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르네 마그리트라는 미술가가 있다. 그는 현실의 상황을 넘어선 초현실적인 그림을 주로 그리는 작가였는데 그림 속의 또 다른 그림을 넣은 그의 상상력은 일반적인 것을 넘어서는 흥미로움이 있다. 소설에도 소설 이야기 속의 소설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 있는데 이걸 액자 소설이라 한다. 그런데 각각의 이야기가 한 가지 화음을 이루는 경우는 좀처럼 드물다. 아니 아직 이런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다.


사실 존 쿳시에 대한 관심은 그가 노벨상 수상작가라는 데에 있었다. 그런 관심을 갖고 소설을 읽게 된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고 표현해야 옳을 듯 하다. 이 책은 무척 당혹스러울 만큼 특이한 형식이었다. 첫 장을 읽으면서 독립된 두 개의 이야기가 시작되더니 몇 장을 더 읽어가다 보면 세 가지의 이야기로 늘어난다. 처음엔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지 하고 고민하다 에세이를 먼저 읽고 소설을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이 소설은 세뇨르라는 작가가 어느 출판사로부터 ‘강력한 의견들’이란 제목으로 책을 만들자는 제의를 받고 우리 시대의 사회, 문화와 정치 그리고 철학적인 에세이를 쓰기 시작한다.


어느 날 세탁실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여성 안야를 타이핑 치는 사람으로 고용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어차피 소설이란 등장 인물이 나오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 간의 갈등과 화해의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에선 그 여느 소설과 다를 것이 없지만 ‘어느 운나쁜 해의 일기’에서 보여주는 건 소설 형식의 특별함이다.


한 페이지 안에 작가의 에세이가 있고 안야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있으며 작가에 대한 안야의 생각이 있다. 이 세 가지의 이야기가 각각 독립되어 있다. 한 페이지 안에 동시에 펼쳐진다. 그래서 어느 것을 먼저 읽어야할지 독자들은 어리둥절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갈 수록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알아갈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만남이란 결국 사랑인 것이다. 단순히 사랑이란 남녀간의 이성적인 것을 이야기 하고 싶지 않다. 세뇨르와 안야의 사랑 속엔 무척이나 간극이 큰 다리가 놓여있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다. 우리가 배우고 알아야 할 작은 삶이 있다면 그건 결국 사랑을 실천함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소중함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내 삶을 나누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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