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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20 - 국민주 탄생
허영만 지음 / 김영사 / 2008년 3월
평점 :
5권 술의 나라에서 이미 우리나라의 청주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20권에는 '어머니의 동동주'편을 보며 오히려 '이렇게 힘이 들고 온 몸이 욱신거리는 힘든 술을 왜 굳이 만들려 할까?' 라는 회의가 들 정도로 술 빗는 과정이 리얼하게 다가왔다.
특히 쳣 장에 나온 술항아리들은 도저히 만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사진처럼 선명하고 세밀한 그림에 한 참을 감탄하여 보았다. 어머니들은 세상을 떠날 때도 자신이 낳은 자식들 중 누구를 위해 가장 가슴 아파할까라는 생뚱맞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이 어머니의 동동주에서 처럼 역시 막내를 위해 끝까지 걱정을 하며 세상을 떠날까라는 생각도!
80억이란 현실적인 액수(?)의 유산을 놓고 벌이는 동동주만들기 경합은 러시아 전래동화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듯 늘 힘 센 형들은 못된 놈들이고 막내가 착한 주인공이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막내가 성찬의 도움으로 그 80억 원의 주인공이 되겠지라는 나의 섣부른 판단과 달리 이야기를 끌어가는 작가의 솜씨가 매우 세련되어 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동주를 빗기 위해 어렵게 구한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그 아늘 놈은 학원도 끊고 부자지간에 그 동동주항아리 앞에 모여 안쓰럽게 지켜보는 모습은 나에게 너털웃음을 웃게 만들었다. 저렇게 순진무구한 아버지와 아들이 있다면 정말 좋겠다라고.....
동동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백세'를 한 후 욱신거리는 온 몸의 통증 속에서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평생 그 힘겨운 노동을 당연스레 하셨던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덩치가 산 만한 막내가 훌쩍 거리는 모습은 왠지 그냥 넘어가지지 않았다. 언제나 평생 내 곁에 계셔주실 줄 알았던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가치를 깨닫기도 전 너무나 살벌하게 싸우는 형들과의 관계에서 막내는 무엇을 느꼈을까? 유산을 독차지하는 대신 어머니의 가게를 꾸려가는 그 모습에서, 얼굴 가득 환한 웃음 속에서 나도 저렇게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보고 싶다라는 간절한 소망이 더욱 강해졌다.
100화- 할아버지의 금고는 왠지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길고 커다란 마루 위의 시계는 우리 할아버지 시계~로 시작되는 '할아버지의 시계'라는 동요가 생각나게 했다.경영악화로 할아버지의 술도가를 매각하려고 할 때 진행되는 과정은 우리나라 70-80년 대에 흔히 나타났던 그 일과 흡사하지만 할아버지의 전 인생을 바친 그 누룩 곰팡내 나는 술도가의 풍경이 너무나 사실적이라 정겨웠다.
특히 그 전통주를 아끼고 찾는 동네 사람들, 그 중에는업자의 숙부까지 있어 자신의 조카를 대낮, 남들 보는데서 마구 어린애 취급하면서 술도가의 사채는 받을 생각일랑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너무나 동화적이지만 정말 이런 놀라운 일이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금고 안에 어린 손자를 위해 금복주라는 병뚜껑으로 만든 딱지와 그 천하무적의 딱지로 동네 아이들에게서 긁어모은 수 백 장의 딱지들을 보며 내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나 역시 지금도 그 때 모은 구슬들을 절대 버리지 못하고 이사 갈 때마다 제일 먼저 챙겨서 옮길 정도이다.
항상 더 빠르게, 더 새롭게, 더 압도적인 것에 익숙한 문화에 살다보니 옛 것에 대해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것에 대해서는 헌 고물취급하며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듯 업신여기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식객은 그런 과소평가를 받는 옛 것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세상에 기쁨을 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