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비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 고려원(고려원미디어) / 199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올 여름은 유난히도 아침마다 눈을 뜨면 창밖에서 요란하게 천둥 번개가 치곤 했다. 번개 치는 하루의 시작은 일출의 찬란함 만큼 충분히 강렬했고 하늘이 걸어오는 듯한 생명감에 우주속에 누워있는 아이처럼 두려움과 불안함을 느껴야 했다.영화<연인>으로 유명한 마르그리뜨 뒤라스는 많은 시나리오와 희곡을 쓴 작가답게 이 책에서도 이야기적 구성보다는 이미지들과 인물의 성격(다들 말이 없는 편이지만)이 그려내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상상이 가능한 감정같은 것이 살아있다. 여름비는 `아이들은 언제나 누구나 다르다`이 한마디로 풀어나간 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가족이 있다. 젊은날의 추억도 지닐수 있는,아니 꺼낼수 있는 우리네와는 다른 어머니 모습과, 아이들을 깊이 이해하면서도 버리고 싶어하는 어머니를 이해하며 커가는 일곱아이들의 형제애가 있고,무섭도록 진한 아이들의 사랑속에서 행복해하는 아버지가 있다. 일을 하지않는 부모가 가족 부양 수당을 받아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돌아올 때 마다 가정을 지켜내는 것은 아이들의 살아있는 절망감이다. 아이들 만이 울고 웃고 절망하고, 어른은 아이들의 모습을 이해하고 지켜주고 행복해한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좀 다르다. [한번도 사람들이 말한적이 없는 그런것들을 이야기 하거나 또 그것을 잘 알아 내도록 하는것 그런 아이가 바로 에르네스토에요] 바로 주인공 에르네스토이며 잔이며 마르그리뜨 뒤라스이다. 나에게 이책은 어쩔수 없이 놓아버린 느슨하고도 슬픈 인식에 대한 지나버린 감정을 되살려 놓고 있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속에서 움켜쥔 주먹속에 들어 있던 알 수 없던 어린 시절의 감정들, 그 속에서 죽어버린 웃음과 눈물이 천둥 번개 속에서 시간과 감정으로 부활한다.

아이들은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학교엔 가지 않는다. 부모처럼 선생님 역시 그들을 이해한다. 불탄 책의 아픔에 울어버리고 부모의 눈빛에 절망하고 나무 한그루에 사랑을 쏟는 아이들에게 교육은 신의 존재와 부재를 인식하는 슬픔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감정인 죽음으로서 오빠인 에르네스토와 여동생 잔은 살아있는 사랑을 한다. [맑은 샘물가에서 나는 쉬고 있었네..샘물이 너무도 맑아 나는 그만 몸을 담그고 말았네..오래전 부터 나는 너를 사랑하였네 결코 너를 잊지 못할 것이라네..] 자신을 비춰보는 맑은 샘물 같은 글에 몸을 담그고 오래 전부터 잊지 못하는 그리움이 강해지기를 어른이 된 지금도 꿈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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