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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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미리보기에서 프러시안블루가 맛보기로 나왔을 때 이미 빠져들었던 이 책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길 멈출 때'이다.

 

5개의 소제목이 있고 소제목 안엔 프리츠 하버,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 슈바르츠실트, 그로텐디크, 모치즈키 신이치 같은 20세기 화학자, 물리학자, 수학자들의 세계가 펼쳐진다. 소제목으로 인물들을 유추하기는 쉽지 않지만, 각 소설은 개별적이면서도 연관되기도 한다. 그들의 정신적 세계를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혼합해 그려낸 이 소설에 다들 빠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물질을 발견하고, 증명해낸 건 사실적인 부분이지만 허구적인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표현되어 읽다보면 어떤 것이 진실이고 허구인지 감을 잡기 힘들만큼 매력적인 내용이었다.  천재들은 광기에 휩싸여 밤낮을 지새워 생각하고 증명하며 그들의 건강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공통적인 부분인 것인지. 

 

프러시안블루는 18세기 스위스의 안료,염료 제조업자 요한 야코프 디스바흐가 발견했는데 우연의 산물이었다. 코치닐깍지벌레 암컷을 빻아 루비레드를 재현하려던 그의 젊은 도제가 빨간색이 아니라 파란색을 만들어냈고, 가격이 저렴해 르네상스 이후로 화가들이 천사의 로브와 성모 마리아의 장옷을 묘사하려고 쓰던 물감을 거의 대체했다. 이 합성 안료 프러시안블루에서 분리된 부산물이 시안화물의 기원이 된다. 독일어로 '블라우조이레'. 청산(靑酸)이라 불리는 액체 상태의 시안화물은 휘발성이 매우 강해 연한 아몬드향이 나지만, 인류의 40퍼센트는 이 냄새를 맡지 못한다. 이 시안화물이 제2차 세계대전 유대인수용소 가스실에서 사용되었다. 

 

프리츠 하버는 유대인 화학자였으며, 프랑스와 독일의 전쟁에 가스를 사용해 프랑스군을 전멸시켰다. 또한 식물 생장에 필요한 주요 영양소인 질소를 사상 최초로 공기 중에서 직접 채취해, 비료 부족 사태를 막았다. 즉, 세계 대기근을 막은 것이다. 나치가 자신의 연구 결과인  시안화물을 이용한 살충 훈증제를 그의 가족들에게 사용하고, 수많은 유대인 학살에 사용할 것을 알지 못하고 그는 사망했다.

 

물리학자엔 아인슈타인이 천재로 추앙받지만, 그 외에도 슈바르츠실트,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에 대한 부분도 흥미로웠다. 사실 문과출신이라 과학부분에 취약한데 소설로 풀어낸 그들의 업적이 새삼 위대하게 느껴졌다. 그들의 삶 또한 평범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웠고.

 

"가장 작은 아이조차 손가락 하나로 태양을 가릴 수 있다니 우주는 얼마나 신기하고 광학과 원근법의 법칙은 얼마나 변덕스러운가!"

 

수학자로서는 그로텐디크와 모치즈키 신이치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위대한 수학자로 일컬어지는 그로텐디크의 추론 하나를 증명했고, 모치즈키는 그로텐디크를 스승으로 여겼다. 2012년 a+b=c의 증명을 모치즈키가 발표했으나 아무도 이해한 사람이 없었다.

 

"연구자들이 내 연구를 이해하고 싶다면 우선 자신들의 뇌에 주입되어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하게 여겨진 사고 패턴들을 비활성화해야 한다"

 

"나를 고무하는 것은 야심이나 권력욕이 아니다. 거대하면서도 매우 섬세한 것을 예리하게 지각하는 것이다" 그로텐디크는 추상화의 한계를 계속해서 밀어붙여 정점에 "모티브"라는 관념을 두었다. 이것은 수학적 대상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광선이었다. 그는 수학적 우주의 핵심에 자리잡은 이 기이한 실체를 '심장의 심장'이라고 불렀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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