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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평점 :
우리집 거실 책장은 유일하게 전적으로 내 소유이다. 따라서 그곳에 꽂혀있는 책 역시 내 것임이 분명하다. 그 중에서 94년도 판 노랑색 하드보드표지로 된 단행본 ‘감성사전’은 세월 따라 빈 여백에 낙서가 늘어나고 있다. 굳이 말해서 낙서이지 사실은 읽을 때마다 깨달음과 느낌이 달라져서 연필로 쓴 예전의 내 필적을 대할 때마다 그 때도 이렇게 기특한 면이 있었던가하며 사뭇 놀라고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 후로 이 번 ‘하악하악’이 내게는 같은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그림이 많은 이 책은 내게 사색과 깨달음보다도 더 큰 볼거리와 마음의 씻김을 주었다. 한 장 한 장마다 사진같은 실물을 보듯 정교함과 애정이 느껴지는 민물고기들과 야생화들을 보면서 새삼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7살 무렵 처음으로 온 가족이 나들이하러 간 ‘은고개’에서 본 올챙이, 송사리들이 기억의 손끝으로 만져졌다. 비록 다른 녀석들처럼 유명한 곳에 갔다 온 것이 아니라 해도 나에게는 가족과 제일 멀리 간 첫 번째 물놀이었기에 자랑스러워서 그 날 일을 그림일기로 그렸던 기억이 남아있다. 물고기들과 꽃 한 송이에서 느껴지는 것은 ‘작음’이었다. 무엇하나 남을 압도하고 잡아먹을 듯 위력이 느껴지는 것이 없이 가장 사납게 보이는 메기도 수염만 없으면 귀엽고 봐줄만할 정도였으니까. 내게는 살이 도톰하게 오른 기름진 생선으로만 보이던 식품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그 모양 그 자체로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생명체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이다. 동심을 회복했다는 것, 계곡에 사는 그 작고 귀여운 것들을 잡아서 집으로 데려올 생각을 버리고 좀 더 깨끗한 환경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레기를 되가져오는 편이 훨씬 그 녀석들을 위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녀석들을 보면서도 책 중반으로 넘어갈수록 역시 세상은 이미 많은 부분이 속속들이 오염이 되고 더렵혀져 있음을 느꼈다.
간간이 나오는 세상의 속물들과 찌질이들에 대한 작가의 유머스러운 일침에 더 많은 공감이 갔으니까. 아무리 억울함을 호소하여도 세상은 도무지 누가 옳고 그른지 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오로지 어떤 인간이 힘이 더 센가에만 초점이 모아져 있는지라 둘만 입을 맞추어도 피 눈물 흘리는 피해자가 어느새 가해자가 되어있기 일쑤라는 비극적 현실에 아래의 구절을 다이어리에 적어 놓고 분을 삭였다.
‘인간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진실을 못 보는 것은 죄가 아니다. 진실을 보고도 개인적 이득에 눈이 멀어서 그것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죄일 뿐이다.’
이 말이 얼마나 이 비극적 현실을 직시하는 말인지 모함을 경험한 나로서는 벙어리 냉가슴 앓던 삼룡이가 잠시 입이 터진 것 같은 후련함을 느낌과 동시에 이 부조리한 속세에 대한 어떠한 설명보다 명쾌하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환희가 있었다. 그렇다면 내 주변에 온통 죄인투성이다! 그것도 중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로 여기는 녀석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홧병이 나도 단단히 나서 곪아 썩을 이 괴로움을 이외수님도 겪었을 것을 생각하니 아~~~~~~~~~~~~~~~~~~~~~~~~~~~~~~
크게 한숨 섞인 탄성이 나왔다. 그랬구나! 자신도 겪어 봤으니 알겠지. 고마웠다. 먼저 앞서서 일을 당함에 그치지 않고 그 뒤를 가는 후배들에게 억울함에 아까운 목숨을 끊지 않도록 ‘나도 알아, 너보다 더 많이 당했으면 당했지 못하진 않아’ 라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 누명 덮어 쓴 선배를 만나서.
다이어리에 적은 또 하나의 구절, ‘어떤 단체에서 감투를 쓰거나 완장을 차면 갑자기 자신의 인격을 신격으로 착각하고 안하무인으로 설쳐대는 속물들이 있다. 그들은 감투나 완장을 지키지 위해서라면 친구나 부모를 배반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같은 무리 중에서 자기보다 주목받는 존재가 나타나면 중상과 모략을 일삼는 특성도 나타내 보인다. 장자는 그런 부류들을 ‘썩은 쥐를 움켜쥔 올빼미’라고 표현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안다면 좋겠다. 쥐 한 마리도 별 가치가 없건만 고작 냄새나는 썩은 쥐를 차지하고파서 진실을 왜곡하고 아들의 친구조차도 억울하게 희생시키려 한 그들이 참 안 됐다. 자신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잡한 지 인생 은퇴하기 전에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비유가 얼마나 충격을 주었는지 아직도 억울함은 남았지만 나 역시 그들에 대한 원망을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썩은 쥐를 움켜쥐고 두들겨 패고 있는 불쌍한 황조롱이가 될까봐 이 글을 쓰는 지금 그들을 내 기억 속에서 영원히 아웃시킨다.
이외수님과 나와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았다. 이제 갓 서른인 나의 몸무게가 난생 처음으로 이번 달 들어서 60kg 아래로 내려갔다. 내 또래의 여자라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기뻐할지 모를까 군 시절 건수만 잡으면 나를 못살게 굴던 정작장교 밑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한민국에서 30대로 살아가기가 이 정도일 줄이야! 그래서 나만큼이나 더 가벼운 몸을 갖고 계신 작가가 만나고 싶다. ‘예술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에서 나온다.’라고 오랜 세월 믿어 의심치 않던 옛 격언을 홀라당 뒤집을 수 있는 그 힘과 결코 젊지 않으면서도 젊은이보다도 젊은이의 가슴을 더 잘 이해해주는 것 같기에 말이다.