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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에 부는 바람 ㅣ 살림어린이 더 클래식 2
케네스 그레이엄 지음, 원재길 옮김, 로버트 잉펜 그림 / 살림어린이 / 2010년 9월
평점 :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책을 읽어주었다는 말은 자주 접해보았으나 지금으로 부터 1백여 년전에 영국의 한 아버지가 자신의 병약한 아들을 위해 이야기를 지어 밤마다 잠자리에서 들려 주었다는 것은 무척이나 가슴이 훈훈해지는 이야기다.
예전에 초등학생을 가르칠때가 있었다. 그 당시 그 아이의 아버지는 서울의 한 대학교수이자 유명한 정치인이었는데 막내로 태어난 아들을 위해 동화를 지어주었단다. 그것도 영어로 책을 써서 직접 학교의 교수실에서 만들어 온 따끈따끈한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책을 저녁 때 자기의 귀여운 아들에게 읽어주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대단한 분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고보니 그 교수 역시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보냈다는 것이 우연이 아닌 듯 싶다.
교훈을 주려거나 책을 많이 팔아서 명성을 얻기 위한 기성작가들의 책이 아닌, 자신의 아들을 행복해게 해 주고 싶어서 은행원생활 가운데 시간을 쪼개 이야기를 지어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이 놀라운 '부정' 앞에 참으로 겸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동화처럼 잔잔하고 아름다운 풍경대신 현실의 아버지는 사랑하는 아들을 스무 살때 영원히 잃게 되는 것 또한 실화가 주는 감동과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자극적인 스토리와 감각적인 묘사가 난무하는 요즘의 문화 속에 <버드나무에 부는 바람>은 고전 중의 고전이란 생각이 든다. 귀엽고 사랑스런 네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가보면 태어나서부터 경쟁의 전쟁터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에게 참다운 세상은 어떠할까라는 의심(?),아니 의문을 품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1800년대 후반의 영국이라는 공간적 시대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오랜시간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매료시키는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목가적이며 전원적인 책 안의 배경이 살벌하고 거짓이 난무하는 요즘 세태와는 전혀 딴 판이다. 동화가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는 완전히 빵점일 수 있지만 반대로 가장 오래된 이야기인 이 책이 충분히 판타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갈등이 있어도 서로서로 대화를 해 가며 자신의 입장을 상대에게 인식시켜주고 상대의 수용이 가능한 세상, 두더지 모울과 물쥐 워터 래트, 두꺼비 토드, 오소리 배저아저씨가 있는 세상이 영국의 어느 습지에 분명히 있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