇히지 않은 채 펼쳐진다. 이 점에서 이 책은, 법을 '멀리 있는 제도'가 아니라 '내 삶 가까이에 있는 사고방식'으로 끌고 들어오려는 교양서로서의 미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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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편으로는, 저자가 오랫동안 법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설명해온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법을 단순히 옳고 그름의 최종 심판으로 놓기보다, 늘 현실과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책 전반에 깔려 있다. 그래서 책은 명쾌한 정답을 주는 대신, 법이 언제나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다. 이런 점은 확실히 독자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긴다. 법을 지나치게 낭만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냉소 하나로 밀어붙이지도 않으려는 문제의식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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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아쉬운 지점도 분명하다. 책의 의도는 경계를 흐리는 데 있는 것 같지만, 몇몇 대목에서는 그 흐림이 사유의 섬세함으로 이어지기보다 논리의 느슨함으로 보일 때가 있다. 특히 재판의 비교동등성, 보복수사 같은 주제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흥미로운 문제 제기를 해놓고도 개념 구분이 충분히 정교하지 못한 느낌이 남는다. 자연과학의 언어를 법의 세계로 가져오는 비유는 겉보기에 그럴듯하지만, 엄밀하게 따져 보면 다른 층위의 문제를 한데 묶어버리는 순간이 있고, 그래서 독자로서는 “정말 이 비유가 맞나?” 하고 멈칫하게 된다. 법의 불확정성이나 해석 가능성을 말하고 싶은 취지는 이해되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법적 안정성이나 공적 기준의 중요성이 약하게 처리된 대목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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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정치와 수사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현실을 냉정하게 본다는 태도와 현실을 너무 쉽게 일반화하는 태도 사이를 오갈 때가 있었다. 정권 교체 이후의 수사, 정치적 공방, 프레임 경쟁을 설명하는 문장들 가운데는 분명 현실감이 있는 대목도 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은 설명이라기보다 체념에 가까워 보여서, 독자로서는 “그래서 이 책은 결국 무엇을 더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걸까?” 하는 질문이 남는다. 법이 사람과 제도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과, 그래서 흔들림을 거의 불가피한 본성처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데, 그 경계가 조금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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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있다. 저자의 문장은 대체로 무겁게 과장되지 않고, 주제를 넓게 옮겨가면서도, 독자의 이해를 도와주는 배려심있는 내용도 엿볼 수 있었다. 법을 둘러싼 여러 장면을 교양적 에세이의 형식으로 묶어냈다는 점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무엇보다 법을 잘 모르는 독자에게 '법은 결국 판결문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회를 이해하는 방식과도 연결된다'는 감각을 건네는 데는 성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 김영사(@gimmyoung)에서 책을 제공받아, 독서모임 및 서평단 활동의 결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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