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객 27 - 팔도 냉면 여행기
허영만 글.그림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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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에 한 올 한 올 냉면사리가 먹음직스럽게 살아 있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세밀화에 쏟아 부은 그 정성에 감복하게 되면서 한편으론 만화가 주는 위대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몸이 아파서 누워 있을 때도 만화는 손에 잡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도 만화는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두어 시간 남짓한 비행시간 동안 이 식객27 완결편을 읽으면서 다른 문화권에 도착해서 느낀 우리 음식에 대한 그리움과 자부심은 남달랐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항공사는 앞으로  성인뿐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잡지와 신문 외에 꼭 이 식객을 한 권씩 비치해 놓고 우리의 식문화를 알리는데 역할을 했으면 한다. 

 냉면을 입 안 가득  넣어 먹는 세 남자의 얼굴이 인상적이었다. 겨울에 먹는 냉면의 맛, 이가 시리면서 온 몸이 찌릿하게 얼어붙는 느낌이 들면서도 이 시원한 맛을 결코 버릴 수가 없다. 진주냉면은 솔직히 처음 들어보았다.  

냉면을 좋아하면서도 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다. 경상도에서는 즐겨 먹는 것 같은데 식객에 소개된 것을 보니 육수가 해물을 다량 사용하고 고명이 9가지가 들어가는 것이 정통이라니 한 번 기대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냉면을 역시 승수냉면, 아니 승소냉면이다!  

서울 수서라면 정말 가까운 곳인데 종교행사 뒤에 이런 맛있는 특별한 냉면을 맛 볼 수 있는 그 곳의 신도들을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다. 

큰스님으로 나오는 캐릭터가 매우 특이해서 재미있었는데 그 마른 몸에 한 자리에 앉아 냉면을 몇 그릇을 비울 정도의 진정한 냉면 대식가이니 정말 특이하다. 

특히 고기육수를 쓰지 않고 가죽순과 다시마로 육수를 만든다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그런 맛은 상상이 잘 되지도 않으니 일단 맛을 보고 싶은데 선재스님이 만든 승소냉면은 누가 먹을 수 있을까? 참으로 귀하면서도 소박한 냉면이라 가장 먹고 싶은 냉면이 되었다. 

  

 

 

 

 허작가가 가장 신뢰를 받는 이유도 역시 취재일기를 각 장의 끝에 꼭 보여주기 때문인데 승소냉면편에서 선재스님이 직접 냉면을 만드는 모습이 담겨 있다. 

4대강 사업이 임박한 남한강의 쓸쓸한 풍경까지 담백하게 담아 낸 취재일기에서 하나의 음식이 탄생하기까지  별 것 아니라 생각하고 그냥 후루룩 목으로 넘겨 버리기엔 우리의 음식문화가 갖고 있는 역사와 산고가 참 대단히 깊다는 인상을 받았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들뜸이나 형식적인 스마일대신 항상 깊은 주름과 성실성, 그리고 마음을 담아내는 듯한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나타나 있는 것 또한 매우 진실되게 보인다. 

 

 

함흥냉면이야 워낙 잘 알려진 냉면이니 그냥 볼 수 있었지만 밀면편은 저 남쪽 경상도에서 먹는 냉면과 비슷한데 면을 메밀대신 그냥 평범한 밀가루로 뽑는다는 것 정도를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자주 먹을 수 있는 소면같은 국수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큰 흥미는 끌지 못했지만 피난시절에 급한대로 만들어 먹던 냉면이 그대로 굳어져서 하나의 가지를 쳤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는 듯 싶다. 

착면법으로 면을 뽑는 방식도 특이하고 짧은 지면이었지만 냉면의 다양한 형태를 알려주어 어느새 입안에는 냉면의 새콤한 육수맛이 감돌았다. 

이 한겨울에 우리의 선조들이 동치미육수와 고기육수에 메밀면을 말아 시원하게 들이켰던 그 놀라운 맛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냉면이야 말로 우리 역사의 중심이란 생각이 들어 허작가가 왜 마지막 완결편으로 냉면을 선정했는지 그 뜻을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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