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귀신의 노래 - 지상을 걷는 쓸쓸한 여행자들을 위한 따뜻한 손편지
곽재구 지음 / 열림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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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사평역에서다. 지금이야 편리하게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지만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만 해도 인터넷은 먼 세상 이야기였으니 우리나라에 사평이란 곳이 어디있을까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저 경상도와 전라도 어딘가에 있으리라고 짐작했을 뿐이다.

 

그러다 교수님으로부터 사평이란 지명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인의 상상력으로 만든 공간이라고 했다. 상상력이란 아예 없던 것에서 시작할 수는 없는 법이라 그렇다면 사평역의 모델이 되어 주었던 공간은 과연 어디일지 궁금했다.

 

책에서 언급하다시피 그 모델은 남광주역이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나라의 모든 간이역 풍경이 바로 사평역이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이제는 점점 없어지거나 기차가 서지 않아 사람들의 발걸음이 없는 그러한 풍경을 보면 왠지 옛추억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길귀신의 노래라는 책 이름처럼 시인이 이곳 저곳 다니면서 기록한 글이다. 주로 포구기행과 마찬가지로 포구와 섬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지만 그냥 일상적 글도 있다. 어쩌면 시인은 늘 여행함으로 글을 완성하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여수행 밤열차는 왠지 기차 여행에 대한 추억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이야 출입문들이 자동문이지만 90년대 중반까지도 그냥 손으로 열고 닫는 문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검표하는 차장 눈을 피해 출입문에 서서 바깥을 보기도 하고 맨 앞이나 뒷 열차가 어떻게 달리나 구경하기도 했다. 사실 조금 위험한 모습이긴 하지만 기차타는 묘미가 있었다. 기차에서 가장 좋은 명당 자리는 뭐니뭐니해도 맨 뒷 자리였는데 거기에 걸쳐 앉아 가는 맛이 가히 일품이었다. 지금 기차 여행은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기차가 좋다.

 

"생이 권태스럽고 지리멸렬하고 자신의 육체가 젊은 날의 꿈에 비해 너무 비대해졌다고 느끼는 당신 눈 펄펄 날리는 겨울날 하루쯤 입석 여행을 해보시지 않을래요? 여수든 하동이든 장항이든 그 길 어딘가에 당신이 놓치고 산 인생의 시간 하나가 콜록콜록 기침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가끔은 그렇게 추억을 더듬어 보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때 시인의 이야기처럼 입석을 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추억을 더듬어 본다는 건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다. 오히려 미래를 위한 적극적 움직임이다. 곽재구의 글은 여전히 따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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