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이종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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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공포소설이란 이 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싶다. 이 책 속엔 7편의 단편소설이 있지만 '청소 아주머니'를 제외하곤 다 픽션이라고 한다. 나는 공포를 즐기는 편이 아닌데, 그럼에도 어릴 때 TV에서 [토요미스테리극장]이나 [전설의 고향]을 방영하면 무서워하면서도 꼬박꼬박 봤다. 어른이 된 다음에는 영화 스릴러 장르가 아니고서야 잘 보지 않는다. 소설 또한 추리는 읽지만, 대놓고 호러소설 이런건 진입 장벽이 있는 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오싹한 기분이 들어 결말을 생각하며 얼른 읽어야지 이런 생각이었다. 책제목인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의 무서움은 우리가 느끼는 귀신의 존재 같은 두려움이 아닌 여성으로서 가진 지위에 대한 불안감이었다. 결혼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위치에서 집안일을 하며 남편을 기다리는 그 막연함. 남편 또한 애는 당연히 엄마가 키워야지 하는 사고방식.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외진 곳에 정착하고 대화할 상대조차 없는 곳에서 사고를 목격한 진아.  진아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민재. 결혼을 도피한 듯 선택한 결과라고 하지만, 결혼해서도 예전처럼 일할 수 있는 여성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될까? 이 소설은 그런 불안함이 빈 쇼핑백을 맞아 죽었다는 사건에서 더 불안감이 심해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들리는 거울'에서는 스토커로 인해 가족이 죽고, 혼자 남은 여자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있다. 거울을 통해 가족과 대화하고 매일 밤 10시 11분에 거울을 흔들리는 걸 바라본다. 나때문에 가족이 죽었다는 걸 자책하면도 죽지 못하고 공포감을 느끼는 모경.  경찰이 제대로 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 "특별히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이 부분에선 나도 겪은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다.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따라오는 남자.  어느 누가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경찰? 그들이 하는 일이 뭘까? 누가 험한 일을 당해야 구속시킬 수 있는걸까? CCTV에 잡혀도 감감무소식인 그들의 업무. 나는 경찰을 믿지 않는다. 성추행하는 경찰따위에는. 그냥 없었던 일로 넘기려는 그들의 행적을. 

 

혼자사는 집, 밤. 낯선 누군가가 현관문을 계속 두드리는 경험. 무섭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나에게 어떤 오빠 또한 집에만 있어서 그런거라고. 망상 같은 거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 내 곁에 있었다니.

 

'언니'에는 성소수자가 겪는 스토커에도 사회적 시선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이 나온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다는 말에도, 누가 작업실에 몰래 오는 것 같다는 말에도 망상으로 단언해버리는 친구까지. 결국 머나먼 이국땅에서 20년을 도망치듯 살다 돌아왔음에도 스토커는 여전히 그녀 곁을 맴돈다. 정말 호러스럽고 엽기적이기까지 한 내용이었다.

 

'커튼 아래 발'은 자살한 아빠와 집 떠난 오빠를 기다리는 엄마의 치매끼있는 상태와 다리 불편한 휠체어 생활을 책임지는 딸과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모녀 사이에도 학대가 끊이지 않고, 엄마를 떠나지 못하는 딸과 엄마가 끊임없이 딸을 무시하고, 때리는 이상한 관계이다. 끝내 이사갈 돈을 모아둔 3천만원을 붙태우는 엄마에게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딸, 엄마를 죽였다고 오빠에게 고백하는 동생. 탈출구없는 삶에서 정신착란증상까지 일어난 것인지.

 

여러 소설들을 읽으면서 공포감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의 말에서 소설 속에 담긴 공포의 의미가 와닿았다. 한 편 한 편, 그 소설 속에 담긴 공포에 담긴 의미, 그리고 해석까지. 

 

가족으로 인해 생긴 불안감, 혹은 내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사회속에서 느끼는 혐오와 차별의 시선.  작가말처럼 이 소설들은 우리를 무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삶 속에서 느끼는 공포 그 자체를 담아내려는 시도였다는 것을 배웠다. 그럼에도 여전히 공포스러운 것은 워낙 우리 사회에 흉흉한 사건, 사고가 많기 때문이겠지.

 

 


 

*이 책은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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