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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 사랑과 애착의 자연사
보리스 시륄니크 지음, 정재곤 옮김 / 궁리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보리스 시륄닉의 <관계>는 신경정신의학자이자, 비교행동학자인 저자가 "동물행동학, 생물학, 정신분석학, 심리학,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을 월경하며, 태아 상태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둘러싼 ‘애착 행동’을 해부"하는 책이다.
책은 총 3부에 걸쳐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1부는 ‘애착’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엄마, 아기, 아빠’라는 삼각구도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2부에서는 생애 초기의 개인사를 남녀의 사랑에 적용하여, 한 개인이 어떤 대상을 사랑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사랑이 애착이라는 일상적 관계로 변하기까지의 사랑의 일대기를 추적한다. 3부는 애착 대상을 상실한 고아들과 죽음이 가까워진 노년의 삶을 통해 ‘가족’의 기능에 대해 생각거리를 던진다.(교보문고)

무의식과 비의식
저자는 애착과 흔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행동유형을 분석하는데, 모든 인간 행동은 임신 중, 유아기, 아동기를 걸쳐 진행되는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연유한다는 '모원론'의 주장을 떠올리게 한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태아였을때 갓난아기였을때 아이였을때 맺은 관계의 양상이 한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하냐고? 이럴때 바로 무의식과 비의식이라는 단어가 필요하다. 소남 이동식 선생에 의하면 무의식은 "남들은 다 아는데 본인만 모르는 것"이다. -무의식의 '의'자를 뺀 것(고로 무식)도 그리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농담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무의식은 무엇이며, 비의식은 무엇일까. 또 그 둘은 뭐가 다른 거지?
무의식과 비의식은 다르다. 무의식은 우리의 파타즘과 우리 삶의 향방을 결정하는 정신세계의 조직을 일컫는데, 이 같은 정신세계의 판도는 정신분석학적 상황이 순조롭게 자리잡을 때, 회상이나 꿈, 또는 언어로 전환되어 표현된다. 비의식은 기억할 수 없다. 의식의 영역 안에 들어 있지 않은 이같은 기억은 회상할 수 없는 가운데 격한 감정이나 행동을 유발한다. p.85
정신분석학과 비교행동학
그렇다. 보리스가 말한 비의식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처럼 '언어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 그러니 세상에 태어난 직후 처음 엄마와 대면했을때 느꼈던 감정은 비의식으로 남는다. 엄마가 아기를 거부하는 경우, 아기는 그때의 감정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이는 이후의 행동, 감정에 영향을 미치는 식이다. 정신분석학이 무의식을 연구대상으로 삼는다면, 비교행동학은 비의식을 그 대상으로 한다.
정신분석이 가지는 장점은, 말하는 주체가 자기 자신의 세계를 어떻게 느끼는지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분석은 주체가 외부로부터 느끼는 압력과 스스로 내리는 해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내면세계를 발전시켜줄 때 치료효과를 발휘한다. 정신분석은 바로 인성화작업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비교행동학이 가진 장점은 주체가 어떻게 발전해 나가고, 어째서 주체가 어떤 종류의 압력에 의해 또 다른 존재양식(예컨대 애정결핍)으로 옮겨가고 와해되는지(예컨대 사회적 고립)를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교행동학은 바로 기호학의 작업이다. p.86
비의식이 드러나는 행동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애착'이다. 아이가 엄마와 맺는 애착의 정도에 따라 트라우마가 생기느냐 마느냐 많이 생기느냐 적게 생기느냐가 결정된다.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강하게 형성된 경우, 같이 나이일지라도 엄마와 떨어진 시간을 잘 견디며 엄마가 돌아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약할 경우, 조금만 떨어져 있어도 불안해하며 신경질적인 행동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이런 아이들은 주변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른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같은 애착 관계의 정도에 따라 감정, 행동 패턴이 결정되고 이것이 성인기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비의식은 의식하지 못한 채 각인된 것이어서 이로인한 감정, 행동을 억제하기 힘들다. 하지만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비의식 역시 결정론적으로 구조화되지는 않는다. 다시말해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 어린 시절 무의식과 비의식으로 형성된 트라우마라 할 지라도 아주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인간이 가진 '언어' 덕분이다.
동물의 언어는 맥락의 언어이고, 근접한 감정에서만 반응한다. 반면에 인간은 지난 날이나 앞으로 다가올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또 이에 따라 결정하고 행동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은 말을 통해 맥락을 벗어나는 능력을 발휘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바로 이런 까닭에 버림받은 아이들은 내면세계에 애정적 결함을 안고 있으면서도 말을 통해 그 흔적을 극복할 가능성도 언제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말은 과거의 기억을 끊임없이 가공해내기도 하고, 지나온 삶의 역사를 예술작품으로 변모시키기도 한다. p.100
결론을 꼭 지어야 하는가?
관계에 대한 수많은 증례와 연구결과를 보여주는 보리스 시륄닉은 책의 말미를 어떻게 결론지었을까? 한마디로 그는 "결론은 없다"고 말한다. "결론을 꼭 지어야 하는가?"라고 독자에게 반문하면서 말이다. 책의 대부분을 특정시기에 맺는 '관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데에 할애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꼭 '그렇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러한 그의 태도에서 나온다. 프로이트나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해 사람이나 작품을 분석할때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장 큰 실수 중 하나가 여기에서 나온다고 본다. 이미 다 드러난 결과치를 보고 분석하면서 생기는 '결정론적 사고'의 오류 말이다. 보리스는 많은 다른 연구자, 이론가들처럼 확신에 찬 결론을 내리기를 거부했다. 그는 단지 슬그머니 이럴 수도 있다,라는 말로 얼버무리는 결론을 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연구가 가져올 수 있는 오류의 장막들에 대해 번호를 붙여가며 하나 하나 열거하는 것으로 마지막 장을 끝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난 후 저자가 전한 '관계'를 형성하는 생애 초반기 애착과 흔적의 중요성은 아주 명료하게 머릿속에 남는다. 어쩌면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고도로 계산된 결과인지도 모른다. 결정론적이고 단언적인 발언(결론)은 상대에게 반감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 역시 비교행동학자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