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성과 영성의 만남 -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스승의 스승, 멘토의 멘토에게 길을 묻다 ㅣ 믿음의 글들 300
이어령.이재철 지음 / 홍성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이어령교수의 천재성과 독특한 기인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대학시절 들은,경희대 국문과에 이어령을 교수로 임용하면 내가 짐을 싸서 나가겠다라는 독설을 퍼 부은 황순원 교수의 일화가 유명하다.그만큼 젊은 이어령은 국문학계에서는 천재성은 인정하지만 같이 살기엔 좀 많이 버거운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그런 이어령교수가 세례를 받고 첫 신앙서적을 낸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사 본지 2년 만에 두 번째 책인 지성과 영성의 만남을 보니 신앙을 갖은 척 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유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문학평론만 잘 하는 줄 알았던 이교수가 표현력과 감수성이 뛰어난 글을 실제로 잘 쓴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신앙을 말하라고 하면 단 편적인 간증이나 눈물이 찔끔 나올까 말까한 개인적 체험을 주로 하다 끝맺음을 하는데 반해 그의 신앙입문은 참으로 오래 준비된 일처럼 그렇게 탄탄하면서도 체계적이라 느껴졌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수술을 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받은 귤 한 보따리는 결국 그의 어머니도 막내아들 이어령과 형들도 먹을 수 없는 열매가 되고 만 사건은 두고두고 가슴을 적실 정도로 아름답게 묘사가 되어 있다. 그의 글을 읽을 때 그의 삶을 보게 되었고 너무나 냉철함이 지나쳐 찔러도 비명 한 마디 안 지를 인간이라 여겼던 그도 한 어머니의 아들이고 남편이며 아버지라는 것을 처음 보게 된 계기였다. 그래서 그의 장녀가 쓴 땅 끝의 아이들과 땅에서 하늘처럼까지 찾아 읽게 된 것이다.
대담형식으로 교인들 앞에서 초청강연을 간 것을 정리해 만들어 그가 쓴 글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지만 그의 육성이 활자화 되어 나온 것이니 아주 색달랐다. 무엇을 설명할 때 비유를 참 많이 사용했는데 관찰력이 탁월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식이나 현학적인 껍질을 벗어버리고 본질을 향해 매진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34년 생 개띠이면 올해로 팔순인데 전혀 구닥다리 노인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생각이 젊고 말하는 것이 분명하며 표현력이 풍부하니 내 또래의 친구들이나 선배들보다 훨씬 재미가 있었다.
교회 안에 갖힌 사람들, 예수의 가르침의 방향과는 전혀 무관하게 열심인 교인들에게 그의 생각은 어쩌면 불편했을 수도 있고 아직 '예수쟁이'가 안 됐군 할 수도 있지만 교인이든 아니든 이 21세기 한국이란 국가적 현실을 안고서 살아가야만 하는 실존만큼은 동일하다. 그래서 많은 경험과 사회현상을 파헤치는 안목이 뛰어난 이어령의 시각으로 본 한국의 성문화와 교육시스템, 그리고 가정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몰랐던 많은 사실들을 가르쳐 주었다. 무조건 아멘만 복창하면 하늘에서 다 알아서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란 점도 분명했다. 손과 발을 움직여, 무엇보다 입을 움직여 말을 하고 교회가 사회 속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
그와 함께 이재철목사에 대해서도 재평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데 목소리와 외모가 상당히 차갑고 드라이하게만 보이던 그의 실제 모습 속에는 지난 100여 년 역사 동안 한국교회의 허와 실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쳐보고자 하는 정의감이 눈에 띄었다. 고심하고 질문을 던지는 내용마다 그런 그의 젊고 굳센 기질이 느껴진 것이다. 사람을 겉으로만 보아서는 제대로 알 수 없는데도 설교를 통해서 보여졌던 그의 외향에만 익숙해져 있다보니 생활인으로서의 그의 모습은 전혀 알 길이 없었던 탓이다.
이어령의 교수로서, 장관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세상과 타협을 모르던 천재 이어령이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을 알게 되고 스스로가 자문하게 되면서 갈등하며 고민하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단순히 교리와 말씀대로 살 수 있었던 인생이 아니었기에 그와 함께 짐을 지고 나아가야했던 많은 지식인들과 민주화인사들, 그리고 학계와 문화계인사들에 대해서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삶이 왜 이렇게 가면을 쓰고 사는 겉과 속이 다른 삶인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과 일반 성도들에 이르기까지 성경과 전혀 상관이 없이 살면서도 겉으로는 돈을 사랑하지 않는 최영장군처럼 위선과 가식의 가면을 쓰고 서로가 서로를 불편한 눈으로 보고 있는 참담한 현실에 대해 시원스레 한 방을 날린 것은 가장 통쾌하다.
이 점이 이어령을 더 많이 가까이에서 알고자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