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엔 사건의 흐름과 인물간의 관계를 어떻게든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책의 중반부에 가서는 포기하고 마음 편하게 읽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인과관계를 파악하며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이 있는 반면, 그 노력을 포기해야 비로소 이해되는 책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정규교육과정에서 그렇게 하도록 강요당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책을 읽을 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나 또한 그것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아야미가 누구인지 장님소녀가 누구인지 의미부여를 하며 책을 읽던 도중 내려오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낮잠에 들었다. 그러다가 바깥의 소음에 문득 잠에서 깨 혼곤한 정신으로 다시 책을 펼쳤는데, 그제서야 나는 아야미가 사는 도시 속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야미를 따라 오디오 공연장에 머물다가 부하를 따라 마리아의 편지를 읽다보면 시인 여자를 마주치고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다시 아야미와 장님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결국 무더운 도시의 길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고 잃어버린 줄 알았던 길은 내 발 밑에 있었다. 의미를 부여해 이해하는 것만이 독자의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때로는 작가가 짜놓은 미로를 터벅터벅 따라 길을 잃는 것도 독자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태도 중 하나이다. 그 미로가 몽롱하고 계속 같은 길만 나오는 것 같을지라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배수아라는 믿음직스럽고 실력 있는 설계사가 짜 놓은 미로이니 마음을 놓고 주위 풍경을 보며 걸어보자. 그러면 당신이 놓치고 있던 것이 보일 것이다.

 

  책을 두 번 읽고 나니 이것은 애초에 입구도 출구도 없는 미로라는 것이 보인다. 작가가 원하는 것은, 또 우리가 해야하는 것은  이 미로의 단면도를 그리거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속에서 인물들과 함께 변주하며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는 것, 그거면 충분하다. 그러면 당신은 지금까지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혼자가 아닌 상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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