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평점 :
품절


 

아마 계절은 아직 가을일 것이다. 석양은 금세 떨어지고 어느새 밤이 찾아왔다. 11월 말은 참 미묘한 시기다. 열일곱이라는 나이도 미묘하다. 마음 가는 대로 탁 터놓고 울지도 못하게 된 지 제법 많은 세월이 흘렀고, 지금은 이미 익숙해져버렸을 정도다. p.52

 

1. 울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시원하게 울지 못한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어른인척 하면서 살아간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아마도 고등학교라는 전환점을 돌면서부터 우리의 어른시늉은 시작되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은 까마득하다. 뭐가 그리도 즐거웠을까. 동시에 뭐가 그리도 심각했을까. 그러나 그때의 고민들이 지금보다 얕거나 진지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철학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바라보았고, 더 예민하게 음악을 들었고 책을 읽었다. 열일곱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세상을 보는 시야만 조금 넓어졌을 뿐, 더 성숙해지지는 않았다. 어른인척 하려 애쓰는 나와 당신은, 여전히 열일곱이다.

 

2. 우리는 모두 기리시마.

  책 표지를 본다. ‘기리시마’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책을 펼치고 차례에 적힌 이름들을 주르륵 훑어본다. 어? 기리시마가 없다. 기리시마는 누구인가? 그리고 책을 읽으며 기리시마의 흔적을 찾으려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리시마가 누구인지 실체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각 장의 주인공들의 이야기 속에 스치듯 지나갈 뿐이다. 배구부의 그만둔 주장으로, 리사의 남자친구로, 류타의 친구로. 이렇듯 기리시마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가 동아리를 그만두자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고등학생들은 모두 조금씩 그 영향을 받는다.

  이야기는 챕터별로 여섯명의 고등학생의 일상을 써내려가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명의 고등학생은 각자의 이야기 속에 기리시마가 그러하듯 스치듯 지나간다. 말하자면 옵니버스식 구성이다. 여섯명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이름은 모르지만 쉬는 시간마다 우리 반에 찾아왔던 옆반 남자아이, 어울리던 무리에서 나와 홀로 점심을 먹던 여자아이, 너무 급한 나머지 자기 친구의 짝인 나에게 교과서를 빌려가던 아이 등등. 개개인으로 구성되었지만 고등학교는 하나의 유기체 같은 공간이었다.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가 전학을 가는 바람에 내 교과서가 없어진다던가 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던, 우연과 필연이 엉켜 그것이 일상이던 공간. 그 안에서 우리는 모두 기리시마이다. 불안하게 흔들리며 고민을 하고, 모두와 함께이지만 결정적 순간에는 결국 고독하고, 인생의 최고 고민인 것처럼 앞으로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리시마는 곧 책에 등장하는 여섯명의 고등학생의 모습이고 그것은 곧 지난 우리의 열일곱이다.

 

3. 건투를 빈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가 국내에서는 청소년 문학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일본 현지에서는 일반문학으로 분류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책을 읽고 나서 가슴이 뛸 대상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성인일 것이다. 청소년이 본다면 그저 자신의 일상과 똑같은 일본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심심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떠난 시선에서 책을 읽으면 여섯 명의 주인공들의 일상은 무척 귀여운 동시에 애틋하다. 가벼울 수도, 무거울 수도 없는 열일곱의 나이에 조금은 버거운 일상을 떠안고 진지하게 서성이는 여섯 명의 모습은 내 지난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떠들썩한 고등학교 교실 안에서 나름의 고민 때문에 고독했던 그날의 내 모습. 미래 때문에, 동아리 때문에, 나의 능력 때문에, 마음에 드는 이성 친구 때문에, 사이가 멀어진 친구 때문에 각자의 성장통을 앓는 모습들을 보며 지난날의 데자뷰가 떠올라 아련해진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성장통을 잘 견뎌내고 다시 씩씩하게 내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서 어른인척 하는 법 또한 익힐 것이고, 서로의 등을 툭툭 두드리며 ‘괜찮아, 넌 다시 시작할 수 있어’ 라고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기리시마에게, 여섯명의 고등학생에게, 어른인척 하지만 마음 속에 기리시마를 숨겨둔 나와 당신들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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