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미술관 - 기억이 머무는 열두 개의 집
박현정 지음 / 한권의책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가끔 미술관에 혼자서 간다. 굳이 책 제목이 아니더라도 그림은 혼자서 봐야 감상이 제대로 된다는 것쯤은 안다. 이 책을 처음 손에 들었을 때만 해도 그저 가볍게 읽을 요량이었다. 미술에 관한 에세이쯤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로 글은 에세이였다. 그러나 글이 예사롭지 않았다.

 

저자의 어떤 기억과 그림을 연관시켜 나가는 일종의 추억 여행이라고 해도 될만큼 글은 과거를 향해 달려간다. 배영환의 황금의 링 -아름다운 지옥을 보며 저자는 재수생 시절을 떠올린다. 120명이 한 교실에서 공부해도 서로를 잘 모르며 지낼 수 밖에 없었던 시절을 마치 링위에서 싸우는 선수와 같이 비장한 마음으로 한 번의 실패를 딛고 대학 합격이란 목표를 위해 열심히 경쟁해야 했던 삶이었다.

 

국민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엔 늘 병아리를 파는 아주머니나 아저씨가 있었다. 나중에서야 이런 병아리들이 병든 것이라고 알았지만 당시엔 어린 마음에 한 번쯤 키워보고 싶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호림아트센타에서 닭모양 토기를 바라본다.

 

또한 서용선의 심문, 노량진, 매월당이란 그림을 보면서 유년 시절 교실 뒤편에 있던 유관순을 떠올리고 정재호의 리버사이드 호텔 속에서 삼부 여인숙을 본다. 이처럼 예술 작품을 보면서 과거의 어느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다. 언뜻 어울리지 않는 듯 하면서도 어울리는 이런 조합을 보며 그림 하나를 보면서도 많은 추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회가 닿으면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서울대학교 미술관이었다. 삼성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등도 가보지 못한 곳이지만 서울대 미술관은 그 건물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자연과 인공물이 얼마나 조화로움을 이루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였던 건 마지막 이야기다. 저자가 일부러 이 이야기를 담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픔의 역사를 보여 주었다. 나눔의 집 위안부 역사관에 있는 김덕경의 빼앗긴 순정과 김순덕의 끌려감이란 그림을 보며 오랜시간 숨겨왔고 정말이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을 끄집어 내어 일본의 만행을 알린 할머니들의 용기를 기억하며 일제에 당했던 치욕의 역사를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다시 다짐해 보았다. 좋은 책을 읽으면 덮었을 때 여운이 남는다. 이 책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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