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의 자리 트리플 18
이주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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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만 되면 사회가 퀴어 문제로 시끄러워진다. 퀴어퍼레이드의 허가가 어떻고, 음란한 축제가 어떻고. 특히 동성 결혼이 처음으로 법제회된 올해는 유독 여러 의견들이 오간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사회속에서 이런 소설의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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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3개와 에세이 하나로 이루어진 짧은 퀴어 소설이다. 트러플 시리즈를 이 책으로 처음 접해봤는데 129p의 가벼운 책이라 들고 다니면서 읽기도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담고 있는 내용만 따지면 그렇게 가벼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누의 자리』 에는 웹진 비유 2022년 11월호에 수록되었던 「누의 자리」와 『나의 레즈비언 여자친구에게』에 수록되었던 「소금의 맛」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공개되는 「골목의 근태」 총 3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마냥 밝은 내용의 소설은 아니다. 그렇게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던져지는 문장들에서 우리는 퀴어들의 현실을 볼 수 있다. 남들에게 제 연인을 연인으로 소개하지 못하고, 다른 연인들이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그 어떠한 권리도 가지지 못하게 되는 관계.


얼마전 한국에서 처음으로 동성 혼인과 관련된 법안이 발제가 됐다. 몇 년 동안 이야기만 나오고 있던 생활동반자 법도 함께. 세상은 조금씩이나마 변화하고 있다. 몇 년 후에 이 소설을 읽으면 그때는 그랬지,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이미 나는 그런 경험을 했다. 「소금의 맛」이 수록되었던 『나의 레즈비언 여자친구에게』를 미이 올해 2월에 읽었던 것이다. 4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읽어보는 소금의 맛은 그때와는 또 다른 감상을 남겼다. 우리 사회는 변화하고, 그에 따라서 무언가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시각도 변화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사회상을 많이 담고 있는 소설은 특히 그런 것 같다. 읽을 때마다 변하는 감상을 느끼는 것이 매력적인 소설들.


유토포스 뜨개방 첫 장에 을지로 3가라는 지명이 나온다. 을지로를 배경으로 하는 이 단편 소설이 올해 책으로 출간되고,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기 몇 주 전인 6월에 내가 읽게 된 것은 어떤 방식의 운명이었을까.


'서울광장 불허' 퀴어축제, 올해는 을지로에서 열린다

https://newsis.com/view/?id=NISX20230607_0002329825&cID=10201&pID=10200


매년 여름에 서울 광장에서 열리던 퀴어 퍼레이드가 올해는 을지로에서 열린다. 서울 광장에서의 개최가 불허되었기 때문이다. 이 불허과정을 담은 시민위원회의 회의록은 우리 사회에서 퀴어가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 인정받지 못하는 취향, 우리와는 다른 이방인.


매년 퀴어 퍼레이드를 가면 이런 관념을 외치는 사람들이 반대편에 서 있다. 북을 두드리고 전단지를 나눠주며 누군가를 사랑하는 행위를 ‘죄’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혐오에 둘러싸여도 매번 사람들이 모이는 건 사랑이 죄가 아님을 증명하고 싶기 때문일까.


이틀 후에는 대구 동성로에서는 퀴어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에 관해 한 정치인은 이성애자들에게도 권리가 있다는 말을 SNS에 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누의 자리』는 따뜻한 문장으로 퀴어들과 연대하고 있다. 작가는 주위를 둘러보면 어딘가에서 만났을 것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사랑을 그려내고 우리는 작가를 통해 그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삶을 조금씩 엿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모든 사람이 그저 누군가와 똑같이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이런 게 문학이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통해서 현실을 생각하게 해주는 힘. 그리고 특히 이 책은 곳곳에서 우리 현실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져주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퀴어를 배척한다. 하지만 어딘가에는 그들을 생각해주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통해 이 세상의 수많은 ‘누’들의 사랑을 응원해주는 날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신들의 언덕에서 만나요, 네가 말했고
나는 너를 만나러 언덕길을 오른다.

‘누’는 누구의 옛말이야. 의문형 인칭 대명사, 혹은 특정인이 아닌 막연한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 그러니까 누의 자리는 공백. 누구나 들어올 수 있어. 너도 나도. 내게 ‘누’는 ‘누구’가 아니야. ‘누’는 ‘너와 나’야.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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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오소독스: 밖으로 나온 아이 - 뉴욕의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다
데버라 펠드먼 지음, 홍지영 옮김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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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넷플릿스 <그리고 베를린에서> 원작. 넷플릭스도 이미 본 입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책이 조금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이 책은 초정통파 유대인 공동체에서 살아가고, 결국 그곳을 탈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낸 회고록이다. 나는 이스라엘을 바탕으로 전후시기의 시오니스트들과 유대인 등의 문제에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는 정치적인 문제이지 종교적인 관점 혹은 그 집단에 속한 개인에 관한 것까지 신경쓰지는 않고 살아왔다.


회고록의 특성상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거나 여러 감정적인 부분들이 중요하다보니 읽기 전에 걱정이 조금 앞선던건 사실이다. 내가 과연 이 책에, 유대인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그런데 유대인에 관한 지식은 독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저자는 유대인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써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사회는 마치 갑갑한 드레스처럼 그들을 꽉 조였다.“ 165p


유대인 여성들이 폐쇄적인 집단 속에서 받는 대우는 처참하다. 이걸 우리는 단순히 종교의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나타나는 모습은 정도만 다를 뿐 종교와 무관한 상황에서조차 여성을 향해서 드러나고 있다. 그렇다고 단순히 성차별 문제라고 보기도 어렵다. 종교와 전통, 그리고 성별이 모두 결합된 문제는 한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단단하게 엮여있다.


✏ “내부에 존재하는 위험을 솔직히 인정하는 사회가 위험을 감추는 사회보다 더 낫다고 결론 내렸다.” 159p


이 책이 처음 출간되고 유대인 공동체에게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내부의 사정을 밖으로 드러냈다는 것만으로. 이것이 과연 누군가를, 그것도 집단의 피해자로 살아갔던 사람을 비난할 합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자신이 받고 있는 부당하다고 느끼지도 않던 아이가, 구체적으로 지적할 수는 없지만 부당함을 느끼는 과정을 지나서 본인의 언어로 부당함을 고발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우리도 우리를 억압하는 것들에 맞서 싸울 용기를 얻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세상에 모든 개인이 주체적인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되는 날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와 맞서 싸워야 할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언오소독스 #언오소독스_밖으로나온아이 #언오소독스밖으로나온아이 

#사계절

#데버라펠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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