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현암사 동양고전
오강남 옮기고 해설 / 현암사 / 199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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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한테 물었다. ˝너는 날 왜 좋아하니?˝ 고양이가 답했다.˝바보야 좋고 싫고가 아니라 니가 지금 나랑 같이 있잖니.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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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작성된 과제로 제출되었던 서평입니다. 제가 왜 그 점수를 받았는지 이제는 조금 이해가 갑니다.

** 역사가 정치적 판단의 도구가 되어야하냐고 묻는다면 그래야된다고 주장하는 논거를 마련하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 왜 자꾸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냐는 주장의 반박에도 괜찮겠군요

1988년 오스트레일리아의 건국200주년 기념행사에 데모를 벌인 집단이 있었다. 이들은 5만년 전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사람들의 후손으로 보통 애버리진이라고 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 사건으로 오스트레일리아가 어떻게 백인의 국가가 되었는가에 대한 관심이 고조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900년부터 72년 까지 원주민개화정책을 펼치며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로부터 강제로 떼어내어 백인 가정으로 입양시킨다. 이들은 잃어버린 아이들이라고 불려졌고 그들의 아픔에 대해 호주정부는 여지껏 이전 정권에서 한 잘못이라며 사과나 보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다 일부의 법정 소송으로 200791일 호주 역사상 첫 보상결정이 내려지고, 2008년 집권한 케빈 러드 행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공식사과문을 발표하며 이를 연방의회에서 통과시키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벌여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지난 2007년 42일부터 4일까지 제주도에서는 이번 15회를 맞는 제주 4.3문화예술축전을 대규모로 진행했다. 이 행사는 행사이름이 말해주듯 제주 4.3 사건을 은닉의 대상이 아닌 소통하고 기억하는 역사로 자리매김 시키기 위한 것이다. 2007년에 60주년을 맞는 4.3을 기념하기 위하여 기억 60! 불어라 해원상생의 바람이라는 타이틀로 위령제, 진혼제, 해원상생굿등의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했고 일부 언론에서는 때맞춰 잊혀져가거나 잘못 알려진 제주도4.3사건을 기획보도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에서는 아직까지 과거사의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둘러싸고 역사학계의 내부에서 뿐 만이 아니라, 현실정치와 관련되어 국가의 정책입안자부터 실제 일반 민중들에게 이르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논의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 말고도 국내에서만 해도 5.18광주 민주화 운동과 그 외 민주화 과정에서 일어난 의문사, 친일청산 등 더 논의되어야 할 수많은 과거사 문제들이 있고, 우리나라와 관련된 국제적 문제로 한-일간 독도영유권 이나 일본 교과서 왜곡 문제가 있고, -중간의 고구려, 발해사 문제, -베트남간 전쟁피해 문제등 일부는 소강상태에 있지만 여전히 언제든 문제가 커질 수 있는 현실에 있다.


과거사 문제들을 둘러싸고 이렇게 역사와 현실의 이해관계가 복잡다단하게 얽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는 더 이상 드라마, 소설의 흥미로운 유흥거리가 아니라 우리의 삶 근저에 존재하며 구체적인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과거의 힘은 이런 현 상황에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과거의 힘의 골자는 영미권의 역사학의 위기를 살펴보고 이것이 학문만의 문제가 아님을 주장한다. 신우익의 등장 과정에서 역사가 어떻게 이용이 되었는지 E또한, 그 이용의 과정에서 역사교육이 어떤 방식으로 정치적으로 왜곡 되었는지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며 역사가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제시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영미권의 역사 문제를 통하여 밝힌 것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에 문제이다. 저자는 영미의 신우익정권이 그들의 역사를 다룬 방식에 대해 논하고, 역사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은 엄밀히 따지면 영미권 현대사에 대한 영미권 사람들을 위한 주장이 될 수 있다.


두 번째는 역사가 정치적이어야 하느냐의 문제이다. 급진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는저자의 입장이 아무리 설득력이 있어도 학문을 특정 이데올로기의 목적에 복무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면 나타나는 문제점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사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유신체제의 현대사에서만 봐도 왕왕 등장한다. 이 글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살펴보고 이 책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과거의 힘의 한국사 적용에 대한 문제


과거의 힘은 영미권의 문제로 시작을 하였으며 외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책 자체를 놓고 보자면 저자가 애시당초 영미권의 문제를 토대로 저술한 것이기에 이점은 굳이 지적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 말미에는 역사가들이 비판적 지식인이 되기를 바라며 시민이자 학자로서 자기역할을 다해야할 책임이 있음을 주장한다. , 영미권의 문제를 토대로 보편적인 역사에 대한 언급을 하기에 꼭 한국사 적용 뿐만이 아니라 전체 역사에 확대 해석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라도 살펴봐야 할 것이다.


5장에서 저자가 말하는 비전이라고 하는 개념은 과거와 현재의 착취 및 억압구조와 관계를 폭로하고 그에 저항한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를 철저히 되살려내는 활동까지, 학문적 교육적 활동으로 삼으려는 역사가의 비전이라고 했다. 거시적으로 억압과 지배의 시기를 지낸 모든 지구상의 역사의 주체로서 인류가 이루어야 할 일종의 과제로 언급했다. 그리고 역사인식의 주체를 현재를 이해하고 고찰하기 위함과 동시에 미래를 향한 방향설정을 도와주기 위한 도구로서 과거의 힘을 일깨우는 비판자가 되라고 했다.


저자의 논지는 A.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에 이론적 근거를 바탕에 둔다. 60-70년대 들어 전후 케인즈 복지국가에 입각한 자유주의적 합의가 깨지는 과정을 헤게모니의 위기로 보며, 헤게모니적 질서의 추구수립유지를 위한 네가지를 언급하는데 이는 계급이나 집단의 이익을 분명하게 표명하고 이들을 선도하고 대변하는 임무를 지닌 지적엘리트의 형성 헤게모니 지배를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다른 계급과의 동맹 지배계급의 지배이념화 산업자본주의 경제에서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경제발전의 보증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주로 세 번째의 경우에 입각하여 선별적인 역사만들기와 공유된 가치에 대해서 비판하며 이들의 헤게모니 장악에 역사 교육프로젝트가 어떻게 이용되어 왔는지 지적한다.


저자는 영미권의 헤게모니 장악의 과정을 통하여 70-80년대 레이건과 대처에 의한 작업이 보수주의적 거대지배서사를 만들려는 것으로 파악했다. “현 체제를 역사의 절정이자 서국의 발전과 세계사적 발전의 최상이자 최종적인 결실로 또한 있을 수 있는 최상의 세계로 묘사함으로써 현체제를 정당화하려는 특별한 의도가 담긴 그런 서사를 만들려는 것이었다.”


이는 2007년 겪은 우리나라의 대안근현대사교과서가 문제와 비슷하다. 보수단체에 의해 제작된 이 책은 지나치게 성과, 업적 중심으로 기술되어 많은 논란이 일었다. 주로 지적받은 것은 항일운동에 있어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이 지나치게 축소되거나 분열세력으로 묘사된 점, 제주 4.3 사건이나 광주 5.18과 같은 민주화 과정들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이적행위처럼 대하거나, 지나치게 폄하, 축소되었으며 이 사건들이 우리나라의 발전상이나 경제개발에 어려움을 주었다고 하고 있다.


이처럼 좋은 것만 보여주려고 하고 발전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갈등을 숨기는 방향으로 서술된 점은과거의 힘에서 나온 3 - 신우익의 역사 교육 프로젝트와 선별된 역사를 서술한다는 점에 유사한 흐름에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과거사에 대한 문제가 일부시민단체에 의해 주로 논의되고 이에 보수단체의 반발을 볼 수 있다. 진보/보수의 대립구조를 그리는 듯한 모습은 우리나라의 과거사를 두고 둘러싼 논쟁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세력 사이의 갈등으로 볼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는 영미권처럼 민주적 합의에 의한 시대가 미약할뿐더러, 신우익과 같은 집단이 그 합의적 서사와 의견을 달리하는 거대지배서사를 만들거나 않았지만 작금의 현실이 보여주는 역사학을 포함한 인문학의 위기, 현 정부들어 보여주는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과거사 태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축소 등의 움직임은 영미권의 신우익의 작업과 유사해 보여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따라서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이용한 저자의 작업은 한국의 과거사 논쟁을 파악하는데 유용하게 작용 할 것이다.

 

과거의 힘이 가지는 정치적 불순함

 

일단 한국사에 있어 과거의 힘이 가지는 의미는 일정 부분 유용하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역사를 바라보는 정치적 시각이 문제가 될 수 없을까?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두고 책 말미에 이 작업은 역사의 종언이나 탈역사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 및 민주적 공동체의 이상과 관계를 증진하고 발전시키는 새롭고도 독창적인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정치와 투쟁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급진민주주의로 평가되는 하비 케이의 관점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악용될 여지를 남겨, 역사가 어느 특정 지배집단의 이념의 정당성을 위해 복무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일전의 맑스주의 역사학 역시도 그러한 부분에 있어 비판을 받아왔었고 하비 케이가 지적하는 신우익의 역사 역시도 일종의 이데올로기의 도구이기에 저자의 정치적 태도는 모순이 보인다.


일단 이점에 대해서 저자는 역사적 실천관은 정치적으로 참여적이지만 결코 학문적 객관성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학문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것이라는 우려는 학문의 객관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인데 저자는 이점에 있어 그러한 객관성은 지적요구가 아니라 논리정연한 정치적 분석의 전제조건이라는 장 셰노의 주장을 인용하였다.


저자는 1장부터 정치적 위험성에 대한 비판에 대해 대답하는데. “역사학의 위기로 시작되는 책의 서두는 이 위기가 역사학이라는 분과학문의 위기가 아님을 이야기 한다. 역사는 흘러간 옛이야기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등 현재의 맥락과 함께 재구성됨을 말한다. 저자는 이점에 대해서 역사학의 위기는 몇몇 예외가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 원인 중 하나에 역사가들이 광범위한 문화 속에서 현재 진행되는 변화 발전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실패하였고 이는 역사학이 다시 공적 문화와 담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공공사나 응용사와 같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있기는 했으나 위기에 대한 정치적 기원과 성격에 대한 인식이 빠져있는 점을 지적하며 총괄적이고 비판적인 역사관의 정립을 주장하고 있다.


역사의 위기는 전문가들의 연구거리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요, 역사의 종언은 역사학이 전문 학자들에 의해 독점되어 온 시대의 종언이라 단언한 시어도어 하메로우의 글을 인용하며 과거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보편적 조건이며 공동체 삶을 영위시키게 하는 필수요소라고 역설하며 역사의 종합-전지구사, 세계사와 국가적 역사서사-프로젝트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참여를 보장하고 공공문화를 위한 새로운 종합을 요구하여 소위 거대 지배 서사의 위기를 논할 때라고 하고 있다.


뒤이어 2장에서는 60년대에 등장한 보수, 진보의 양측의 합의에 의한 케인즈주의적 사회의 전후체제가 베트남전으로 시작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맞이하면서 70년대의 쇠퇴로 이어지면서 합의의 붕괴의 과정을 보여주며 이 위기가 보수적 국가적 합의와 지배서사 창출이 20세기 후반 자본주의 헤게모니 개편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단순해 보이는 역사학의 위기가 이 현재를 만들어온 최근의 시간 속에 일어난 흐름의 연속선상에서 복잡다양한 과거의 남용에서 이루어진 부작용의 한 단편이라면,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악용을 해선 안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라는 역사 속에 참여하는 주체로서 현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적극적인 실천과 참여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에게 공기처럼 뗄 수 없는 것이고 정치 역시도 인간이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하는 주체라면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이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와 과거-현재의 관계를 통찰하는 시각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민주주의적 역사의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던지는 저자의 주장은 오히려 역사는 정치적 한다는 말에 큰 근거가 된다.

 

불편한 진실

 

종종 개개인에게도 아픈 기억이란 것들은 자기 자신을 성장하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상처가 되어서 잊으려 애쓰는 경우가 있다. 마치 국가에도 그러는 것일까? 교과서나 역사서에서는 한 나라의 역사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 부분이 있거나 짧게 기술되거나 다른 말로 와전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한 예로 현행 근현대사 교과서의 경우 3.1운동에 대한 부분은 중국의 5.4운동이나 인도의 비폭력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고 서술되어있고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그 외에 오슬로 국립대 박노자교수가 한 칼럼(한겨레 21, 695, 박노자의 거꾸로 본 고대사 - 고구려는 정말 제국이었을까?, pp.90~92)에서 지적한대로 고구려는 중계무역을 유지시키기 위한 동아시아의 대표적 침략국가중 하나였다는 것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민족적 우렁찬 기상을 뽐내는 고구려를 모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처럼 역사에는 수많이 묻혀진 사실들이 있고 이 중에는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굉장히 불편한 진실들이 숨어있다.


저자는 4장 역사의 종언을 통해서 불편한 진실들이 가려지는 과정을 상세히 다루고 있다. 신우익과 보수주의의 연합이 끈끈하지 않았지만 80년대를 지내며 어떻게 헤게모니를 개편했는지 밝힌다. 저자는 이점을 서술할 때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대부호의 예를 들면서 탐욕의 시대, 두 개의 나라라는 표현을 인용한다. (186)


이 부분에는 급진적인 저자의 입장이 드러나 일부분 온건적인 독자들에게 반감을 사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평등의 시대를 말하기 위함이고, 일정부분 국내에도 아직까지 많은 부분 일치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런 탐욕의 시대와 같은 것들은 신우익의 헤게모니 장악과정에 일어난 결과들 중 하나라는 점이다.


이 불편한 진실들을 가리는 과정 중 가장 강력히 비판하는 것으로 저자는 공적 생활의 탈정치화라는 개념을 이용했다. 공적 생활의 탈정치화는 아래로부터 대적할 만한 힘을 가진 정치운동의 주체가 없다는 점은 대중들 사이의 무력감, 회의감을 만연시키게 하고 보통 사람, 노동자들의 대중적 정치행동을 기대할 수 없거나 그런 것들이 무의미 하다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반노동, 반민주, 친자본적 정책은 초국가적 헤게모니의 지향으로 이어져 기업활동의 세계화, 다국적기업, 글로벌 리더쉽등에 우선순위가 되는 이른바 지금의 경쟁의 시대가 도래하게 된다. 이러한 방식의 새로운 미래 만들기는 사회주의는 시대착오가 되고 혁명은 폭력과 공포의 시간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사고가 되어버리게 된다.


닫는 말

 

하비 케이에 의한 역사학의 위기는 분과학문의 위기가 아닌 현실의 위기라고 언급하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거대지배서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역사가는 대중매체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글쓰기와 말하기를 통해서 지나치게 학술적이지 않으면서 이지적이고 현명하게 공중에게 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여정부에서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 외교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표명하였고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부터 동북아 평화를 위한 바른 역사 기획단이 정부지원하에 결성되는등 국내, 국외 적으로 과거사에 대한 보다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모습을 살펴본다면 오히려 더 좋은 모습으로 나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의 입장은 이전 정부에서 해왔던 역사에 대한 일들과 대비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역사분쟁에 대해서는 정부보다는 시민단체에 의해서 해결되는 상황이다. 92년에는 일제에 의해 희생된 군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이 불교계 및 사회 각계의 모금운동으로 추진되었었고, 2005년 들어서는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도 했었다. 특히나 2007년 429일 민족역사연구소에 의해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예비명단이 발표된 적이 있었고 우연의 일치인지 비슷한 시기에 대통령에 의해 일제의 문제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좌우간 우리나라의 기억에 대한 문제는 정부의 적극적 자세보다는 시민단체의 꾸준한 노력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며 참여정부 들어 과거사 진상규명 위원회가 발족되고 한-중간 동북공정에 대해 강경히 대처하기는 했다고 하지만 지속적이지 못하고 임기응변식이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는 문민정부 이래로 정치적 집단이 갈수록 다양해지는 변화의 시대에 시민교육의 중요성이 이전보다 중요해졌다. 정치화될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시켜야 하는가 대한 문제들에 있어 우리나라의 현대사 교육은 근대에 나타난 민주적인 흐름을 어떻게 서술하느냐에 대해 여러 단체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문제는 저자가 언급한 역사교육의 위기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힘은 이러한 현상에 대한 밝지만은 않은 앞날을 예측해보고, 보다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서 이에 대항하는 현실적이고 학문적인 시민의 힘을 이끌어 내는데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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