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사랑과 애착의 자연사
보리스 시륄니크 지음, 정재곤 옮김 / 궁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보리스 시륄닉의 <관계>는 신경정신의학자이자, 비교행동학자인 저자가 "동물행동학, 생물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을 월경하며, 태아 상태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둘러싼 ‘애착 행동’을 해부"하는 책이다.

책은 총 3부에 걸쳐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는 ‘애착’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엄마, 아기, 아빠’라는 삼각구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부에서는 생애 초기의 개인사를 남녀의 사랑에 적용하여, 한 개인이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사랑이 애착이라는 일상적 관계로 변하기까지의 사랑의 일대기를 추적한다. 3부는 애착 대상을 상실한 고아들과 죽음이 가까워진 노년의 삶을 통해 ‘가족’의 기능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진다.(교보문고)
 
Cambodias Homeless on the Streets of Phnom Penh

무의식과 비의식
저자는 애착과 흔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행동유형을 분석하는데, 모든 인간 행동은 임신 중, 유아기, 아동기를 걸쳐 진행되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연유한다는 '모원론'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태아였을때 갓난아기였을때 아이였을때 맺은 관계의 양상이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이럴때 바로 무의식과 비의식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소남 이동식 선생에 의하면 무의식은 "남들은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르는 것"이다. -무의식의 '의'자를 뺀 것(고로 무식)도 그리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농담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무의식은 무엇이며, 비의식은 무엇일까. 또 그 둘은 뭐가 다른 거지? 

무의식과 비의식은 다르다. 무의식은 우리의 파타즘과 우리 삶의 향방을 결정하는 정신세계의 조직을 일컫는데, 이 같은 정신세계의 판도는 정신분석학적 상황이 순조롭게 자리잡을 때, 회상이나 꿈, 또는 언어로 전환되어 표현된다. 비의식은 기억할 수 없다. 의식의 영역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이같은 기억은 회상할 수 없는 가운데 격한 감정이나 행동을 유발한다. p.85

정신분석학과 비교행동학
그렇다. 보리스가 말한 비의식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처럼 '언어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그러니 세상에 태어난 직후 처음 엄마와 대면했을때 느꼈던 감정은 비의식으로 남는다. 엄마가 아기를 거부하는 경우, 아기는 그때의 감정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이는 이후의 행동,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면, 비교행동학은 비의식을 그 대상으로 한다.

정신분석이 가지는 장점은, 말하는 주체가 자기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느끼는지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은 주체가 외부로부터 느끼는 압력과 스스로 내리는 해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내면세계를 발전시켜줄 때 치료효과를 발휘한다. 정신분석은 바로 인성화작업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비교행동학이 가진 장점은 주체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어째서 주체가 어떤 종류의 압력에 의해 또 다른 존재양식(예컨대 애정결핍)으로 옮겨가고 와해되는지(예컨대 사회적 고립)를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교행동학은 바로 기호학의 작업이다. p.86


비의식이 드러나는 행동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애착'이다. 아이가 엄마와 맺는 애착의 정도에 따라 트라우마가 생기느냐 마느냐 많이 생기느냐 적게 생기느냐가 결정된다.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강하게 형성된 경우, 같이 나이일지라도 엄마와 떨어진 시간을 잘 견디며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약할 경우,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불안해하며 신경질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이런 아이들은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른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같은 애착 관계의 정도에 따라 감정, 행동 패턴이 결정되고 이것이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비의식은 의식하지 못한 채 각인된 것이어서 이로인한 감정, 행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비의식 역시 결정론적으로 구조화되지는 않는다. 다시말해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 무의식과 비의식으로 형성된 트라우마라 할 지라도 아주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인간이 가진  '언어' 덕분이다.

동물의 언어는 맥락의 언어이고, 근접한 감정에서만 반응한다. 반면에 인간은 지난 날이나 앞으로 다가올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또 이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말을 통해 맥락을 벗어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버림받은 아이들은 내면세계에 애정적 결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을 통해 그 흔적을 극복할 가능성도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말은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가공해내기도 하고, 지나온 삶의 역사를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p.100

결론을 꼭 지어야 하는가?
관계에 대한 수많은 증례와 연구결과를 보여주는 보리스 시륄닉은 책의 말미를 어떻게 결론지었을까? 한마디로 그는 "결론은 없다"고 말한다. "결론을 꼭 지어야 하는가?"라고 독자에게 반문하면서 말이다. 책의 대부분을 특정시기에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데에 할애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꼭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러한 그의 태도에서 나온다. 프로이트나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해 사람이나 작품을 분석할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여기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미 다 드러난 결과치를 보고 분석하면서 생기는 '결정론적 사고'의 오류 말이다. 보리스는 많은 다른 연구자, 이론가들처럼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리기를 거부했다. 그는 단지 슬그머니 이럴 수도 있다,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결론을 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오류의 장막들에 대해 번호를 붙여가며 하나 하나 열거하는 것으로 마지막 장을 끝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난 후 저자가 전한 '관계'를 형성하는 생애 초반기 애착과 흔적의 중요성은 아주 명료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어쩌면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고도로 계산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결정론적이고 단언적인 발언(결론)은 상대에게 반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역시 비교행동학자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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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국민의 탄생 - 근대 일본, 책 읽는 국민을 만들다
나가미네 시게토시 지음, 다지마 데쓰오.송태욱 옮김 / 푸른역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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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를 바삐 보낸 후 마지막 빨간 날의 대미를 교보문고에서 장식했다. 주말엔 한번씩 빠지지 않고 하는 일 중 서점 나들이가 있는데, 설이 낀 주말이라 내내 들르지 못하다가 어제 잠깐 짬이 나 가보게 된 것이다. 참고로, 서점 나들이와 도서관 서가 산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이다. 어쨌든 한 두 시간 정도 신간을 훑어보다가 몇 권의 책을 읽게 됐는데, 그 중 나가미네 시게토시가 쓴 <독서국민의 탄생>에 대해 몇 마디 적을까 한다. 


<독서국민의 탄생>은 제목 그대로 일본의 근대 역사에서 '독서국민'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 지를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는 책이다. 저자 나가미네 시게토시는 각종 통계자료와 삽화, 사진 등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근대 국민 형성과정을 '독서'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뽑아 읽게 된 이유를 들자면, 현재 일본의 '독서력'의 기원을 알 수 있을 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는데, 이러한 궁금증은 책을 읽으며 많은 부분 해소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일본 역시 출판계가 불황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80331 ) 과거 10년전만 해도 세계에서 가장 독서를 많이 하는 나라로 일본을 꼽았고, 왠만한 책들은 모두 번역이 될 만큼 탄탄한 독자층이 형성되어 있었다. 많은 이들은 이러한 일본의 '독서국민'이야 말로 일본의 경제를 일으킨 숨은 저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일본의 독서국민은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독서국민의 탄생>은 근대 일본의 독서국민 탄생기이며 형성기인 메이지 30년대(1897년~1906년)에 주목해 일본의 독서 문화가 어떻게 정착되기 시작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근대에 등장한 신문, 잡지, 소설 등이 보급,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전국 단위의 독서권이 형성되었고, 이를 철도의 등장과 함께 고찰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근대의 상징인 철도의 등장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무료함'이 탄생하면서 신문과 잡지, 소설은 급속도로 많은 독자층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무료함이 곧 상업화되면서 기차역, 기차내의 독서실, 피서지와 호텔 내의 독서실 등이 급속도로 생겨났다. 또 이때에는 개인들의 독서습관이 서로 부딪치는 일도 잦았다. 근대 이전의 독서방식인 음독습관이 공중공간에서 실례가 되기 시작했고, 이로인해 '묵독'이 새로운 독서습관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과거에는 공자왈, 맹자왈 하면서 공부하던 습관이며 음유시인이나 이야기꾼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근대를 거치면서 이같은 독서습관은 대중적(대중을 상대로 한) 영역에서 지극히 개인적 영역으로 침투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대중공간이 점차 늘어나면서 가능해졌다. 대중공간에서 근대적 '개인'이 탄생한 것이다.


근대 국민 탄생을 위한 대대적인 노력

여기까지가 사회적, 산업적 변화에 따라 이루어진 독서국민의 탄생기라면, 책의 후반부는 일본이라는 근대국가가 만들어내고자 했던 독서국민을 다루고 있다. 청일전쟁(1894~1895) 이후 일본은 2등 국민이라는 컴플렉스의 벽을 넘을 수 있었고, 이때부터 1등 국민을 기치로 교육에 큰 관심을 쏟는다. 여기서 1등 국민은 새로운 활자매체에 익숙해야 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국민이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독서 장치의 보급은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하나의 과제가 된다.

일본은 근대 국민을 만들기 위해 신문 구독을 장려하고 관, 민은 대대적으로 신문종람소를 만든다. 또 교육을 마친 국민들의 지적 능력 저하를 막기 위해 도서관을 대대적으로 만들면서 도서관 수가 급증한다. 당시에는 이렇듯 민, 관이 각자의 필요성으로 독서국민을 만들기 위한 전방위 노력을 취하면서 독서 문화가 파급되고, 도서관이 대거 설립될 수 있었다. 도서관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공중의 개념이 생기고 근대적 독서습관이 전국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듯 근대 일본은 독서 습관을 몸에 밴 '독서국민'의 탄생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독서 국민의 탄생은 현재의 일본을 독서 강국으로 만든 토대가 되기도 한다. 저자는 책의 서문에서 근대 국가의 형성 과정을 인쇄매체의 보급과 연관시킨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언급하기도 하는데, 근대 국가, 국민의 형성을 신문, 소설과 같은 인쇄매체의 등장과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는 베네딕트 앤더슨에게서 많은 부분 빚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이같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아이디어는 상당 부분 일반화되어 있고 각 개별 국가에 대한 것이 아닌데다, <독서국민의 탄생>이 일본국민의 독서력의 형성과정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자료가 된다. 

★ 그밖의 책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나남, 2004년)    
<근대의 책 읽기>  천정환 (푸른역사, 2003년) 
문화변동과 사회적 소통 양식 전반의 변화를 이끈 원인인 동시에 그 결과였던, 책 읽기의 한국 근대사에 대한 기록. 20세기 초의 책 읽기가 걸어온 모험의 도정을 상세히 살펴보며, 책 읽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담아냈다.

<상상의 공동체> 단 한 권으로 연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에 의하면, "한 나라의 국민이란 그 나라 신문이 배달되는 범위까지의 영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근대 국민의 탄생이 인쇄매체와의 지대한 연관성 속에 있음을 간파한 이 말이야말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와 '국민'이 무엇인가를 핵심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독서국민의 탄생>은 이러한 국가, 국민의 형성기를 일본의 메이지 유신 30년의 상황을 통해 살펴보게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일본을 가능하게 한 독서국민은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바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때문이다. 신문의 등장으로 근대 국가/국민이 구성되었다면, 새로운 미디어는 이것을 해체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또다른 '상상의 공동체'를 예고하는 것일까. 지켜볼 일이다.
★ 출판사 리뷰
 
책 읽기, 멀찍이 앞선 이웃나라 일본

“책은 정신의 음식이다”(소크라테스), “방에 서적이 없는 것은 몸에 영혼이 없는 것과 같다”(키케로), “자손에게 만금을 물려준다 해도 그것은 한 권의 경전을 주는 것만 못하다.”(한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책은 언제나 명징한 삶을 위한 최고의 도우미 가운데 하나로 꼽혀왔다. 아니, 단순한 도우미가 아니다. 책은 인쇄물로 유통되는 형태의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 삶 자체이자(클래런스 데이), 인간의 무수한 정신을 담은 그릇으로서 인간과 같은 존재라고 칭송받기까지 한다(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책이 지니는 이 같은 중요성 때문인지 국가에서도 책 읽기를 ‘당위’의 차원에서 논하며 각종 지원책을 쏟아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독서는 각종 다른 오락거리에 밀려 문화생활의 후순위를 점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40% 정도가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청의 ‘2009년 사회조사’ 결과는 이러한 우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반면 이웃나라 일본은 어떤가. 초등학생의 연간 도서관 대출 건수가 1인 평균 35.9권(열흘에 한 권씩 읽음)으로 53년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일본 문부과학성 사회교육조사). 너무나 대조적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는가. 인터넷 등으로 여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40%), 시간이 부족해서(38.3%) 책을 읽지 않는다는 우리나라 국민(2008년 국민독서실태조사)과 출퇴근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일본 국민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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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에 갇힌 세계화 - 미처 몰랐던 세계화에 대한 열두 가지 진실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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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는 사람들이 짓고 있는 도시와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다. 주께서 말씀하셨다. "보아라, 사람들이 같은 말을 쓰는 한백성으로서 이런 일을 하기 시작하였으니 이제 그들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이 거기에서 하는 말을 뒤섞어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주께서 그들을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 세우는 일을 그만두었다. 주께서 거기에서 온 세상의 말을 뒤섞으셨다고 하여 사람들은 그곳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한다. 주께서 거기에서 사람들을 온 땅에 흩으셨다. (창세기 11장 5~9절)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의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는 독일에서 미디어심리학과 조직심리학을 가르치는 저자가 피터 브뢰겔의 유명한 그림 <바벨탑>(1563)을 통해 세계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이 책은 올해 4월에 나온 뜨끈뜨끈한 신간으로 세밀하고 풍자적인 묘사에 일가견이 있는 브뢰겔의 <바벨탑>에 등장하는 인물, 장면의 특징들을 12가지로 나누어 이와 세계화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부제가 '미처 몰랐던 세계화에 대한 12가지 진실'인만큼 저자는 세계화의 폐해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한다.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각국을 동질화시키고 세계를 더욱 좁게 만들고 있는 세계화는 현대판 바벨탑이며, 따라서 종국에는 인간의 언어를 달리 하여 온 땅에 흩어지는 벌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세계화로 인한 응징을 받게 되리라는 경고인 셈이다.  

자본주의가 꽃피기 시작한 16세기에 나온 <바벨탑> 
슈푸르크는 우선 브뢰겔이 살았던 16세기 당시의 상황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16세기 네덜란드는 무역국으로 발돋음하면서 황금기에 접어들었다. 이로써 네덜란드의 중산층 가정에는 진귀한 가구, 예술품이 들어서게 되고 '돈'을 축적하게 된다. 때를 같이하여 사람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치는 종교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한다. 로마 가톨릭교회를 비판한 종교 개혁자인 에라스무스를 시작으로 칼뱅, 루터가 등장하면서 파급된 '프로티스탄티즘 윤리'는 자연스럽게 직업에의 충실, 부의 축적이 올바른 가치관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도왔다. 베버의 책 <프로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은데,

1. 오늘날의 세계를 설명하는 그림 _브뢰겔의 <바벨탑>
2. 인간을 위협하는 세계화 _눈에 잘 띄지 않는 성직자
3. 회사는 더 이상 직원을 돌보지 않는다 _옷이 내걸린 창문
4. 고급 노동자에 불과한 ‘살찐 고양이’ _뚱뚱한 건축행정관
5. 미디어는 세상을 제대로 그려 내고 있는가 _늙은 피테르
6. 균열된 사회, 흔들리는 사람들 _반석에 난 균열
7. 세계화가 인간 심리에 미친 영향 _빨간 모자를 쓴 석공
8. 과도한 자기애와 자기표현에 빠진 사람들 _똥 누는 일꾼
9. 정치가는 성직자도, 아버지도 아니다 _니므롯
10. 자선 권력으로 탈바꿈한 기업 _네덜란드 선박
11. ‘인간적인’ 노동 윤리를 찾다 _잠자는 사람들
12. 바벨탑의 그늘에서 벗어나다 _브뢰겔의 두 번째 탑
   

보이는 것처럼 그림의 12조각과 세계화의 폐해를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다. 심리학자인만큼 세계화가 개인 심리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부분이 탁월하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21세기 또 하나의 성격으로 '자기애'를 들 수 있으며, 이를 발전시켜 21세기가 만들어낸 사회성격을 '히스트리오닉'이라 명명한다.

그는  "관계 불안이 낳은 히스트리오닉 성격이 바로 서비스사회에 적합한 사회성격이다. (p.185)"라고 말하며 히스트리오닉의 탄생배경을 설명한다. 덧붙여 알렝 에른베르를 언급하면서 아래와 같이 좀 더 구체적으로 성격을 묘사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알렝 에른베르는 <지친 자아>에서 "회사, 학교, 가족 등을 보면 세계는 새로운 규칙을 갖는다. 더이상 순종, 훈육,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유연성, 변화, 빠른 반응과 적응이 중요하다. 자기제어, 심리와 감정의 유연성, 거래 능력이 요구된다. 모두가 세계에 지속적으로 적응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는 지속성이 없고 불안정하며 일시적이다. 이리저리 갈팡질팡 한다.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이런 변화를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고 정리했다.

그리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이런 세계에 딱 맞는 사회성격이 형성되었다. 히스트리오닉은 가장 이상적인 전제조건을 갖추었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고 기껏해야 미디어의 연출에 잠시나마 정치적 행동주의를 보이는, 평소에는 사회참여를 전혀 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시민인양 자신을 연출해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연결불안의 토양에서 자라나는 것이다. (p.200)

연결불안으로 나타나는 히스트리오닉 성격
요즘 들어 대중의 성격이 바뀌었다고 하여 학계에서는 '다중'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쓰고 있는데, 다중의 특징이 이와 유사하다. 진보적인 정치적 행동주의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 우파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고 표심에서는 우익에 손을 들어주는 등 감을 잡을 수 없는 특징을 가진다. 물론 네그리나 하트가 썼던 '다중' 개념에는 진화한 대중의 형태라는 좀 더 희망적인 의미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자기애를 보이는 사람은 거대한 환상이나 자괴감 징후를 보이고 타인의 인정과 감탄에 과도하게 연연한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 능력이 없고 그들과 착취관계를 맺으며 질투심에 불탄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오직 선과 악 두 종류로만 인식한다. 이런 특징을 고려할 때 정치가는 확실히 자기애가 높다. (p.217)

슈푸르크는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자라난 현대인들이 자기애가 높고 자기애를 가장 잘 실현하는 사람의 대표적인 예로 정치가를 들고 있다. 21세기 현대인의 성격 중 자기애적 특질과 함께 언급된 '히스트리오닉'은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해 나타나는 대표적인 증상으로 이같은 '연결불안'이 가장 큰 요인이다. 

연결불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제 세계화는 특히 개인의 운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직장에서 그리고 직장 때문에 겪는 불확실한 연결은 인간의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불확실한 연결을 매일 경험하면서 인간의 영혼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에 적합한 성격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런 성격형성이 사회적 보편으로 자리잡으면서 새로운 사회 성격이 형성된다.

오늘날 사회성격은 어떠한가? 쉽게 흥분하고 쉽게 변하며 단조롭고 피상적이고 과장되고 비주체적이다. 이런 성격은 자주 공격적인 감정폭발을 보이고 절망적인 우울로 이어진다. 자기중심적이고 피상적이며 직관적이다. 구조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인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오랫동안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낭만적인 가치관으로 일상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쉽게 감동하고 쉽게 영향을 받는다. 활기차고 다채로우며 감정을 충전하고 자극하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재빨리 모방한다. 강력한 경험 욕구를 바탕으로 자극적인 외적 사건을 쫓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내적 공허를 채운다. 육체적 매력과 외모에 몹시 신경을 쓴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조종하거나 공격적으로 도구화한다. 모든 활동에서 자신의 성적 매력을 활용하고 도움이 된다면 질병도 연출한다. 언제나 관심의 중심에 서려고 애쓴다. 한마디로 '히스트리오닉'이다. (p.220)  

세계화는 '평평'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가? 대부분의 사람이 공감하는 자신의 성격이 아닌가?
여기에 동의한다면 '히스트리오닉'을 사회성격으로 분류한 저자의 말이 옳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의 성격이 세계화의 영향임을 또한 수긍해야 할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우발적인 폭력, 범죄 역시 히스트리오닉한 사회성격의 한 증상으로 볼 수 있다.

세계화에 대한 저서는 이미 꽤 많이 나왔다. <세계는 평평하다>를 쓴 우파의 대표적 이론가 토머스 프리드먼이나, 자본주의 승리 팡빠레를 이르게 터트린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 등이 세계화에 대한 우호적 입장을 나타내는 반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반대하는 진영도 만만치 않다. 특히 자본의 세계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최근들어 높아진 편이다. 지난 전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여파로 자본에 세금을 매기는 '토빈세'도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바벨탑에 갇힌 세계화>는 지금까지 나온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 관련 책들과 유사하게 세계화가 가져온 빈부격차, 노동을 위한 노동, 낮아진 삶의 질 등을 다루면서도 이로 인한 인간의 심리학적 측면을 다룬다는 점에서 기존 책들과는 거리를 유지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바벨탑 이야기가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를 읽어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는 세계는 결코 '평평하지' 않으며, 인간의 끝없는 욕심은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라는 저자의 경고는 결코 다가올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수백년의 역사를 통해 그리고 현재에는 더욱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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